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대신 배워야 하는 것

영화의 위로 2 -23 - 어나더 라운드(2022)

by 최영훈

몸이 보내는 신호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이야 보통의 한국 남자들이라면 예비군이 끝나갈 때쯤부터 종종 하고, 민방위까지 끝나면 그야말로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만 쉰이 넘으니 진짜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사는 낙 중 하나가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는데 맥주로 들어오는 알코올과 가스 처리를 몸이 슬슬 부대껴한다. 그러면 양을 줄이면 될 텐데 그게 또 어디 쉽던가.


마라톤을 한창 즐길 때,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여한다는 교훈을 터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맥주가 보내는 유혹에 번번이 무너져 그 교훈을 잊은 척하고 마셔댔더니 이제 신호를 보내다 못해 몸이 버럭 화를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맥주에 미련의 눈길을 보내면서, 슬슬 전통주 쪽으로 주종을 바꾸려- 그렇다. 술을 끊는 것이 아니라 술의 종류를 바꾸려는 것이다. -는 즈음, 이 영화를 소재 삼아 술에 대한 글을 하나 남기려 한다.


바뀌는 음주 문화

믿기 어렵겠지만 지난 십 년 간 한국의 주류 출고량은 감소추세다. 그 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감소 됐던 해는 당연히 코로나19가 등장했던 2020년이었다. “한국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신다.”, “술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와 같은 말을 뉴스를 통해 많이 보고 듣고, 골목 모퉁이만 돌면 술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 많아지다 보니 술도, 주당도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와 시장의 트렌드는 내 예상과는 달랐다.

일단 집에서 마시는 홈술과 혼술이 많아졌다. 때문에 팬데믹 이후 회식이 줄면서 맥주와 소주의 소비는 감소했지만 위스키, 와인, 전통주의 소비는 늘었다. 몇몇 주류 마케팅 보고서를 보니 이러한 술 소비 경향을 “취향”이 지배하는 “주류 소비 트렌드”라고 분석했고, 이 흐름을 주도하는 무리로 2030 세대를 지목했다. 이들은 나 홀로 집에서 한 잔의 술을 마셔도 제대로 차려 마시고, 새로운 술에 도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과음보다는 가벼운 술자리를 선호하여 저도수 주류를 선호한다고 한다. 맥주 광고조차 “회식에 반대합니다.”라는 카피로 이들 MZ 세대의 비위를 맞추는 걸 보면, 이 보고서가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이 영화에 나온, 만취를 당연시하는 졸업식 파티처럼, 우리 사회는 흔들림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확인받기 위해, 또 그런 어른으로 살아가고 살아남기 위해 술에 취하여 흔들리는 시간을 당연시했다. 그러나 그 음주 문화도 바뀌는 중인 듯하다. 팬데믹을 겪었기 때문인지, 소위 MZ 세대와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인지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확실한 건 만취의 시대는 저물어 가는 것 같다.


네 남자의 실험

여기, 이 트렌드에 역행하는 덴마크의 40대 남자들이 있다. 같은 학교 선생님, 유부남 둘에 미혼남 둘이다. 지루하면서도 무난한 일상, 수업에서 사라진 텐션과 열정을 당연시하게 된 네 남자는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술을 마시다 한 논문을 화제에 올린다. 논문의 내용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0.5 정도로 꾸준히 유지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것. 배울 만큼 배운 네 남자, 실험에 돌입한다.


이 나라의 40대라면, 이런 실험, 할만하다. 덴마크의 권태로움은 국가적 현상인 모양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걸로는 한 때 세계 10위권, 지금도 20위권을 오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주인공의 아내조차 온 국민이 퍼마신다고 했다. 자, 생각해 보자. 덴마크에 뭔가 자극적인 것이 있던가? 영화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의 대사에 나오듯이 슈퍼모델 헬레나 크리스텐슨과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드러머 라스 울리히, 여기에 다홍색 유니폼을 입고 선 굵은 축구를 하는 국가대표팀이 가장 자극적인 “메이드 인 덴마크”이려나.


여하간 이 권태로운 나라의 권태로운 네 남자의 실험, 초반엔 성공적이다. 나아지는 부분이 있다. 권태는 쫓겨나고 수업은 활기를 찾았으며 부부 관계도 좋아졌다. 그러나 거기까지. 어디 술이 “적당히”라는 단어를 아는 놈이던가. 술로 찾은 에너지와 활기, 그놈이 다시 데려가고 뒤에 쓴 맛만 남긴다.


술은 깨운다. 에너지와 열정과 감성과 대화를 흔들어 깨운다. 저 멀리로부터 그것을 불러온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잠들어 있던 것을 다만 흔들어 깨웠을 뿐이라는 것이다. 술을 마시기 전에도 있던 것, 술의 힘을 빌려 다시 꺼냈을 뿐, 열정도 영감도 사랑도 이 권태로운 네 남자 안에 간직되어 있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 서두에 나온,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글을 곱씹어 봐야 한다. “젊음은 무엇인가? 꿈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라는 말은 얼핏 생각해 보면 젊어야 꿈을 꿀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이 문장 뒤에 이어지는, 호수를 한 바퀴 돌면서 맥주 한 박스를 마시는 레이스와 광란의 지하철 파티로 이어지는 영화 오프닝 시퀀스는 키르케고르의 말의 현현(顯現) 같기도 하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사랑을 하면 꿈을 꿀 수 있고, 그런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평생 젊게 살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주도의 완성, 그 조건

