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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l 08. 2023

호모 사케르-조르조 아감벤

동해선에서 읽은 책 56

경계의 안과 밖, 그 어디에도...

국가는 국경선이 있다. 그리고 국가로부터 국민이라 인정받은 사람과 다른 국가로부터 국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있다. 내외국인과 외국인, 한국인과 일본인, 한국인과 미국인... 이들이 어디에 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중요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어느 나라 대사관이 나서주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들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렇게, 그 국경선 안에 살아도 국민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있고, 그 국경선 밖에 살아도 외국인이 아닌 사람이 있다. 탈정치적 존재, 탈주권적 존재, 추방된 존재... 마치 카인과 같은.... 추방은 당했으나 누구에게도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없으며,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없는.... 신이 카인에게 내린 저주는 이것이었다. 


살아있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머물 수 있으나 누구에게도 환대받지 못하며, 이름과 존재는 있으나 그 이름과 존재를 보증해 줄 그 어떤 권력, 정치적 호명이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야말로 신의 가호 외에는 그 어떤 정치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존재이며 신의 저주와 형벌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를 저주할 수 없는 존재...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


추방된 존재, 또는 구별된...

난민, 망명자, 추방된 이들, 집시들... 그리고 국가가 없었던 유대인들... 그리고 어쩌면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미얀마의 로힝야 족과 같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역을 구축하지 못한 사람들. 존재하나 그 존재를 정치적으로 입증받지 못한 존재들. 


그들은 역설적이게도, 식별된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줬다. 그 안도감의 유지를 위해 어쩌면 비식별역, 그 성 밖의 존재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엘리시움>과 <디스트릭트 9>의 은유를, <블레이드 러너>에서 그렇게 끈질기게 인조인간을 찾으려 했던 이유를, 산드라 블록의 <네트>와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나라는 실체를 잃어버리는 것의 공포를, <본 아이덴티티>에서 제이슨 본이 결국 얻고자 하는 대답이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속해 있는가였다는 사실을, 더 나아가 <빌리지>에 나온 그 높은 장벽의 구실을....


우리라고 별 거 있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이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사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를 추방, 유폐시킨다. 고립인가? 아니다. 이건 추방이다. 존재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 


우리의 불안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추방당할 수 있다. 하루아침에 내 책상이 없어질 수 있고 내 자리가 없어질 수 있으며 내 집과 재산이 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이름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무명의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이름엔, 우리의 존재엔 서열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서열의 맨 끝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존재가 있다. 벌거벗은 존재. 섬뜩하다.


착각

반대로 무엇이 된 사람들은 그 무엇을 자신이라 말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존재 a일 뿐이다. 대통령이든, 시장이든, 국회의원이든 그건 그저 하나의 존재 영역이다. 과거처럼 권력의 행함이면서 동시에 권력 그 자체이며 사람일 수는 없다. 짐은 곧 국가다, 와 같은 말은 이제 끝났다. 


결국, 어떤 사람이든 하나의 공적인 존재를 넘어선 존재, 고유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봐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식별 가능한 영역 밖으로, 나를 누구라 이름 지어주고 불러주고 칭해주던 권력과 구조 밖으로 나왔을 때, 그때의 나는 누군지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엔 뭐가 남을까? 불안....


다시 돌아간다. 우린 불안하기에 결국 늙어 죽을 때까지 어딘가에 속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식별역에 있다는 것, 추방된 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 속되면서도 성스러워서 평범한 우리와는 어울릴 수 없는 자.... 그런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사족...

소문이 무성했던, 그래서 작년에 사놨던... 그러나 엄두가 안 나서 손에 잡지 않았던 책을 쉬엄쉬엄 읽었다. 전반부는 까다롭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 우연히 카인을 떠올리자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갔다. 물론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다들 각자....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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