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63
딸이 선생님한테 수학 학습지를 받아 왔다. 수학 성적이 부진한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이 몇 권을 자비로 주문하신 거라고 한다. 그 몇 권으로 공부해야 할 아이 중 두어 명이 그 나머지 공부를 여러 이유로 거절한 탓에 책이 남았다고 한다.
"네가 그걸 왜 받아와?"
"아, 내가 달라고 졸랐어."
아마도 제 친구 중 수학 성적이 영 아닌 녀석 옆에 붙어서 좀 가르치라고 했던 선생님의 지시에 충실히 따른 데에 대한 상인 듯하다.
내 자식이지만 사실 같은 반이었으면 재수 없을 캐릭터다. 난 학창 시절에 시험 성적 안 좋다고 울어 본 적도 없고, 크게 낙심한 적도 없다. 오히려 대학원에서 더 신경 썼었다. 그러나 딸은 맨날 95점만 받는다고 속상해한다. 이걸 위로해줘야 하나 웃고 넘어가야 하나 난감해하다가, 결국엔 위로를 해주고 있다. 오늘도 사회 시험에서 하나 틀렸다고 교실에서 울었다고 한다. 그걸 보다 못한, 70점을 맞은 여린이가..
"야.. 너 나 놀리는 거지?"하고 대 놓고 말했다고 한다.
여린이 맘이 내 학창 시절 맘이었다. 왜 공부 잘하는 것들만 시험 끝나면 엎드려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참 재수 없었는데, 내 딸이 이런 소리를 들으니, 참 난감하다.
나도 학습지를 받아온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다. 담임은 신난숙 선생님이었는데 아마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것이다. 곰곰이 돌이켜보니, 그때 그녀 나이 갓 서른이나 됐을까? 미혼이었을 거다. 당시 사립학교는 들어오기만 하면 어지간해선 평생 있을 수 있었으니 어영부영 시간 보내는 선생들도 많았는데 이 선생은 달랐다. 과목이 국어였는데 열정이 있었다.
아마 그 열정 때문에 글 좀 쓰고 국어 잘하는 가난한 학생이 맘에 걸렸을 것이다. 날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교사들에게 출판사에서 영업차 보내온 다양한 학습지와 문제지를 챙겨 줬다. 중학 시절 유일한 학습지였다.
직장 좋은 아내에 기대어 제 하고 싶은 일 하며 살아도 굶지 않고, 그럭저럭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듯하게 살다 보니 가난의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러나 그 흐릿한 기억도 이렇게 아이의 자잘한 사건이 불쑥 휘저으면 가라앉은 물 먼지 올라오듯 불쑥 떠오른다.
공부를 제법 하는 반장에게 하사하신 학습지를 소중히 가방에 모시고 와, 꺼내어 자랑을 했다. 수학이, 계산법이 기적이 아니라 사는 게, 살아온 게 기적이지 싶다. 십여 년 전까지는 존재도 없던 녀석이 쫑알쫑알 떠드는 것이 기적이지 싶고....
그 이틀 후, 사회 시험 결과가 나왔는데 대재난인 모양이다. 아이들 점수가 엉망이어서 재시험을 친다고 하셨단다. 은채의 남자 사람 친구이자 아버지가 뭐하시는지 궁금한, 글 잘 쓰고 공부 잘하는, 학습지를 열개나 한다는 태용이도 70점을 맞았다고 한다. 시험지를 집에 들고 가면 어머니가 제법 놀라겠지...
선생님들이 고생이다. 벌어진 학습 격차를 어떻게든 좁히려 애쓰시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느 반은 수학 실력이 뒤쳐진 애들이 절반 가량 돼서 보충 수업을 열 명 정도 받는다고 한다. 은채가 자기 반은 양호한 거라고 변명하듯이 해준 말이다.
여하간 다음 주 월, 화, 수는 시험이다. 과학, 수학, 사회로...
흠... 다음 주도 눈물바람을 볼 것 같다. 적당히가 안 되는 녀석이다.
아빠는 뭐 C만 면하자, 이런 생각으로 대학을 다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