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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l 22. 2023

왜 철학을 하는가? - 리오타르

동해선에서 읽은 책 58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아닌 왜 하는가라니...

신선하지 않나? 내 서재에도 철학의 역사나 개념을 담은 책들은 몇 권 있다. 그러나 철학을 왜 하는지 노골적으로 묻고, 그 답을 집요하게 캐묻는 책은 없다. 그러니 저 답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리오타르의 이 책은 충분히 읽을만하다고 봤다. 게다가 그 리오타르 아닌가. 포스트모던의 큰 형님...


욕망과 철학은 끊임없이 공백과 허기를 만든다. 리오타르는 라캉의 욕망을 빌려와 욕망과 철학의 공통점을 말한다. 


"욕망에 대한 물음은 욕망할 만하기에 욕망이 일어나는가, 아니면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할 만한 것이 되는가의 물음으로 금세 넘어가 버립니다. 어떤 여자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가, 아니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사랑스러운 것인가를 알 수 있느냐 없느냐와 마찬가지죠."  - 위의 책, 14.


그걸 알면 광고하는 사람들 다 굶어 죽었겠지,라고 나는 썼다. 그러나 이건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선악과가 정말 보암직해서 봤는지, 봐서 보암직 했는지부터 출발하는 아주 원초적인. 그러니까 욕망의 결여, 저 싱크홀은 저 순간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완전무결한 낙원에서의 추방,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엄마 품으로부터의 격리... 철학도 결국, 욕망처럼, 난 왜 여기 고통스럽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위해서다. 소비가 그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라면....


그렇게 철학은 지혜를 찾지만 찾을 수 없다. 

리오타르는 이렇게 썼다. 


"지혜가 교환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귀해서가 아니라 지혜는 결코 자기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 같은 책, 38.


"철학한다는 것은 지혜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욕망하는 거예요." - 같은 책, 40.


리오타르는 소크라테스와 알키비아데스의 일을 배경으로 이런 말을 한다. 이 사건, 즉 향연을 안 읽은 사람에게도 저 말은 새겨져야 한다. 철학은 의심하는 것이다. 끝까지 의심하는 것. 인생을, 사회를, 타자를, 세계를, 탄생과 죽음을, 신과 인간을, 우리가 맞닥뜨리는 생의 모든 순간의 기원을... 그 모든 답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말을 뱉은 순간, 주어 삼키고 싶을 정도로 회의적인 것, 그것이 철학이다.


그래서 철학은 인류가 공통으로 끌어안아온 역사적 질문이자, 현존하는, 지금 던지는 질문일 수밖에 없다. 


"철학의 기원은 바로 오늘날입니다..... 우리는 철학을 한다는 것이 끊임없이 상실되어 가는 유일무이하고도 영원한 상실, 통일성의 상실, 의미의 상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책, 76/79.


삼십 대 중반쯤, "나"라는 존재의 답을 얻기 위한 독서가 시작됐다. 진짜 나는 누굴까? 난 왜 이렇게 살까? 우린 왜 답을 얻지 못할까? 또 카피라이터와 광고 쟁이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그 명제, 소비자는 소비에 끝을 모른다는 그 명제에 전제를 알고 싶었다. 


사람들은 왜 만족을 모를까? 욕구, 욕망은 뭘까? 왜 생길까? 그건 왜 해결이 안 될까? 이 질문들의 답은 손에 잡힐 듯 들어왔다가 물처럼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내 공부가 부족해서 그래, 내가 사람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서 그래,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고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래서 내년엔 좀 체계적으로 공부하자, 다음번에 저걸 읽자, 이 사람을 공부하자고 독려했다. 그리하면, 그걸 공부하고 읽고 터득하면 답을 핀처럼 박아놓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철학은, 리오타르의 말을 빌리면 저 확답과 통일성의 욕망으로 추동되어, 그 부재함을 향해 다가가다, 그 부재함의 연이은 물러섬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는 무엇이다.


무질서함, 혼돈, 이유 없는 것은 없을 것이라는 강박으로 사람들은 저 밤하늘의 별에도 이름을 붙였다.


