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와 유명-새
최근, 일 때문에 자주 가는 거래처, 예를 들어 지역의 시청이나 구청 같은 곳에 가면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 우리에게 일을 맡겼던 주무관은 물론이고 우리를 처음 보는 사람도 우리인지 대충 눈치 챈다. 워낙에 자주 들러서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민원인이나 업체 관계자하고는 다른 모양새여서 그럴 것이다.
다른 고객을 만나러 가도 마찬가지다. 담당자는 사무실 입구에 나타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대번에 알아본다. 물론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와 처음 마주하는 고객들은 종종 “아, 이런 일 하시는 분처럼 보이세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런 모양새는 어떤 모양새일까?
덕분에 우린 본의 아니게 나름 외모에도 신경을 쓰고 살게 됐다. 뭐, 그렇다고 좋은 옷을 입거나 구두에 광을 내는건 아니다. 피부나 헤어에 신경을 쓰는 것도 아니다. 감독은 두어 달에 한번 정도 파마를 하고, 난 고객을 만날 때는 면도를 하고 나가는 정도다. 둘 다, 십몇 년 간 비슷한 스타일로 옷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의 옷이 해지면 유사한 옷을 사서 입는다. 그것뿐이다.
우리와 일했던 사람은 물론이고 우리와 일해 본 적이 없던 사람도 우리를 알아볼 수 있게 된 지 얼마 안 됐다. 우리 회사의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는 인사를 받기 시작한 것도 몇 년 안 됐다. 일 잘한다, 작가님 말씀은 말이 들었다는 인사를 받기 시작한 것도 몇 년 안 됐다. 그전까지 우리는 이름도, 형체도 없이 많은 일을 했다. 감독은 선배 회사의 이름 뒤에서 일을 했고, 나 또한 프리랜서로 그 뒤에 숨어서 일을 했다. 때문에 감독은 일을 많이 해도, 아무리 큰 프로젝트를 해도 그것을 자신의 포트폴리오 삼을 수 없었다. 그것을 발판 삼아 더 큰 일에 도전할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듯, 우리 또한 실적이 없는 회사는 실적을 쌓을 수 없는 구조다.
무명했던 시간들
감독은 2014년에서 2015년 사이, 지역의 대형 조선 업체와 중공업의 홍보 영상을 몇 개 했다. 그때, 감독이 자기 회사의 이름으로 했으면 그것이 실적이 되어서 여러 입찰에 쉽게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몇 천만 원짜리 일은 감독 선배가 따온 일이었다. 회사는 그 정도 규모의 일을 할 업력과 규모는 됐지만 능력이 없었기에 감독에 맡겼다. 지금도 그렇다.
대기업 홍보영상은 2010년을 기점으로 감각적이면서도 콘셉트가 명확한, 스토리텔링이 중요시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과거 기업의 역사나 실적, 정보만 나열하던 스타일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그건 관공서, 공공기관, 지자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수장의 성향에 따라 여전히 보수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기도 했지만 유튜브로 관련 기관이나 유사 단체의 영상을 확인한 담당자는 요즘 유행에 맞게, 세련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저 고객이 주는 정보를 나열해 그 정보에 맞는 영상만 나열하는 일방적인 홍보 영상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수도권에선 그 몇 년 전에, 그리고 지역에서도 그런 흐름들이 이어졌다.
적응에 실패한 선배들
문제는, 우리보다 선배들은 이런 변화에 적응을 못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획과 표현 전략의 문제였다. 홍보 영상 기획도 광고 기획하듯이 접근해야 했다. 홍보 영상 표현도 TV-CF처럼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지역의 선배들 회사엔 기획과 크리에이티브를 다 갖춘 직원이 거의 없었다. 결국 외주를 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감독에게 이런 큰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시기, 난 서울의 대학을 오가며 광고와 홍보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서울의 유명 회사에 다니는 선후배들을 통해 이런저런 업계 트렌드에 대해 귀동냥을 들어 알고 있었다. 또, 선후배들이 슬쩍 언급한 관련 자료들은 많이 찾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기에, 수도권의 다종 다양한 관련 기업에 취업한 제자들과 여러 채널로 소통하면서 관련 트렌드를 뒤늦게나마 따라가고 있었다.
지역에 뒤늦게 불어온 업계의 흐름과 감독이 인내하며 긴 세월 쌓아온 실력과 신뢰, 내 공부와 갖고 있던 정보와 쌓아 온 경험이 맞아떨어지면서, 이 이후 서서히 감독의 이름과 회사의 이름이 흔한 말로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감독과 내가, 그리고 우리 팀이 이름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의 삶과 책임
이름이 나는 걸, 유명(有名)해진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름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 없이 살다가 간다. 지역과 업계는 고사하고 한 직장, 한 학교, 한 마을에서도 무명으로 살다가 간다. 나도 이 시기까지, 그러니까 2014년~2015년까지 거의 십 년이 넘게 일했지만 한 번도 이름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 이후로도, 몇 년 간 그랬다.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카피라이터에겐 이름이 필요 없다. 모든 결과물은 대행사나 제작사, 기획사의 이름으로 나간다. 그 명함과 회사 이름 뒤에 숨어서 몇 년을 살았고, 프리랜서로 일을 할 때는 또 그렇게 유령처럼 살았다.
