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교육에 진심인 학교

책을 읽어 나가다

by 최영훈

은채는 주민 센터와 학교에서 책을 빌려 옵니다. 대출 가능한 권수와 반납일이 제 각각이어서 달력에 빌린 날과 반납 일을 메모하기로 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반납 일을 한번 어겨서 며칠 동안 대출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학교에선 체계적으로 국어 교육을 시킵니다.

한글도 안 떼고 학교 가면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애, 한글도 안 떼고 학교 보내시면 어떻게 하냐.”는 핀잔을 듣는다고 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내의 초등학교 선생님인 친구나 다른 학교를 보내는 엄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것도 선생님마다 차이가 있는 모양입니다. 어떤 선생님은 입학식 날부터 엄마들에게 공부를 강조하면서 수학 공부도 미리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자음, 모음부터 가르치니 말입니다.


은채의 담임선생님은 후자 쪽입니다. 국어 시간에 자음과 모음을 진도에 따라 차근차근 가르치시죠. 그러나 선생님도 아이들이 어느 정도 한글을 떼고 왔다는 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당장의 쓰기 실력 향상 보다 읽기 능력 향상, 특히 독서 교육에 더 힘을 쓰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학교 전체의 교육 철학인 듯 합니다.

얼마 전 학교 알림 문자에 낯선 단어가 보였습니다.

“여보, 윤독 도서가 뭐야?” 아내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나름 독서광인 저에게도 생소한 단어였습니다.

“아니. 윤문은 들어 봤어도. 윤독이라.”

아내가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책을 돌려 읽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은채에게 윤독도서가 뭔지 직접 물었습니다.

“아. 그거. 그거는 이래. 선생님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스무 권을 갖고 오셔서 반에다 놔 둬. 그러면 우리가 한권씩 돌아가면서 읽는 거야. 그걸 다 읽잖아? 그러면 옆 반하고 책을 바꿔. 그리고 그걸 똑 읽어. 그러는 거야.”

1학년이 6반까지 있으니까 반마다 스무 권이면 120권, 결국 120명가량의 아이들이 120권의 책을 함께 돌려 읽는 셈인 것이죠. 이게 유익한 것이 이 책의 선택을 선생님이 한다는 점입니다. 선생님마다 조금씩 교육 철학이나 읽히고 싶은 책이 다르겠죠? 그래서 아이들이 120권의 책을 다 읽게 되면 각기 다른 교육 철학, 독서 철학을 갖고 있는 여섯 명의 선생님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배운 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책꽂이는 그 사람의 지적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은채의 담임선생님은 1학년 수준에 맞는, 그림이 많은 책을 읽으라고 아이들에게 권한다고 하십니다. 1학년다운, 적정한 수준이 어떤 것인지 많은 고민 끝에 권하시는 것이겠죠. 은채는 이런 선생님의 말에 충실히 따르면서도 자기가 읽고 싶은 책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요즘 빠져 있는 것은 메리 폽 어즈번이 쓴 <시간 여행>시리즈입니다. 모험 이야기 속에 다양한 지식을 자연스레 버무려 놓은 책입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학습 만화도 즐겨 읽습니다. 00도둑 시리즈며, 내일은 00왕, Why 시리즈가 대표적이죠. 은채는 이런 데서 알게 된 지식을 저에게 종종 자랑하곤 합니다. 그럼 전 그건 또 어디서 알았냐며 놀라서 묻죠. 은채는 그렇게 아빠가 놀라서 묻는 걸 은근히 즐깁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은채도 부모로 하여금 ‘우리 애가 천재가 아닐까?’하는 환상을 품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말을 제법 하기 시작했던 서너 살 때부터 은채에게 동화책을 많이 읽어줬습니다. 은채는 그렇게 읽어 줄 때 맘에 드는 책이 읽으면 여러 번 읽어 달라고 했습니다. 한번 읽어 줄 때마다 두 세 차례 반복해서 읽어주는 건 다반사였죠. 그 중 킴 그리스웰의 <돼지 루퍼스 학교에 가다.>는 은채가 한글을 떼기 전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입니다. 저도 이 책을 수백 번 읽어줬습니다. 처음엔 왜 은채가 이렇게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엄마 아빠의 연기력이 출중(?)해서 반복해서 들어도 재미있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어느 날 은채가 동화책을 펴놓고 혼자 읽고 있었습니다. 우린 깜짝 놀랐죠. 알고 봤더니 은채는 그 동화 내용을 통째로 외워서 적절한 타이밍에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외운 동화책이 꽤 됐죠. 받침 없는 동화 시리즈, 최숙희 씨의 <넌 기적이야.>, <괜찮아>, <곤지곤지 잼잼>, <나도 나도> 등이 대표적입니다. 주말마다 은채를 보러 놀러오는 외삼촌 앞에서 이렇게 외워서 책장 넘기는 걸 보여줘서 삼촌을 깜짝 놀라게도 했었죠. “누나야! 애 글도 읽나?” 삼촌은 격한 사투리를 써가며 놀라줘서 은채를 즐겁게 했죠.


글을 알고 나서부터 은채는 스토리가 제법 탄탄한 동화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빠지게 된 게 밸러리 토마스와 코키 폴의 <마녀 위니> 시리즈였죠. 그러다 우연히 한의원에 가서 <한자도둑>을 읽게 되면서 학습만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서점에서 아빠가 사준 바람에 <시간 여행> 시리즈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은채는 자기가 잘 아는 시리즈와 낯선 책을 교대로 빌려 옵니다. 처음 보는 책에 대한 궁금함과 잘 아는 시리즈의 속편의 궁금함이 공존하는 것이겠죠.

은채가 책을 읽을 땐 웬만하면 나란히 앉아서 같이 읽으려고 합니다. 책을 읽는 것이 어른에게도 TV보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여가 활동이자 재미있는 일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은채가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단지 은채가 좋아하는 책이 뭐고 좋아하는 작가가 누군지 질문을 받게 되면 분명하게 말하고, 그 이유를 똑 부러지게 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살면서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좋아하는 책의 분야나 장르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요.

이전 20화아이를 함께 키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