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함께 보낸 주말

궁금한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아지는 4월

by 최영훈

은채는 토요일을 저와 보냈습니다.

오전 열시엔 학교에서 하는 음악 줄넘기. 열두시엔 부경대학교에서 하는 <동화야 놀자>에 참여했죠. 사실 오후 네 시에 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발레도 해야 했지만 엄마가 없어서 운전을 해 줄 수 없는 관계로 그냥 저와 보냈습니다.

은채와 아빠가 주말 오후를 집 밖에서 보내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점심은 부경대학교 뒤편에 있는 단골집에 가서 은채가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를 먹습니다. 그리고 인근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 두어 시간을 보냅니다. 은채는 이곳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마녀 위니> 시리즈를 찾아보거나 다양한 학습 만화와 동화책을 들춰 봅니다. 그런데 이번 주말엔 좀 달랐습니다.

은채는 책을 찾는 검색대 앞을 좀처럼 떠나질 못했습니다. 은채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걸 보고 제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잠시 떠돌다 자리에 오면 은채가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리번거리면 은채는 다시 검색대 앞에 서 있었습니다. 뭘 하나 봤더니 은채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검색창에 자신이 직접 검색어를 입력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빠. 나 이것 좀 가르쳐 줘. 어떻게 글이 써지는 거야?”

은채는 "어떻게"와 “거야”에 특유의 부산 사투리 억양을 넣으면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전 마우스를 사용해 커서를 검색창에 넣은 다음 키보드를 이용해서 글자를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백스페이스를 이용해 글씨를 지우는 것도 보여줬죠. 은채는 몇 번이고 다시 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손님이 오셔서 자리를 피해 줘야 했죠.

사실 은채는 요 근래 들어 부쩍 공부방의 컴퓨터 앞에 앉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컴퓨터를 켤 줄 모르니 당연히 검은 색 화면을 보고 아빠가 리드미컬하게 키보드를 두드려서 글을 쓰는 걸 흉내만 냅니다. 은채는 이제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고, 검색을 하고 싶어 하죠.

종종 주변에서 언제, 어떤 걸, 어떻게 가르쳐야 좋은 지, 저나 아내에게 물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전 언제나 아이가 원할 때라고 답합니다. 은채는 자기가 원하는 순간에 성장의 단계를 스스로 넘어 서곤 했습니다. 젖병을 떼고, 젖꼭지를 떼는 것도 별 무리 없이 때가 되니까 휙 집어 던지고 이유식으로 바꿨습니다. 브로콜리를 먹을 것 같아서 줬더니 잘 먹었고,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도 궁금해 하기에 줬더니 잘 먹었습니다.

한번은 반찬 가게에서 다시마 채 무침을 사서 먹여줬는데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꼬시래기 무침이 있기에 사줬더니 그것도 잘 먹었습니다. 은채가 궁금해 하고 먹고 싶어 하면 어떤 식재료로 만들었던 일단 사서 먹여 봤습니다. 어떤 걸 먹을 수 있는지 먹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으니까요.


뭔가를 배우거나 단계를 넘어서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저귀를 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살 때 추석 때쯤 삼촌이랑 마트에 갔었습니다. 은채는 아기용 변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죠. 삼촌은 지나가는 말로 “은채야. 삼촌이 이거 사주면 응가하고 쉬는 이제 여기다 할 수 있어?” 하고 물었습니다. 은채는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죠. 이때까지만 해도 삼촌한테까지도 종종 낯을 가렸으니까요. 오래만-오랜만이라고 해봐야 이 삼주 정도였지만-에 보면 말이죠.

은채는 그날 밤부터 삼촌이랑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그 변기에 앉아서 쉬를 하고 응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린이집 갈 때를 제외하고는 기저귀를 안 차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네 살 무렵부터는 거의 안 차게 됐죠.

젓가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엔 엄지손가락 보조기가 달린 젓가락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그것이 없는 것으로 바꿨고 여섯 살이 되면서 친구 중 하나가 분리 된, 그러니까 어른 젓가락에서 크기만 줄인 젓가락을 들고 온 걸 봤습니다. 은채도 그걸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린 일단 연습을 해야 한다고 했죠. 은채는 그날부터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연습하더니 서툴게나마 하게 됐고 다음 주 부터는 당당하게 가져갔죠. 그 후에는 포크도 빼달라고 하더군요. 포크는 애기들이나 사용하는 거라면서요.

그렇게 은채가 원할 때, 우린 은채에게 뭔가를 가르쳤습니다. 한글도 그랬고, 발레도 그랬죠. 킥보드도, 자전거도 그렇고요. 그리고 지금, 은채는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 합니다. 자신만의 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열고 싶어 하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인터넷 검색은 엄마 아빠가 해줬습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새로운 <마녀 위니> 시리즈가 들어 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아빠에게 검색을 부탁해야 했죠. 하지만 이젠 자기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터넷에 들어가 자기가 알고 싶어 하는 걸 찾으려 하는 것이죠. 그리고 아빠가 늘 얘기하는 키보드로 글을 쓸 때의 리듬,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하는 것 일 테고요.

언제부터 컴퓨터를 가르쳐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은채가 원하면 컴퓨터를 이용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은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가 곧 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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