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이 많다. 감독과 내가 흔히 쓰는 표현을 빌리면 양아치도 많다. 일을 했는데도 돈을 안주거나 아예 일을 할 때부터 견적이 어느 정도 되는지 얼버무리는 인간도 많다. 일의 범위와 개수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놈들도 많다. 3 정도만 해달라고 하고, 또 딱 그 정도만 돈을 준다고 해 놓고 4나 5, 심지어 6이나 7을 원하는 인간도 많다. 광고주나 공공 기관 사람이면 그런가 보다 한다. 같은 업계에 있는 인간들 중에도 그런 인간들이 많다. 어떤 놈이 양아치인지 전화 몇 통 돌리면 알 수 있는 부산 울산 경남에도 그런 인간들이 많은데 수도권엔 얼마나 많을까?
실력 인플레이션도 심하다. 국비를 지원받는 취업 교육 광고를 보면 6개월만 교육받으면 전문가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재작년, 감독이 직원을 뽑을 때 되도록 지역 인재를 우선 골랐다. 학력은 보지 않았다. 편집 프로그램과 포토샵 같은 업무 관련 프로그램과 툴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우선으로 추렸다. 구인구직 사이트에는 자신의 역량을 상중하로 나눠 표기하게 되어 있었다. 다들 “중”이상, 심지어 상도 많았다. 울산이나 양산을 연고로 하는 이력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배운 곳이 같았다. 시내에 있는 한 학원이었다. 앞서 말한, 몇 개월 만에 전문가로 만들어준다는 곳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배운 사람들이었다.
어려운 일이다. 다른 사람, 그것도 보지도 못한 사람의 실력을 가늠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기안 84가 포트폴리오를 믿지 못해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보게 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물론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촬영과 편집이 앉은자리에서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CG와 같은 후반 작업은 말할 것도 없다.
실망했던 두 사람
결국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감독은 그렇게 두 사람에게 실망했다. 한 사람은 사진은 곧잘 찍는데 영상의 문법을 이해 못 했다. 결국엔 몇 개월 만에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서 그걸로 밥을 먹고살고 있다. 일이 없을 땐 가끔 우리 일을 도와주러 오곤 한다. 수영에서 사는 조감독이 그다.
한 사람은 일 년 정도 버티다 그만뒀다. 영상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도 좋아했지만 애초에 문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표현하고 싶은 걸 표현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표현해야만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 친구에겐 그런 기본이 없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은 그럴듯했지만 목적 있는 영상, 구도와 서사가 있는 영상은 어려워했다.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유혹
집 근처, 경성대 부경대 역과 대연역을 자주 드나든다. 그곳에도 그런 광고들이 있다. 몇 개월 만에 영상 편집을 배워서 관련 분양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광고, 손쉽게 배워서 영상 크리에이터의 길로 나갈 수 있다는 광고, 이런 광고를 하는 학원과 국가 지정 교육 기관들이 있다.
그런 광고에 혹해서 학원에 등록하여 열심히 배우는 이들이 많다. 전공과 관련 없이, 그저 주변에서 사진 좀 찍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썩히기엔 그 재주가 아깝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서 그렇게 이 길로 들어서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이 워낙 많다 보니 앞선 글에서 말했듯이, 중고 장비 사이트가 호황이겠지.
현장에 뛰어든 막내
무슨 조언을 해줘야 할까? 앞으로 나올 칼럼에 썼는데, 지난해 마지막 촬영 현장엔 서울에서 조명팀이 내려와 합류했다. 그 팀엔 막내가 있었다. 처음엔 남자인 줄 알았으나 목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였다. 아담한 키, 푹 눌러쓴 캡, 반스 운동화, 두툼한 후드티, 헐렁한 청바지 차림의 그 친구는 무거운 조명 장비를 이리저리 옮겼고 잘 빠지지 않는 봉을 힘겹게 올려 조명의 높이를 조절했다.
나중에 조명 감독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스물셋,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현장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드라마 현장에서도 막내라고 한다. 조명 감독이 좀 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싶어서 울산까지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친구는 저녁도 못 먹고 전주로 가서 거기서 부모님의 차를 얻어 타고 논산의 드라마 촬영 현장으로 이동했다. 밤 시간, 울산에선 논산으로 바로 가는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 뒤에 붙을 명사를 위해
조명을 따로 가르치는 학원이 없었기에 그 친구는 현장에서 배워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 하더라도 현장에서의 배움 없이는 현장에서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분야가 있다. 아마 많은 분야가 그럴 것이다. 학력도, 학벌도 보지 않는다. 무엇을 배웠는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 일을 포함한 많은 분야의 일들은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래서 그 일에 내 인생을, 그 인생의 시간을 얼마나 바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감독과 카피라이터는 보통명사다. 우리랑 함께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보통명사를 앞이나 뒤에 달고 있다. 그 보통명사가 그렇게 자신의 성이니 이름 뒤에 붙으면, 그 보통명사는 고유명사가 된다. 그 이후, 그 고유명사가 곧 자기 자신인 삶이 펼쳐진다. 그 삶을 사는 사람은 그 고유명사가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것보단, 자신이 그 고유명사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다들 그렇게 애를 쓰고 산다. 총감독, 편집 감독, 조명 감독, 음악 감독, 메이크업 아티스트, 배우, 모델, 그리고 카피라이터..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