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알아야 하는 이유

은채의 표현력과 꽃 이름

by 최영훈

일요일, 은채와 문화회관에 자전거를 타러 갔습니다.

은채는 박물관 앞을 지나면서 이팝나무를 올려다보며 예쁘다고 했습니다.

“아빠. 이 꽃, 그거 같아.”

“그거?”

“응. 그 왜 우리 스테이크 먹을 때 피자 주문하면 위에서 아저씨가 뿌려 주는 치즈 말이야.”

전 은채가 말하는 것이 뭔지 알고 혼자 한참 웃었습니다.

이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안개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짧게 끊긴 소면들이 십자 모양으로 달라붙은 모양새로 꽃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모양이 은채는 한 스테이크 집에서 즐겨 주문하는 갈릭 스노윙 피자 위에 뿌려 주는 치즈 가루 같아 보였던 것입니다.


은채는 크면서 종종 남다른 표현으로 절 깜짝 놀라 켰습니다. 그 첫 번째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은채가 막 말을 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TV를 보고 있는 저에게 다가 와서 “아빠. 아빠 눈에 은채가 있어요.” 했습니다. 은채는 제 눈에 비친 자기를 보았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걸 눈부처라고 하지요. 그때 제가 느낀 전율을 글로 다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전 그때부터 은채의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올 때마다 주변의 평화 공원과 박물관 등을 들려서 철마다 다르게 피는 꽃을 구경 시켜주고 나무의 변화를 구경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많은 꽃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평화공원에 많이 피는 야생화인 연분홍의 낮달맞이꽃, 수줍은 보라색을 자랑하는 앵초, 잔디라고 부르기엔 화려한 꽃잔디, 밤길을 밝히는 초롱을 닮은 금강초롱, 박물관 숲길을 든든히 지키고 있었던 커다란 나무지만 은채와 함께 박물관 산책로를 걷기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메타세콰이어, 이웃인 정화 네 집 앞에 요란한 색과 모양으로 올라오는 술붓꽃,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무더운 여름날 느닷없이 선명한 오렌지색으로 피어올랐던 능소화, 여름의 휑한 박물관 정원을 붉게 물들었던 배롱나무, 뒷산의 꽃무릇과 오동나무 꽃까지. 은채와 함께 주변의 꽃과 나무를 함께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꽃들의 목록도 차곡차곡 쌓여만 갔습니다. 은채가 곁에 없었다면 의미 없이 지나쳤을 꽃들이 은채와 함께 그 색과 모양이 하나 둘 제게 말을 걸어 왔습니다.


은채가 처음 본 꽃은 바다채송화입니다. 사철 채송화나 미국 채송화라고도 불리죠. 이 채송화는 부산의 화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꽃입니다. 은채는 유모차에 실려서 정화네 집 화단과 우리 집 화단에 심겨진 이 꽃을 처음 봤습니다. 전 얼핏 채송화를 닮은 이 꽃의 이름을 알기 위해 오랫동안 검색을 해야 했습니다.

박물관이 매년 갈아 심는 화분의 꽃을 알기 위해서도 수 없이 검색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팬지와 바이올렛을 알게 됐고 나팔꽃을 닮은 페튜니아도 알게 됐죠. 그러나 여전히 은채가 나무나 꽃의 이름을 물을 때마다 모르는 게 훨씬 많습니다. 그러면 전 들고 다니는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은 뒤에 나중에 집에 가서 찾아보자고 합니다. 아니면 이런 데 조예가 깊으신 외할아버지에게 물어보자고 하죠.


김춘수님의 시는 맞습니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은 없고 단지 우리가 이름을 모르는 꽃이 있을 뿐입니다. 은채와 함께 공원을 거닐면서 무의미한 것들이 의미를 얻은 채 내게 왔고, 그렇게 은채가 자신만의 식물도감을 만들어 가며 크는 동안 저도 꽃을 아는 어른이 되어 갔습니다.

이번 봄에도 정화네 집 앞 화단의 철쭉 뒤에 숨어서 그 오묘한 모양과 색을 뽐내는 술붓꽃을 구경했습니다. 여전히 박물관 앞 이팝나무는 흐드러진 아이보리 색 풍성함으로 유엔로터리의 운전자들에게 봄날의 마지막 안부를 전합니다. 이제 서서히 수국이 피는 시절이 오면 금강초롱도 필 테고 맥주가 절로 생각나는 한 여름이면 정화 네 앞집 대문 위에선 능소화가 담을 타고 내려 올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은채는 “와. 아빠가 좋아하는 오렌지색 꽃이 폈다.”라고 저와 함께 좋아해주겠죠. 그리고 봄에 입었던 긴 팔 티의 소매는 반팔이 되어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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