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인정

아이는 알아줄 때 큰다.

by 최영훈

4월 마지막 주 금요일은 스포츠 홀릭 데이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1학년들만의 운동회 날이라고나 할까요? 수업 시간 내내 체육 활동만 하는 것이죠. 이날 은채는 기능성 소재로 된 민트 색 반팔 티를 입고 갔습니다. 예쁘게 머리를 단장하고 가던 은채지만 이 날만은 포니테일로 단단히 묶고 갔죠.


은채한테 들어 보니 1반부터 6반까지 1학년 전체가 꿈마루관(실내체육관)에 모여 다양한 종목을 했습니다. 홀수반은 청군, 짝수반은 백군으로 나눠서 말이죠. 종목은 장애물 달리기나 중간에 간단한 미션을 수행하고 다시 뛰는 이어 달리기 등이었습니다. 그 중 마지막 종목이 바로 이어 달리기였습니다. 은채가 마지막 주자였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계주에서 마지막 주자라면 잘 뛰는 사람이 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친구들이 보기엔 은채가 제일 빠르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어찌됐든 계주는 긴박하게 진행 되서 은채 앞의 주자가 근소하게 뒤쳐진 채 은채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친구들이 갑자기 “최은채, 최은채, 최은채.”라고 은채 이름을 연호 했다더군요. 은채는 마지막 주자로 뛰어나갔고 먼저 들어와서 자기 팀이 이겼다며 아주 흥분 된 목소리로 저에게 얘기해줬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이름이 연호 될 때 기분이 어떨까요?

승부를 결정짓는 골을 넣었을 때,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홈 팬들의 소리를 듣는 손흥민 선수의 기분일까요? 9회말 투아웃, 주자 만루, 점수는 1대4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4번 타자가 자신의 이름을 목청껏 외치며 기대를 표현하는 홈팬들의 소리를 들을 때의 기분일까요? 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제 이름이 연호 된 적이 없으니까요.


요즘 은채는 친구들한테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은채네 반에서는 모둠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책상 두 개를 붙여서 네 명이 한 팀이 돼서 공통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죠. 그러면서 슬슬 팀플레이, 조별 작업에 익숙해지도록 하나 봅니다. 모둠을 나누고 나서 선생님은 모둠의 반장을 뽑도록 했습니다. 선생님은 제일 똑똑한 사람이 반장을 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답니다. 보통의 대한민국 성인이라면 이럴 때 손을 드는 사람은 없겠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왔을 때 기자 회견장에서 손을 들고 질문한 기자가 한명도 없었던 나라니까요. 기자라면 나름 똑똑하다고 스스로들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그것을 포현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선생님의 요구에 아이들은 손을 들었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남자 애들은 한명도 안 들고 여자 애들만 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은채 네 모둠에서는 은채와 강지유라는 아이가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선생님이 똑똑한 친구가 반장을 하면 된다고 하자 아이들이 은채의 이름을 수군댔다고 합니다. “최은채가 하면 되겠네.”, “그럼 최은채네.” 이렇게요. 결국 치열한 가위 바위 보 끝에 은채가 이겨서 반장을 했습니다. 물론 이 모둠은 금방 해체 됐기 때문에 삼일천하로 끝난 반장이었지만 말입니다.


은채는 돌봄 교실에 오는 미술 선생님한테는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받고 - 데리러 간 저한테도 종종 말 해주셔서 무난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 주산을 배우는 문화 센터에서도 꼼꼼하다고 칭찬을 받습니다. 수학 학습지 선생님한테도 정말 잘한다고 칭찬을 받죠. 물론 그 칭찬 중에는 비즈니스적인 의례적인 칭찬도 얹어져 있겠지만 그건 어른만 짐작할 뿐 은채는 그런 생각을 안 하겠죠.


