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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n 29. 2023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아즈마 히로키

동해선에서 읽은 책 55

아즈마 히로키의 바람처럼 이 마이너 한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살아온 시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오타쿠?

그의 글의 매력은 꼭 정리, 정의하고 넘어가야 될 개념 및 이론은 최대한 깔끔하고 쉽게 정리하고 넘어간다는 것. 책의 초반부, 오타쿠의 역사, 그리고 오타쿠가 사회 부적응자의 이미지를 입게 된 계기, 그 뒤의 오타쿠들의 반항과 저항과 연대, 오타쿠의 성장과 전환점 등을 <건담>과 <에반겔리온>, 그리고 미소녀 게임의 위상, 그들의 활동 특징, 그 특징이 포스트모던 이론 및 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큰 이야기/거대 담론

내가 가장 매력 있게 읽은 부분은 2장. 책의 본론에 해당된다. 아즈마 히로키는 2장에서 아주 광폭의 역사와 중요한 전환점을 다룬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놓지 않고 쉽고 간략하게 설명한다. 특히 큰 이야기/거대 담론이 버텼던 19세기, 그것이 사형 선고를 받은 1차 세계 대전, 그런 것(이데올로기, 종교와 같은 거대 담론)이 없거나 유명무실해졌거나 의미가 없거나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것이 작동하고 있고 존재하고 있으며 의미가 있다고 믿거나 그래야만 하기에 오히려 그 거대담론의 형식을 엄격히 따졌던 70년대 언저리의 스노비즘, 그리고 68 혁명 이후 거대담론의 붕괴를 예감했지만 냉전과 공산주의 국가에 기대어 붙잡고 있던 거대담론의 유령이 완전히 사라진 뒤 사소한 이야기, 작은 이야기가 득세하기 시작한 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아즈마 히로키는 이 흐름을 일본의 현대사와 대중문화를 발판으로 설명하지만 상당히 보편적으로 이해된다. 특히 대중문화 전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도 슬쩍 내비치지만 미국의 코믹스나 B급 공포 영화의 유행과 자동차 극장의 전성기, 이후 스타워즈 등을 신앙처럼 떠받들었던 서양 덕후들(레디플레이어원을 보라)을 탄생시킨 SF물의 등장, 80년대 말에서 90년대로 이어지는 비디오 시장의 성장과 멜로 영화의 득세 또한 아즈마 히로키의 통찰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은?

여기서 자세히 얘기하지 않겠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90년대 이후 학생 운동의 소멸 과정과 대학 교육의 상업화와 상품화(산업화가 아니라 상업화고, 제품이 아니라 상품이다.), 게임 산업의 성장, 우리나라 웹툰 시장의 성장, 이데올로기 정치에서 생활정치로의 전환, 심지어 일부 젊은 정치인의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비판과 더 나아가 혐오까지에 오는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다. 


이 세대와 저 세대

어제,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딸은 잠을 안 자고 지 방에서 패드를 켜놓고 유튜버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아내가 왜 안 자냐고 걱정하기에, 재우기 위해 들어갔더니 방송 중인데 왜 들어왔냐고 투덜거렸다. 당연히 방송 따윈 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방송의 시뮬라시옹이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본 유튜버들의 콘텐츠를, 아즈마 히로키의 표현을 빌리면 2차 생산하고 있었다.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의 시뮬라크르.....


애는 물론이고 얘보다 더 나이 먹은 애들도 오리지널, 작은 이야기 속에 담긴 큰 이야기, 철학, 세대와 시대, 사람과 인생을 관통하는 뭔가를 찾는데 관심이 없다. 그저 오늘 그 작은 이야기를 소비하고 그것을 흉내 내어 지도 만들고 싶은 뿐이다. 이야기에 대한 성찰 없이 그 이야기의 생산자이고 싶어 하는....


이런 이들과 큰 이야기, 거대 담론에 대해 성찰했던 경험, 그것과 함께 대학을 다녔으며 20대를 보냈던 우리와는 넓은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을 시장은 00세대니 하는 표현으로 간단히 규정하고 그 간극이 발생시킨 갈등의 현상을  "회식에 반대합니다." 따위의 카피로 간단히 설명한다. 그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어제 KNN뉴스에선 고물가와 이태원 참사 추모 분위기로 인해 매출이 하락하는 대형 마트들이 공격적인 마케팅과 프로모션으로 그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한 없이 가벼운 뉴스다. 과거 학교에서 무거운 뉴스 뒤에 맥락 없이 가벼운 뉴스가 이어져 시청자들로 하여금 뉴스의 사안들의 경중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든다는 비판적 입장을 배울 때... 그땐,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 했었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보니... 참... 한 없이 가벼운 뉴스다.


아즈마 히로키의 다른 책들, 그러니까 이 이후에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모은 <약한 연결>, <느슨하게 철학하기>와 같은 책에선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이 있다. 이 시간, 소위 학계의 지성들이 던져야 될 화두도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 한 없이 가벼운 시뮬라크르를 보고 만들고 보고 만들고를 반복하는 딸을 보며....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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