고독한 미식가 시즌 2의 첫 회, 중화식당 산짱 식당이 나온다. 일본의 평범한 중화요리 식당이 라멘과 만두를 파는 반면, 이 식당은 주당들을 위해 안주를 판다. 낮 세 시면, 이 주당들로 가게 안이 가득 찬다. 드라마가 끝난 후, 원작자인 만화가 쿠스미 마사유키가 드라마에 나온 식당에 직접 찾아가는 코너가 이어진다. 이 회에도 원작자는 그 소란스러운 식당을 찾아갔다. 조심스레 안에 들어가니 일본의 중견 배우인 나기라 켄이치가 맥주를 들이키며 반긴다. 주인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만화가와 배우는 몇 순배의 맥주를 마신 후 일본 소주로 주종을 바꿔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때, 나기라 켄이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술은 말이죠. 마시는 게 아니에요. 즐기는 거예요.”, 벌건 얼굴의 만화가, 쿠스미 마사유키가 맞장구를 친다. “아, 좋은 말이네요.”, 나기라 씨가 말을 이어간다. “그러니까 대낮부터 술을 마시면 그러지 말라고 사람들이 비난하는데, 이건 그냥 즐기는 거예요. 거 뭐냐, 꽃꽂이나 다도나, 다 같은 거예요. 그냥 즐기는 거죠. 일종의 주도니까요. 그럼, 주도의 소양을 닦기 위해, 한 잔 더 즐겨볼까.”, 불콰해진 얼굴의 배우가 주인장을 부르며 메뉴판을 살핀다.


순전히 이 두 사람의 대화 때문에 이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댁들이 인생의 행복을 위해 꽃꽂이, 다도에 심취하는 것처럼,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술을 마신다는, 당당하면서도 약간은 냉소적인 나기라 켄이치의 말에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 장면에 맘에 끌린 이유는 따로 있다. 활동 분야도, 나이도 다른 두 중년 남자가 한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정겹게 술을 마시는 풍경이다. 그리고 식당 안을 가득 채운, 무리 지어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가득한 풍경이다. 나기라 켄이치가 주도에 대해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이 두 사람의 정겨운 투 샷과 이 소란스러운 풀 샷에 담겨 있다. 주도(酒道)는 혼자서 소양을 닦아서는 그 이치를 터득할 수도, 득도도 할 수 없는 도(道)라는 것.


만취 대신 배워야 하는 것

영화 속 네 남자는 결국 술을 끊거나 줄였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은 많은 걸 새로 배워야 했을 것이다. 취하지 않고도 뜨거워지는 법, 열정을 깨우는 법,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느긋해지는 법, 대화를 많이 하는 법, 그리고 속내를 터놓는 법 등을 말이다.


새로운 음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배움이 필요하다. 저번 칼럼에서 말했듯이 돈벌이도 안 되고 심지어 육체적/정신적 건강에도 도움이 안 되는 뭔가를, 행복감을 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존재는 사람 밖에 없다. 그러니 술이 인생의 낙인 사람에게 뭐라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하고 싶은 운동과 할 수 있는 운동 사이의 간극을 확인한 뒤, 제 몸에 맞는 적당한 운동을 고르듯이 행복감을 주는 그 무엇 또한 그렇게 나이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하는 건 아닐까? 그 변화에 대한 긍정은 당연한 거 아닐까?


영화의 엔딩은 그 배움이 우리의 삶에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졸업식-장례식-졸업 파티-댄스로 이어지는 일련의 엔딩 시퀀스는 우리의 꿈이, 사랑이, 심지어 젊음이 우리 지척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댄스 장면의 앞 장면, 주인공 마틴은 별거 중인 아내에게 "나도 당신이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는다. 그 후, 졸업생들과 어울려 춤을 춘다. 이 춤엔 인생의 희로애락이 응축되어 있다. 친구의 상실, 졸업생에 대한 축하, 다시 회복하는 사랑,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일상, 그러나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꺼낼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열정. 이런 것들이 춤 한판에 녹아 있다.


나 또한 이 당연한 것들을 만끽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한 잔 더(Another round) 하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영화의 원제(Druk, 영어로 Drunk, 폭음이다.)처럼 폭음을 하고 잔 뒤, 푸석해진 얼굴과 텁텁한 입 안 때문에 후회하던 아침도 조만간 최후를 맞이할 것 같다. 이제는 좋아하는 IPA 맥주 한 잔을 공들여 마시거나 맑은 전통주 한 병을 마시며 그 향기와 복잡한 맛의 굽이를 따라가 볼 때가 된 듯하다. 술을 마시면 취하는 것이 당연하고, 술을 마시면 되도록 많이 마시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술잔 앞에 좋은 사람이 있고 한 잔의 술을 넘기기 전 더 많은 대화가 오가는 것이 한 잔 술을 위한 미학임을 받아들일 나이가 된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가벼운 술자리의 트렌드는 받아들이겠지만, 혼술의 트렌드는 역행해보려 한다. 술잔 앞에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 친구들이 그 희한한 프로젝트를 함께 했듯이, 쿠스미 마사유키와 나기라 켄이치가 어울려 취했듯이, 그렇게 단 한 잔의 술이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 술기운이 내 말문과 마음의 문을 열기 전에 그저 스르륵 내 말문과 마음 문을 열어줄 누군가와 마주하여 남은 가을을 잔에 담아 오랫동안 마셨으면 좋겠다. 이런 술자리라면, 주도의 산실이라 할 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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