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낭콩을 키울 수 있을까?

선생님의 말은 진리다.

by 최영훈

은채가 강낭콩 몇 개를 가져 왔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이거 싹 나게 하랬어.”

저나 아내나 과거에 양파 한번 키워 본 경험이 없겠습니까? 그 정도 과제는 예상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은채는 진지했습니다. 일단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강낭콩 네 개와 강낭콩의 변화를 그림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록지를 나눠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떻게 싹을 틔워야 하고, 싹을 틔운 후에는 화분에 어떻게 옮겨 심어야 하는지 동영상으로 가르쳐 주셨죠. 은채는 선생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는 녀석이니 배운 데로 해줘야 했습니다.


일 때문에 밖에 나갔다 왔더니 엄마는 강낭콩 싹을 틔울 준비를 해놨습니다. 흔하디흔한 플라스틱 텀블러 뚜껑에 엄마가 클렌징에 사용하는 솜을 깔고 물을 흥건하게 적셔 놨습니다. 그 위에 강낭콩 두 개가 얌전히 누워 있었죠. 나머지 두 개는 은채가 아기 때 먹던 플라스틱 계량컵에 역시 물을 머금고 있는 솜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강낭콩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아빠, 벌써 싹이 나온 친구도 있어.”

은채는 나흘이 넘어가자 슬슬 초조해지기 시작했죠.

선생님이 싹이 날거라고 예언하신 시간이 나흘이었으니까요.

우리 집에 온 강낭콩 녀석들은 제법 완고하게 버텼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쯤 되니 서서히 불그스레한 껍질을 가르고 흰 속살과 애기 양말 같은 싹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은채가 학교 갔다 온 후 보여주니 “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놀라더니 이내 선생님이 나눠주신 기록지를 꺼냈습니다. 거실에 있는 낮은 탁자 앞에 앉아 두 개의 강낭콩 세트를 놓고 꼼꼼히 그려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싹이 나기 시작한 강낭콩들은 경쟁하듯 싹을 틔우더니 다들 붉은 옷을 벗고 경쟁적으로 싹을 하늘 위로 올려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은채는 또 화분 타령을 하기 시작했죠. 결국 넷 째 주 목요일, 그러니까 은채가 첫 번째 체험학습을 한 날 동네 시장의 꽃집에 가서 작은 배양토를 사 왔습니다. 작은 봉지 하나에 천 원 정도 하더군요. 집에 자잘한 화분들이 몇 개 있어서 화분은 안 사왔습니다.

토요일 오전, 엄마가 협회의 인수인계를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은채와 아빠는 베란다에서 강낭콩의 화분 이사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빨간색 화분과 하얀색 화분에 배양토를 담았습니다. 그 후에 솜 위에서 누워 있던 싹을 많이 틔운 두 개의 강낭콩을 먼저 빨간 색 화분에 옮겨 담았습니다. 은채는 동영상으로 봤을 때는 그 흙을 꾹꾹 눌러 줬다면서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은채가 시키는 대로 옮겨 담은 후에 주변 흙을 눌러 줬습니다.

“은채야. 이거 강낭콩을 흙으로 완전히 덮어줘야 해?” 은채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학교에서 봤던 영상에선 살짝 덮어줬어. 좀 보이게.” 은채가 봤다는 데로 해줬습니다. 하얀 화분도 그렇게 작업했습니다. 총 두 개의 화분에 네 개의 강낭콩이 은채 작업반장의 지시 하에 성공적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물을 제법 넉넉히 줬습니다. 이것도 은채의 요구사항이었습니다.


은채는 화분에 꽂을 팻말을 만들었습니다. 배달 음식에 딸려 온 나무 젓가락을 기둥으로 삼고, 두꺼운 과자 박스를 판 삼았습니다. 하나는 하트 모양, 하나는 다이아몬드 모양. 이 역시 작업반장님의 요구대로였습니다. 아빠가 도안을 해주면 은채가 그 위에 심은 사람, 심은 거, 심은 날짜를 쓰고 색연필과 네임펜 등을 사용해서 예쁘게 꾸몄습니다. 그 후에 정성스레 오렸고, 그것을 아빠가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사용해 풀로 고정시켰습니다. 잘 마른 뒤에 팻말을 화분에 꽂았죠. 그렇게 두 개의 강낭콩 화분은 완성 됐습니다. 그러나 강낭콩 농장 작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선생님이 은채에게 여덟 개의 강낭콩을 얼마 전에 또 주셨거든요. 그건 지금 솜 위에 누워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채는 선생님의 말을 귀담아 듣고 그대로 실천합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선생님의 말은 그야말로 불변의 진리이자 꼭 따라야만 하는 것이었죠. 저나 아내는 은채가 “선생님이 그러셨어.”라고 하면 “어 그래? 그럼 그게 맞지.”하고 수긍해줬습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르게 하는 데에는 이거만한 방법이 없으니까요.

은채도 나이가 들수록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아빠가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잡다하게 아는 게 얼마나 많은지를, 엄마도 공부를 많이 했고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말이죠. 그런데 그런 엄마 아빠가 늘 선생님의 말이 맞다고 말해 주고,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뭐라고 하셨는지 묻고, 그렇게 말하셨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니 은채는 당연히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커졌습니다. 그래서 어린이집에서부터 선생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면 곶이 곶대로 해 왔습니다.

초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의 권위는 이제 교실에서 세워지는 시대는 끝난 것 같습니다. 모르는 지식은 검색으로 알 수 있고, 도덕적 권위는 일부 선생님들이 종종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이 많이 손상 됐습니다. 결국 그 권위는 학부모들이 가정에서 세워줘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사실 강낭콩을 화분에 옮길 때 흙을 덮어야 하는지, 속으로 박아 넣어야 하는지는 스마트 폰으로 검색해 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은채에게 물어 봤죠.

“학교에서 어떻게 배웠어?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은채는 학교에서 배운 데로, 선생님한테 들은 대로 말해줬고, 우리 부부는 그대로 했습니다.


대학에서 교수의 권위는 단순히 지식의 양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 분야의 지식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지식간의 연계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하나의 현상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고, 그것을 학생한테 설명해서 학생으로 하여금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기에 권위를 인정받는 것이죠. 또 그 지식의 깊이만큼 삶 또한 깊이와 무게가 남다르면 평생의 스승으로 존경 받는 것일 테고요.


단편적 지식이야 검색하면 끝입니다. 강낭콩 심기 정도는 잠시 검색하면 됩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지식에 대한 권위를 부모가 인정하지 않으면 학생인 은채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권위는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배울 만큼 배운 고학력자인 은채의 엄마 아빠는 늘 은채한테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를 입에 달고 사는 것입니다. 나름 글도 읽을 줄 알고 그림도 제법 잘 그리고 말 주변도 제법 있는 은채에게 선생님의 중요함, 권위, 능력을 확고하게 심어주기 위해선 부모가 선생님의 권위를 존중해주는 것이 먼저일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은채는 성격상 선생님 말씀을 불변의 법으로 아는 녀석이라 구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보편적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선생님 말씀이 맞아.”라고 맞장구 쳐 주는 것이 무너진 교권을 세우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강낭콩을 은채 작업반장의 지시 하에 심으면서 든 생각입니다.

(농장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금요일에 사루비아 씨앗과 옥수수 씨앗을 주셨거든요. 사루비아 씨는 벌써 심었고, 옥수수는 어디다 심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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