"첫 번째 시간의 주제였던 욕망(Désir)이라는 말은 라틴어 ', de-sidarer'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어는 원래 밤하늘의 성좌(라틴어 Sidera)가 기호 signe가 되지 못하고, 신들은 천체를 통해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지요.", 같은 책, 81.


별자리는 인간이 만들었다.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밤하늘을 장식하고 있을까? 그건 아닐 거야... 이런 생각은 그 의미 없는, 스스로 아무런 의미를 말하지 않는 별들을 이어 의미를 만들게 했다. 그것이 성좌인데, 그 성좌에 신화를 갖다 붙였다. 의미 없는 별과 의미 그 자체인 신들이 이야기의 혼종이 바로 저 별자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린 안다. 저 별자리는 신이 만든 것이 아님을. 그 아쉬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야기가 되기 바란다. 이야기를 덧붙이고, 확장시킨다. 그래도 여전히 저 별자리는 신의 것이 아니다. 아무리 교회를 크게 지어도 그곳이 신의 성전이 아닌 것처럼. 


소통은, 정답이 없음을 절박하게 공감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나 가능한지 모른다. 


".... 소통이 역할의 교환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나는 그저 나의 이성과 정념을 지닌 나 자신이어서만은 안 되고 나름의 이성과 정념을 지닌 타자도 되어야 합니다. 타자 또한 나이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타자가 자기의 타자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말은, 생각은 유배될 수 없다. 유폐될 수도 없다. 햇볕 속을 걷지 않는 생각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소통이란 웃는 얼굴로 너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오은영 같은, 주일 낮 목사들의 설교와 같은 메시지 그 자체가 아니다. 반문 없는, 의심 없는, 박차고 나갈 수 없는 그 자리들.


온전한 철학이, 사유가 힘든 건 언어가 저 사전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써 놓고 고치고, 또, 또... 의미를 말로 적는 순간, 의미는 포획된다. 사로잡힌다. 자유롭지 못한 의미라는 생명..


"다시 말해, 적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142.


김진영이 <상처로 숨 쉬는 법>에서 말한 객관적 권력과 맥을 같이한다. 우리가 뭔가에 저항하기 위해, 그 행동을 촉발하기 위한 이론을 만들려고 할 때, 이를 위해 우리가 말을 고를 때, 그 말들은 누구의 사전에 있는 것인가? 우리의 사전은 다른 가? 적이 분명하다면, 말도 다르다면 우리의 사유의 전쟁은 얼마나 심플하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계속 철학해야만 하나...


"세계에 귀를 기울임으로써만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철학이 노후한 장식품, 양갓집 규수의 소일거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철학이 현실 속의 욕망이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점, 혹은 그런 순간일 수 있다는 점은 변치 않습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나 집단으로서나 겪는 결핍이 명명되는 동시에 변화하는 순간 말입니다.", 147.


"철학을 하는 이유는... 욕망이 있기 때문에, 현존 속에 부재가 있기 때문에, 생체 안에 죽음이 있기 때문에, 또한 아직 권력이 아닌 우리의 권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얻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소외되고 상실됨으로써 사태와 행위, 말해진 것과 말하기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말을 통하여 결핍의 현존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말해서, 어떻게 철학을 하지 않을 수 있답니까?"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단락,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던의 형님답지 않게 아주 친절하게 답을 썼다. 아마도 대학에서의 강연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가 나열한 이유들 중 공감하지 않은 이유가 없다. 물론 그 앞의 페이지에 공감했기 때문에 저 결론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저 마지막 문단의 서너 줄 안에 올 1년 간 읽어온 책들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한 해 마무리 책으로 이만한 게 없지 않을까?


얇은 책이다. 그리고 형님 답지 않게 쉽게 말하셨다. 소르본 대학의 신입생들 대상이었으니 더 애쓰셨겠지. 그 덕은 근 60년 후에 쉰의 독자가 본다. 아마 그 강연에 있던 누구도 이런 상상은 못 했겠지..(2021/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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