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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pr 26. 2024

어쩌면 당신이 책을 내고 싶은 진짜 이유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49

책에 대한 수다

저번 주, 감독 및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책 이야기가 나왔다. 딸 친구 중 독서광인 한 녀석 이야기를 하다가 그 녀석이 5학년 때까지 스마트 폰도 없었고 집에 TV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책을 좋아하게 됐다는 얘기를 해줬다. 감독은 “마, 아는 그리 키워야 하는 긴데.”하면서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야기는 최근 나온 국민 독서율 이야기로 이어졌다. 열 명 중 일곱 명은 일 년 동안 단 한 권의 종이책도 읽지 않는다는 말을 해줬다. 다들 자신도 그중 한 명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뒤이어 이야기를 했다. 독서하는 사람도, 그 양도 절대적으로 줄어들어서 서점은 망하는데 출판사는 매년 늘어나는 게 신기하다고. 내가 본 기사에선 매년 3천 개씩 늘어난다고 했다. 그 기사를 찾아 다시 보니, 지난해 기준 문체부에 등록된 출판사가 7만 7천3백 스물네 곳인데, 늘어나는 추세로 보면 십만 개를 넘어 전국의 카페 숫자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 뒤, 우린, 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책을 내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최근 몇 년 젊은 담당자와 일을 해 본 경험, 또 최근에 내가 겪은 일을 토대로 나름의 추리를 해 본 것이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시길.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아마추어

최근, 감독은 자잘한 수정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 연말에 끝낸 작업인데, 젊은 여자 담당자와 두 명이 계속 전화와 이메일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자막의 크기를 15퍼센트 키워 달라. 자막의 글꼴은 000 체로 바꿔 달라. 색은 이건 넣고, 저건 빼 달라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다. 과업 기간도 끝났고, 결제도 끝난 시점에서 뭔가 수정을 요구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런 자잘한 요구에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저 자신들이 영상을 보다가, 다른 영상도 보다가 자신들의 취향에 더 끌리는 데로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기에 저마다 좋아하는 색과 글꼴이 다르다. 이렇게 다를 때 우린 보통 전문가의 의견을 따른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서 같은 경험을 했다. 벽지, 타일, 바닥재, 조명 등 대부분 나와 아내가 선택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선택의 폭을 제시한 건 점장이었다. 우린 그저 그 범위 안에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 범위 밖, 그러니까 전문가가 제시한 대안의 밖에 있는 걸 선택하여 제시하려면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전문가까지 설득해야 한다. 만약 전문가를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의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몇 천만 원이 들어가는 인테리어와 홍보 영상의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임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마추어다.   


당연히, 취향에 따라 나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전문가의 선택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면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묻는다. 여기에 대해 “아, 그냥 제가 좋아서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제가 시장조사를 해 봤는데요.”라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이유는 없다. 그래서 이유를 물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가 갑 아니던가? 그럼 내 말이 다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냥 해달라고 한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후, 우리 팀은 군말 없이 수정해 준다. 후에 시사회 때, 높은 사람이 “자막 색깔이 저게 뭐야?”하고 물으면 그 책임을 명확하게 말해줄 뿐이다.     

 

난 항상 옳다는 착각

이런 사람들은 “틀림”의 지적을 싫어한다. 자기가 뭔가를 했는데, 어떤 결과물을 만들었는데,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이, 그 판단이 틀렸고 그르다는 지적을 못 견뎌한다. 그 틀림과 그름의 합리적 이유와 근거를 대면 “진지충”이니, “꼰대”니 한다. 심지어 직장 내 갑질이 어떻고 하면서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한다. 얼마 전 아이 문제 때문에 아이의 담임, 문제를 일으킨 다른 반 학생의 담임과 통화를 하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후 학교 교장 선생님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하소연을 들었고 말이다. 직원 3천 명 정도 되는 회사에 다니는 아내도 가끔 비슷한 하소연을 한다. “아니 지들이 다 맞아. 지들이 아는 게 다야.”     