주변 어른과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서 은채는 우쭐한 마음과 함께 더 잘 해야겠다는 마음, 계속 기대에 부응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함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뭔가 실수하거나 문제를 틀리거나 그림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결국 뭔가를 배우고, 하는 데서 오는 본연의 즐거움은 상실한 채 과업을 제대로, 완벽하고 탁월하게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이를 통해 듣고 얻게 되는 칭찬과 명성에만 신경 쓰게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죠.

얼마 전 은채가 저에게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장점을 열 개 쯤 얘기하자 은채는 단점도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후 저는 “뭐든지 잘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해 줬습니다. 은채가 깜짝 놀더군요. 엄마도 그렇게 말했답니다.


사실 우리 세대는 중간만 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세대입니다. 처남이 군대 갈 때 장인어른이 한 조언도 중간만 하라는 거였다고 합니다. 저 또한 어떤 분야나 무리에서 1등을 해보겠다는 욕심이나 탁월함을 증명해보이겠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이 좋은 운동신경을 물려 주셔서 그럭저럭 반에서 운동 잘하는 친구로 통했고, 국어를 제법 해서 학교 대표로 몇 번 백일장 같은데 나간 게 전부입니다. 당연히 반장을 한 기억도 없고 대학에서 기숙사 간부를 할 때까지는 그야말로 중간에 머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은채는 어린이집 갈 때쯤부터 야무지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또 순하게 생긴 데가 한군데도 없다는 처고모님의 말도 들었죠. 이런 말은 부산에서는 칭찬이라고 할 수 있죠. 순한 사람이 미덕인 동네는 아니니까요. 은채는 그런 외모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서너 살 까지는 제법 낯을 가리고 새로운 것을 대할 때는 두려움을 갖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세 살 때인가 동화 책 읽는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일주일에 한번 선생님이 오셔서 동화책을 읽고 그와 관련된 그리기나 꾸미기를 해보는 것이었죠. 은채는 매주 보는 그 선생님과도, 어린이집 갈 때까지 일 년 넘게 하면서도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첫 번째 어린이집에서도 담임선생님을 제외하곤 다른 선생님하고는 말도 안 했고 말이죠. 그러다 하늘빛 어린이집에서 그야말로 포텐이 터진 거죠.

전 사실 요즘의 은채를 보면서 상반 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좀 무난하고 무던하게 있는 듯 없는 듯 학교생활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하는 80년대, 한반에 60명이나 되던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옛날 사람 아빠의 우려고, 다른 하나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자기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학창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요즘 사람, 아빠의 기대입니다.


이런 생각과 함께 재주의 절벽에 부딪히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사람의 재주라는 건 그 종류와 수준에 한계가 있습니다. 저도 중학교 때 글 좀 쓴다고 선생님들한테 인정받았고, 운동도 잘해서 체대 가라고 선생님들이 권하시기도 했지만 과학과 수학은 거의 바닥이었습니다. 잘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고,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죠.

은채는 아직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합니다. 방과 후 학교에서 배우는 바이올린, 음악 줄넘기, 방송 댄스 등을 다 잘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주산과 수학까지 잘 하려고 하죠. 물론 어느 나이, 어느 수준까지는 고르게 향상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 수준을 넘어서면 슬슬 그 중 한두 개를 선택해서 집중해야만 일정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죠. 은채가 언젠간 그 순간, 그 결정을 내리고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모든 걸 사랑하는 것과 모든 걸 잘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고, 사랑하는 것을 잘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쏟아야 하며, 그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어서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죠.


아직은 에너지가 넘치고 있습니다.

칭찬을 통해 자신감도 얻고 자존감도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큰 초등학교 무대에서도 통한다는 걸 알고 제법 자기 확신도 얻고 있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친구들의 인정을 받으면 아이들의 속은 단단해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큰 키 덕에 긴 보폭으로 달리기를 이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는 은채. 그러나 언젠간 알게 되겠죠. 진짜 빠르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말이죠. 그때까지 은채의 속이 더 단단해지도록 은채의 자기 자랑을 모른 척 해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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