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함께 키운 사람들

이모와 함께한 4월

by 최영훈

4월 첫째 주 목요일에 미국에 사는 은채의 하나 밖에 없는 이모가 왔습니다.

이모는 은채의 친할머니, 그러니까 아빠의 엄마가 사시는 텍사스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거기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우면서 한국에서 했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간호학을 공부해서 간호사가 된 의지가 강하고 똑똑한 여성입니다.


은채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새삼 느껴지곤 했습니다. 특히 이웃과는 얼굴도 모르고 지내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는 달리 우리 가족은 일곱 가구가 사는 빌라에 살고 있어서 이웃 어른들이 은채의 인사를 받아주고 만날 때마다 몇 살이냐, 어디 가냐, 밥 먹었나, 은채에게 물어 봐 주셨습니다. 은채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법, 대답하는 법, 이웃 사람에 대해 알아갔습니다. 빌라를 벗어나 앞집에 할아버지, 옆집의 이웃도 알게 됐죠.


집과 가까운 어린이집에 다니고 부터는 동네 친구라는 개념도 명확해졌습니다. 앞집에 사는 정화나 집 앞의 큰 교회 목회자 가족이면서 집도 가까운 예아, 등 하원 길에 자주 마주치는 재하, 큰 길 하나 건너에 있는 갈비 집 아들인 세민이 등의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동네의 범위도 넓어졌고 동네의 지리적 이해도 높아졌습니다. 물론 그런 이해들이 높아지면서 가까운 데는 자기 혼자 가 보고 싶은 욕심도 생겼죠. 예를 들어 집에서 걸으면 오 분도 안 걸리는 주민 센터라던가, 가는 길이 훤하게 보이는 어린이집도 혼자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또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인 정화집도 놀러가고 싶어 했죠.


이와 함께 복잡한 건물에서 혼자 입구를 찾아서 나오고도 싶어 했죠. 우리 동네에는 오래 된 주상복합 건물 지하에 큰 슈퍼가 하나 있는데 이 건물이 과거에 제법 크고 번창했던 상가였던지라 나름 구조가 특이하고 복잡합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상가로 올라가 구경-지금은 입점한 상가가 드문드문 있지만-도 시켜 준 뒤 나오는 걸 몇 번하자 은채는 아빠가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있는 동안 몰래 계단을 올라가 보거나, 아빠랑 각자 상가의 다른 통로로 가서 입구에서 만나자고 제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소소한 모험을 하면서 은채는 집을 중심으로 한 자기 동네, 동, 구, 시의 범위를 어렴풋하게 깨우치기 시작했습니다.


은채는 이렇게 커 가는 동안 주변 친척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로 십오 분 거리에 사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은채 성장기의 중요한 영향을 주셨습니다. 제철 과일을 좋아하시는 외할아버지는 은채가 돌도 되기 전에 단감으로 유명한 진영에서 홍시를 사 오셔서 설탕으로는 낼 수 없는 기가 막힌 단 맛의 세계를 보여주셨죠. 나물을 좋아하시는 외할머니는 은채에게 참나물, 취나물, 시금치, 톳 등이 내는 싱싱한 맛을 알게 해주셨고요. 게다가 워낙 싱겁게 드셔서 은채는 그야말로 아무 간이 안됐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나물을 먹어 왔기에 지금도 조금이라도 간이 센 음식을 먹으면 대번에 짜다고 할 정도죠.


외할아버지는 또 은채가 탈 것을 시기마다 바꿔주셨죠. 은채에게 첫 신발을 사주신 분도 외할아버지고, 거실에서 타는 붕붕카를 사주신 분도 외할아버지, 겁 많은 아빠가 사주기 망설이던 킥보드를 덜컥 사주신 분도, 보조 바퀴 달린 핑크색 자전거를 사주 신 것도 외할아버지입니다. 외할아버지는 은채가 엄마와 조리원에서 나온 후 한동안 은채 목욕을 시켜주시러 자주 오셨습니다. 허둥지둥 대는 엄마 아빠가 못 미더운 것도 있으셨고, 아끼는 큰 딸이 낳은 손녀를 애지중지 하셨기 때문이죠.


외삼촌과 이모도 은채에게 한 없이 베풀어준 가족입니다. 외삼촌은 은채가 원하는 것이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줬습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장난감, 옷, 신발, 모자까지 그 종류는 다 헤아릴 수가 없죠. 이모는 바쁜 미국 간호사 생활 속에서도 한국에 휴가를 오기 몇 달 전부터 틈틈이 은채 옷과 신발을 사 모으고, 이모의 딸, 그러니까 은채한테는 네 살 터울의 사촌 언니인 크리스틴이 입던 옷들을 잘 정리해서 모아 놓습니다. 은채 이모가 한국에 올 때마다 커다란 캐리어 하나는 선물로 가득 차고, 심지어 어떤 때는 은채에게 줄 옷으로만 가득 채운 캐리어를 따로 들고 온 적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모는 은채 선물을 잔뜩 가져 왔습니다. 제일 큰 캐리어 하나 가득 말이죠. 그 안에는 사촌 언니가 입던 옷도 있고, 엄마가 부탁한 운동화, 은채에게 잘 어울리는 화려한 원피스를 비롯한 새 옷들이 있었습니다. 은채는 자기 방을 이모한테 내주면서도 매일 싱글벙글 했습니다. 이모와 보드 게임도 하고 아빠랑 함께 갔던 못골 시장에서 반찬도 사고 아빠가 사준 호떡도 사 먹었습니다. 아침 등굣길도 이모와 함께 여서 더 신이 났죠. 가는 길 곳곳에 있는 나무며 꽃도 설명해주고 가다가 만나는 친구, 언니, 오빠도 일일이 가르쳐 줬습니다.