재미있는 건, 이렇게 전문가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친구들도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권위 있는 위치를 갖고 있는 사람의 말. 대학 교수, 겸임 교수, 최소한 대학에서 강의라도 하고 있으면 이런저런 토를 달지 않는다. 또 하나, 관련 분야의 책을 낸 사람의 말에도 토를 달지 않는다. 하다못해 편집 프로그램 설명서라도 출판한 경험이 있다면 다르게 본다. 왜 그럴까?     


아는 건 많지만 확신은 없다.

얼마 전 <최강야구>에선 새로운 선수를 뽑는 트라이아웃 과정을 방송했다. 그 과정에서 투수를 지원한, 아마추어 일반인이 나왔다. 그 일반인, 야구를 유튜브로 배웠다고 했다. 불펜 피칭을 선보이는데, 제법 잘 던진다. 그때, 그걸 지켜보던 레전드 선수가 한마디 했다. “야, 유튜브 무섭다.”, 그런데 정말 무서울까? 뒤이어 프로출신, 은퇴 선수들이 나왔다. 송은범, 더스틴 니퍼트, 문경찬 등. 송은범이 던질 때 모든 선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야, 프로는 다르네,”, “참, 쉽게 쉽게 던진다.”     


정보도 많고 가르치는 사람도, 가르칠 수 있다는 사람도 많다. 야구는 물론이고, 축구, 탁구, 노래, 그 장르와 깊이도 가르지 않는다. 유튜브나 페이스북에는 이 책을 사고 자신을 팔로우하기만 하면 놀라운 투자 정보를 주고, 성공을 약속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많은 이들이 이 홍수 속에서 많은 걸 배우고 익히지만, 동시에 의심도 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진짜 프로가 누군지 가려낼 방법이 없다. 그야말로 지식의 딥페이크 시대, 역설적이게도 흔들리지 않는 잣대를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 잣대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어떤 책이든 내고 싶은 이유

이런 이유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내 비록 책을 읽지 않지만 책을 쓴 사람의 말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다. 더 나아가,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에 어떤 내용의 책이라도 어떤 형태의 출판물로라도, 친구가 하는 1인 출판사를 통해서라도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저 책이라는 실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출판 경력을 프로필에 올리면 된다. 그러면 이 진짜와 가짜 정보가 탁류처럼 흐르는 이 세상에서, 진짜 전문가와 딥페이크 전문가가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오리지널”이 될 수 있다. 그런 존재가 되어 말에 힘을 실을 수 있다. “믿쉽니까? 전 책을 낸 작가입니다. 여러분~ 믿쉽니까~”     


이런 불안한 존재들과 그들 덕분에 돈을 벌겠다는 사람의 뜻이 합쳐져, 이 무독(無讀)과 절독(絶讀)의 시대에 출판사와 작가 지망생이 넘쳐나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다. 글을 읽지 않으면서 글을 쓰고, 책을 사지도 읽지도 않으면서 책은 내고 싶은 작가 지망생의 시대를 연 것이다.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어느 편집자의 말을 빌리면, 눈 밝은 편집자의 눈에 띄어 책을 내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가 모르는 건 쓰지 않고, 쓴 책이 없이도 그것에 대해 오래 말할 수 있을만한 것만 쓰려한다. 책이 가벼우면 사람도 가벼우리라 생각하는 옛날 사람이기에 책의 무게만큼 생각도, 삶의 무게도 무겁길 소망한다. 아니 그 반대이려나? 책의 물리적 부피와 상관없이, 그 책을 읽고 작가의 존재가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려나?  


여하간,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오십 대가 넘은 전문가들끼리 나눴다. 책은 읽지 않는데, 출판사는 늘어나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이들의 행렬은 여름날 점심시간, 점점 길어지기만 하는 삼계탕 식당 대기줄처럼 길어지기만 하는 요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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