이름값에 낀 거품
물론 이름이 있는 사람도 그 이름값을 못하거나 이름값에 거품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종종 그 이름값으로 더 큰 기회를 얻어 보겠다고 책을 내기 위해 나 같은 유령의 손을 빌리기도 한다. 다들 알겠지만 유명 인사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자기 개발/계발서의 대부분은 나 같은 유령의 손이 쓴다.
이 시기, 난 한 사람의 회고록과 한 사람의 자기 개발/계발서의 대필을 했었다. 전자는 우리나라의 주요 무형문화재였다. 당시 여러 안 좋은 일에 엮어 있었는데 그 일의 진실을 알리기로 작정하고 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그 분야에 대해서 역시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당시 얽혀있던 여러 문제들이 비교적 무난하게 해결되어서 출간도 취소됐고 원고도 묻혔다. 후자의 경우는 그룹 계열사 CEO를 하고 은퇴한 사람의 자기개발/계발서였는데, 자신이 메모를 잘해서 성공했다는 믿는 사람이었기에 메모를 소재로 책을 쓰려했다.
후자의 목차 파일을 열어 봤다. 1장은 메모에 대해, 2장은 경영과 리더십, 3장은 정보(대표가 관련 기업 출신이다.), 4장은 자기 계발, 5장은 주변 인물과 일상에 관한 것이었다. 출판사를 거쳐 넘어온 그 사람의 원고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자기 개인 블로그에 쓴 잡글과 사보에 남긴 몇 개의 글, 사내 내부망에 올린 글 몇 개가 전부였다. 내용이 너무 없어서 출판사 담당자와 상의했다. 이때 담당자들은 대체로 비슷한 말을 한다. “그냥, 뭐, 메모 관련 명언 몇 개 넣어주세요.”, “요즘 유행하는 비즈니스 트렌드 몇 개 넣어서 각색해주세요.”, “메모와 관련된 위인들의 에피소드 몇 개 넣어보죠. 뭐.”
이렇게 책이 나오면 이 책을 간판과 명함 삼아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기도 한다. 전문직에 있던 사람들은 전형적인 대학 교재 하나를 짜깁기해 내서 대학에서 겸임 교수를 하면서 강의도 하고 책도 팔기도 한다. 물론 그런 책들도 대체로 나 같은 사람이 써주는 것이다. 실제로 호텔 공조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의 관련 분야 교재를 대신 써 준 적도 있다. 그전까지 에어컨과 실외기도 구분 못하던 나였지만 관련 전공 교재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정보는 넘쳐나니까. 자기가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이 탄로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싶지만, 또 이런 사람들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 중 일부는 상상 이상으로 낯이 두껍다.
90번째 칼럼
자기의 이름으로 자기의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근 아흔 번째 칼럼을 송고했다. 딸과 걷다가 헤아려 보니 30개월, 2년 반이다. 한 달에 세 편, 매달 15일, 한 번도 마감일을 어기지 않고 보냈다. 서너 개 쓰면 한 개 정도 맘에 든다. 지금도 그렇다. 딸이 물었다. “아빠, 제일 처음 쓴 영화가 뭐야?”, 뭐더라. 방금 폴더를 열어 확인해 봤다. <미녀와 야수>다.
이름을 걸고 살기
요즘 젊은 후배들 중엔 모르는 사람들의 재능을 모아 일을 하는 이도 있다. 크몽이나 숨고, 관련 카페나 커뮤니티에 일의 한 부분을 맡아해 줄 사람을 구한다는 공지를 올린 후,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일을 맡긴 후 그 일의 조각을 모아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의 능력이 고르지 않고 그 성실함 또한 제 각각이니 종종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과 규모의 일까지는 그럭저럭 가능하지만 어느 수준을 넘어가는 일을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고객의 입장에선 이런 전문가와 그 팀에게 일의 책임 여부를 물을 수 없으니 일을 계속 맡기는 것이 쉽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싼 맛에 맡기는 것이지 품질이나 마감일을 보고 맡기는 것은 아니다.
유령이나 타인의 이름, 다른 조직의 이름 뒤에 숨지 않고 우리 이름, 내 이름을 앞세워 사는 삶은 쉽지 않다. 무한 책임지는 삶이다. 칭찬도 내 몫이지만 비판도 내 몫이다. 그 이름의 무게를 이제 겨우 알아가고 있다. 십 년 전에 알았으면 좀 달라졌을까? 늦게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