이모가 온 두 째 주 주말에는 삼촌이 장기 출장 가 있는 대구에 함께 놀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은채와 이모는 아직 남아 있는 벚꽃 길 아래에서 한 시간 넘게 사진을 찍고 놀았고, 팔공산과 동화사 곳곳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또 계산 성당과 제일 교회, 근대 유산 거리, 이상화 생가 등을 방문해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죠.


KakaoTalk_20170428_084415438.jpg 은채한테 포즈를 배우는 이모

은채가 글을 깨우치고 혼자 동화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전 가끔 은채의 미래를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그 생각 끝에 내리는 결론 중 하나는 ‘분명 은채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다.’라는 겁니다. 저나 아내의 부모님은 여유가 있으신 편이 아니었습니다. 저와 아내는 유치원은 물론이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학원 한번 다녀본 적이 없죠. 전 더 가난했던지라 소풍은 물론이고 수학여행, 졸업 여행도 가 본적이 없습니다. 아내의 친척 중에서 아내는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첫 번째 사람이고, 저 또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언 전 대학을 갈 때 상의할만한 사람이 없어서 당시 일간지에 실리던 대학 별 전공 표를 보고 전공과 갈 대학을 골라야 했을 정도였죠. 아내는 고교 졸업 후 병원에 취직했고, 이후 대학과 석사 과정을 혼자 힘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의료사회복지사로 부산의 한 대형병원의 사회사업실을 책임지고 있는 입지전적인 전문직 여성입니다.


은채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외삼촌, 한국에선 일본어를 전공했으나 미국에선 간호학으로 진로를 바꿔 성공적인 간호사의 삶을 살고 있는 이모,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서 의료사회복지사가 된 엄마, 카피라이터와 작가로 책, 영상 가리지 않고 글을 써대는 아빠를 가족으로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 미국에 있는 친가에 가면 미국인 친할아버지는 유명한 헬리콥터 엔지니어이고, 그 할아버지의 손자 중 한명은 텍사스의 명문 대학에서 항공 공학을 공부하고 있죠.


은채의 꿈은 발레리나, 아이돌, 모델, 작가 등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생겼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은채가 어떤 꿈을 꾸던 은채를 도울만한 사람, 조언을 해줄만한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엄마의 친구들은 학교 선생님, 사회복지 시설 원장, 대기업 임원 등 직업도 다양하고 사는 곳도 부산을 비롯해서 캐나다까지 펼쳐져 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부산에 살기 시작한 삼촌의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이모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죠.

은채는 저와 아내가 가지지 못했던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 속에 자라고 있고, 은채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도움을 줄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속에 성장하고 있죠. 은채는 모르지만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은채의 삶을 알게 모르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죠. ‘네가 부르면 내가 거기 있을게’라는 노래 가사와 같은 다짐을 마음에 간직한 채 말이죠.


은채에겐 최근 마우스와 키보드가 생겼습니다. 키보드는 삼촌이 사줬죠. 프로그래머이자 게임을 좋아하는 삼촌은 은채가 좋아할만한 게임 CD를 일부러 사서 함께 게임을 하면서 은채에게 조금씩 IT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엄마는 종종 병원에 데려가 엄마가 일하는 곳과 모습을 보여주죠. 그래서 은채는 그 병원을 지나갈 때마다 ‘엄마 병원’이라고 합니다. 저도 집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큰 책상에 나란히 앉아 같이 책을 읽기도 하죠. 미국에 갔을 때는 이모가 다녔던 대학과 일하고 있는 병원도 구경했죠.


은채는 종종 자기는 미국으로 대학을 갈 거라고 말합니다. 이모와 친할머니가 사는 미국이라 지금은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은채는 수많은 가족과 사람들의 지지 속에 해 나갈 것입니다. 은채가 크면서 자신의 성장의 순간마다 함께 해준 소중한 가족과 이웃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길 바랄 뿐입니다.


4월 29일 월요일 새벽, 이모는 다시 텍사스로 돌아갔습니다.

은채는 새벽 네 시, 공항으로 가기 전 이모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나지막이 부르자 벌떡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잠을 청하면서 잠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년에 다시 보자고 한 약속을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이 차오르는 서운한 마음은 다시 잠드는 것을 한참 동안 방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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