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지금 울릉도에 있다. 그곳 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마을의 전통 행사를 촬영하기 위해서다. 바다가 허락한다면 올해 안에 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곳에서 새해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 어디에서 새해를 맞든 새 해의 첫 주는 쉬기로 했다. 감독이 아내 친구 부부와 동반하여 무주인가 어딘가로 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도 계획한 여행이 있다고 했다. 감독이나 나나 처지는 비슷하다.
그가 버텨 온 시간들
감독이 오랫동안 지켜온 회사 이름으로 된 폴더를 열어 살폈다. 2016년까지, 일이 별로 없다. 심지어 2016년엔 하나밖에 없다. 여러 일이 있었겠지만 작가와 함께 할 만한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2017년 폴더를 열어보니 제법 일이 많다. 울릉도에 있는 독도 박물관 관련 파일이 몇 개 있고 울산 북구청 관련 파일이 몇 개 있다. 울주군 관련 파일이 또 몇 개 있고 북구의 쇠부리 축제 관련 파일과 울산광역시 20주년 관련 파일도 있다.
우리가 처음 얼굴을 마주한 것이 2006년이고, 박감독과 감독이 차린 회사에 내가 참여한 것이 그다음 해다. 그 후 박감독과 내가 도망갔고 감독 혼자서 울산 옥동의 사무실을 지켰다. 그렇게 딱 십 년 후, 그에게 서서히 훈풍이 불어왔다.
하나의 장면, 한 명의 영상 장인
난 그를 동종업계의 한 사람으로, 영상의 장인으로 존경하고 있다. 2009년의 일이다. 울산박물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하나의 자료가 발견됐다. 일제 강점기, 울산의 중심가인 달동 인근에 대한 민속학적 조사 연구 보고서가 발견된 것이다. 학예사들은 그 몇 십 년 후, 울산 달동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러니까 그야말로 비포 애프터를 비교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이 일은 그전부터 진행됐었는데, 감독은 이 일과 관련하여 카메라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문제는 전반적인 스토리 텔링을 해줄 작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의 방송 작가 등을 섭외하려 했지만 4, 50년을 오가는 다큐멘터리를 극적으로 구성할 작가를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 일은 돌고 돌아 감독에게 왔고 감독이 전체 진행을 맡기로 하면서 작가로 날 선택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여름이다. <울산 달동 영상 민속지 시나리오 초안 2009.8.24.~>이라고 문서 상단에 쓰여있다. 기억이 맞는다면 옥동 사무실에서 학예사들과 미팅을 했던 것 같다. 주제와 소재, 러닝타임과 데드라인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학예사들이 준 자료와 검색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15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물론 시나리오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다. 공무원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한 마디씩 거드는 사람은 많으니까.
그 해 가을, 추석이 지나서였을 것이다. 감독이 사무실을 옥동에서 무거동으로 옮긴 후였다. 감독이 촬영본을 함께 보면서 시나리오 수정과 자막에 대해 논의하자고 날 불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때가 아마 처음 무거동 사무실, 그러니까 지금의 사무실에 처음 갔을 때였을 것이다.
영상은 한 가정의 추석맞이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감독의 카메라는 오래된 시골집의 담장 밖에서 슬며시 위로 올라와 전형적인 시골집의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붉은 고추가 펼쳐져 있는 마당, 기름 냄새 진동하는 마루, 잘 익은 감을 힘겹게 달고 있는 감나무, 정겹게 대화를 하며 음식을 하고 있는 친척들.
그 카메라의 시선은 따뜻했고 친밀했으며 인간적이었다. 그 바라봄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영상 일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의 시선엔 조급함이 없었다. 연출도 없었다. 그저 보고 있었다. ‘아, 이 사람, 이걸로 돈 벌기는 힘들겠구나. 그야말로 영상쟁이구나.’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기회의 모멘텀
그 다큐 이후 십 년이 안 돼, 거짓말처럼 그의 일이 풀리기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바빠졌다. 그 모멘텀은 분명 있었다. 그 순간에 대해선 후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어찌 됐든, 그 순간을 자신의 기회로 만든 사람은 어디까지나 감독이다. 인내하며 자신의 실력을 쌓아 온, 어느 영상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던, 모든 영상에 진심이었던 그 사람이 불쑥 찾아온 순간을 도약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 영상을 본 후로, 동종 업계의 영상쟁이로서, 한 명의 장인으로서, 한 명의 동료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존경하고 있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도 말을 놓지 않고 - 감독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다 -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늘 감독님이라 부른다. 그의 무게감을 높여주고 싶어서, 최근 몇 년 동안 미팅을 가면 돈이나 시간, 전략과 같은 약간은 껄끄러운 이야기는 우선 내가 먼저 논의하고 후에 감독이 등장해 정리하고 있다. 일종의 Bad Cop, Good Cop 전략이라고나 할까?
감독의 시간은 아주 오랜 기다림 끝에 왔다. 당신의 시간은 언제 올까? 어쩌면 내일, 어쩌면 다음 달, 어쩌면 내년일지도. 그때가 올 때까지 사랑하는 일에 진심이길. 의외로 세상은 진심을 알아본다. 아니 알아보는 사람이 남아 있는지도. God Bless You and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