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체험 학습

준비는 의외로 철저하다

by 최영훈

4월은 체험 학습의 달입니다. 지난 주 처제와 황령산에 갔을 때도 체험학습을 나온 초등학생들을 볼 수 있었죠. 은채의 첫 번째 체험학습 날짜와 장소도 정해졌습니다. 넷 째 주 목요일, 김해가야테마파크.


이번 주는 비가 많았습니다. 은채는 은근히 걱정하면서 월요일부터 날씨를 물었죠. 수요일 저녁, 목요일에 비가 오는 것은 확실했지만 다행히 수도권부터, 밤부터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은채와 함께 수요일 저녁에 마트를 갔습니다. 도시락을 위해서죠. 김밥 거리를 사고, 과자 몇 개를 샀습니다. 과일은 집에 있었고, 물은 집에 있는 걸 가져가면 되니까요. 의외로 평소에도 생수 작은 병을 집에서 싸 오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학교 정수기에서 일일이 받아 마실 만큼 물 마시는 습관이 길들여져 있지 않고, 물통을 들고 다니는 건 왠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때나 하던 짓이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입니다. 은채도 입학한지 몇 주 지나자 엄마에게 작은 생수를 원했고, 결국 우리도 가장 작은 사이즈의 생수를 박스 채 사서 매일 아침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주면 그나마 물을 마시니까요. 아이들은 별 거 아닌 것도 친구 따라 하는 걸 좋아하나 봅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체험 학습을 제법 많이 갔습니다. 일 년에 두세 번은 갔었죠. 봄에는 꽃구경이나 농장 체험, 여름에는 워터 파크로, 가을에는 운동회나 농촌 체험을 했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 몇 번은 부모가 함께하는 것이어서 우리 부부도 은채 덕분에 딸기도 따보고 고구마도 캐 봤습니다. 어린이집에서의 체험 학습 준비물은 간단했습니다. 도시락과 간식, 돗자리 정도였죠. 옷도 원복을 입고 가면 됐고 말이죠.

그러나 초등학교의 체험 학습은 뭔가 달랐습니다.

일단 옷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는 게 역력했습니다. 은채와 엄마는 날씨와 사진을 고려해서 옷을 아주 신중하게 골랐죠. 모자까지 말입니다. 준비물도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일단 비닐봉지 세 개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하나는 만에 하나 멀미를 할 경우 구토에 대비 한 것, 하나는 밥 먹고 발생하는 쓰레기를 수거해오는 용도, 마지막 하나는 가져가는 우산을 사용할 경우 우산에 남아 있는 빗물이 가방을 적시지 않게 하는 용도였습니다. 선생님의 구체적 지시는 또 있었습니다. 돗자리는 꼭 1인용이어야 했습니다. 이 돗자리를 네 명이 맞춰 앉아 밥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또 돗자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것도 혼자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접었다 폈다 하는 걸 집에서 다섯 번 이상 연습하라고 했답니다. 은채는 실제로 집에 있는 몇 개의 1인용 돗자리 중에서 하나를 고른 후 그것을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몇 번 연습했습니다. 또 혹시 올지 모르는 비를 대비해서 접는 우산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것도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연습 했죠.

선생님은 옷차림도 구체적으로 말해주셨죠. 밝은 색의 활동하기 좋은 옷으로 입고 오라고 말이죠. 아이들이 눈에 띄는 색을 입어야 다른 학교 아이들과 섞여도 찾기 쉽다고 그 이유까지 설명해주셨다고 합니다. 물론 밝게 입어야 사진도 잘 나오지만 말입니다.


선생님은 준비물과 그것의 구체적 목적과 용도를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셔서 아이들이 집에 가서 각 준비물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스스로 할 수 있길 바라신 것 같습니다. 그전에 선생님이 알림 문자를 통해 공지를 했지만 아이 스스로 정보를 기억하고, 전달해서 부모와 함께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으니까요.

전해들은 정보를 집에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아이의 두뇌 발달에 상당히 중요합니다. 또 학교생활에서도 중요하죠. 그래서 은채가 다녔던 하늘빛 어린이집에서는 5세반부터 언어전달이라는 걸 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루에 있었던 수업 내용이나 사건 중에서 중요한 내용을 문장으로 만들어 집에 가서 엄마나 아빠에게 얘기해주면 됩니다.

5세반 때는 비교적 단문이었습니다. 주어와 서술어 밖에 없었죠.

예를 들면 “친구는 소중합니다.”와 같은 문장이죠. 이러다 6세반 때부터는 목적어가 추가 됐습니다. “우리의 물건을 아껴 씁니다.”처럼 말이죠. 7세반부터는 목적어나 동사, 서술어를 꾸미는 부사, 형용사가 붙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보호합니다.”와 같이 말이죠. 막상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이것이 어떤 학습 목적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초등학교에 다녀보니 은채가 기억하고 전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은 상당했습니다. 수업의 분량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당부하신 말씀, 정해주신 규칙, 준비물 등이 있었죠.

어린이집에서의 원외 활동과 학교에서의 교외 활동의 결정적 차이는 아이가 스스로 준비 과정에 깊이 참여하고, 체험 과정 전반에 걸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을 책임지느냐에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체험학습을 위해 가는 김해 가야 테마파크는 부산 인근에 사는 아이들이라면 한번은 가봤을 법한 곳입니다. 은채도 그곳에서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만남을 다룬 뮤지컬도 보고, 활쏘기 체험도 했었죠. 가까운 김해 천문대도 가보고, 근처 캠핑장에서 자보기도 하고요. 그러나 친구들과 간 적은 없습니다. 부모와 함께 가는 것과 친구와 함께 가서 체험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겠죠. 게다가 스스로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펼쳐 놓고 식사 후에는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비가 오면 스스로 우산을 폈다 접어야 하죠. 테마 파크의 주요 놀이 시설과 관람 시설의 반별 순회 순서를 알고 그에 따라 반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겠죠. 또 친구와 함께 체험하며 그 감정을 공유함에 따라 체험의 깊이도 더욱 깊어질 테고요.


오늘 아침엔 아빠가 데려다 줬습니다. 준비물이 들어간 작은 배낭은 제법 묵직했습니다. 가는 동안은 아빠가 들어줬지만 테마 파크에서는 은채가 짊어지고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 또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이겠죠. 은채는 별로 안 무겁다고 허세를 부렸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도 그 무게가 가벼울 만큼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운동장 한 편엔 은채와 1학년을 기다리는 관광버스 세 대가 나란히 서 있었습니다. 김해까지 차로 대략 3,40분. 돌아오는 시간은 두시 40분. 은채는 대략 네 다섯 시간 정도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체험을 할 것입니다. 아마 그렇게 체험을 하고 나면 조금 더 마음이 커져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도 조금은 더 붙겠죠. 그러면서 은채는 점점 더 소녀가 되어갈 것 같습니다. 제법 서늘한 오늘 아침, 아마도 따뜻하게 입고 가라는 엄마의 성화를 이겨내고 짧은 반바지를 입고 오는 고학년 언니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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