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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Apr 29. 2024

생긴 대로 산다는, 그 거짓말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63

타고난 체형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다. 그게 언제 정해지고 몇 살 때부터 드러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이의 등굣길을 꽤 자주 동행하면서 아이의 친구와 선배, 후배들의 그 어린 뒷모습과 앞모습을 자주 보다 보니 타고난 체형이란 것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구나 싶다. 학년이 올라가고 한 해에 5,6센티미터씩 크는 게 기본인 애들이지만 늘 보던 애를 개학 후에 멀리서 봐도 누군지 대번에 알아본다. 물론, 신기하게도 그 아이들이 일관되게 같은 스타일, 같은 색의 옷을 입어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신체의 비율이랄까, 어떤 타고난 실루엣이 있기에 이렇게 대번에 알아보는 것 아닐까?     


어른이 된 뒤, 이런 타고난 체형을 뒤늦게 바꿔보겠다고 애를 쓰곤 한다. 주말, 아내와 이런 체형과 그 변신의 노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최근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일주일에 두어 번, 취미로 발레를 해 왔지만 뭔가 본격적인 운동을 해야 할 나이라 여긴 뒤 선택한 운동이다. 이번 주 필라테스에선 고관절을 여는 동작을 많이 해서 그쪽이 뻐근하다는 말을 했다. 그나마 발레를 오래 해서 이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말을 가벼운 농담으로 받았다. “수영하는 사람 하곤 반대네. 수영을 오래 한 사람은 대체로 O다리에 등이 굽고 거북이 목이 된다던 영상을 본 적이 있어.”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가 맞받아쳤다. “야, 당신하고 딱 맞는 운동을 하고 있네.”하고. 아내 말이 맞다. 난 방심하면 약간 안짱다리에 등이 구부정해진다. 내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육상부 코치를 겸임하고 있었는데, 내 안짱다리를 고치는 비법이라며, 뒤꿈치로만 운동장 두 바퀴씩, 매일 돌라고 시키셨을 정도다.      


신체에 새겨지는 이력

언젠가 다른 글에도 썼지만, 살아온 방법과 노동의 수고는 신체에 새겨지고 남는다. 유전적인 질병과 유행병을 제외한 대다수 질병은 살아온 궤적, 그 삶 속에서 먹고 마시고 자고 일하고 살아온 순간들의 누적 끝에 발생한다. 외형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체형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직업으로 인해 그 체형이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체형으로 흡수되지 못한 것은 근골격계 질환이 되어 일상을 괴롭힌다. 밤잠을 설치게 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 도구의 모양과 그 도구에 손이 가 닿는 형태로 손이 변형된다. 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은 피부의 색이 변하고 등이 굽는다. 먹고살기 위해 애써온 나날들이, 그 일의 수고가 그의 신체를 통해 오롯이 드러난다. 그것을 훈장으로 볼지, 형벌로 볼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건, 우린 그 세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작가의 글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작가의 집안 대대로 내려온 새가슴에 대한 말이 생각난다. 여자라면 몰라도 남자의 새가슴은 빈약하고 두툼해 보이지 않아 병약해 보이기 일쑤다. 그런 체형을 아들에게 물려줘서 안타까웠는데, 그 아들은 헬스를 열심히 해서 그 새가슴의 윤곽을 바꿔놓았다고 했다.      


결국 생긴 대로 사는 건지 사는 대로 생겨지는 건지 그 순서의 모호함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사주명리학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한 인간의 운명처럼 우리의 몸의 윤곽은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밑그림을 암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생긴 대로 살지 않아서 우린 그렇게 살면서 많은 육체적 고통을 겪는 걸까?     


변화의 가능성

분명한 건, 당신이 움직인 만큼 신체는 변한다는 것이다. 일 때문에 종종 마주치는 시립무용단 단원들은 평소에도 등을 곧게 피고 다리를 약간 팔자 형태로 가볍게 걷는다. 수영을 오래 한 사람은 살짝 등이 굽고 약간 O다리가 된다. 유도를 한 사람은 어디 하나 얇은 데가 없고 손아귀의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 TV를 통해 보게 되는 UFC 선수 중 레슬링이 주특기인 이는 양쪽 귀가 매트에 쓸려 납작해져 있다. 단거리 육상선수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지만 장거리 육상선수는 가젤처럼 얇고 날렵해 보인다.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결국 내 신체에 대한 책임 중 일정 부분은 부모의 몫이지만 일정 부분은 내 선택의 몫이라는 걸 알게 된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휴일을 보냈으며, 뭘 먹었고 무슨 운동을 했는지, 젊은 날엔 어떻게 살았고 삼십 대, 사십 대엔 어떻게 살았는지, 그 선택의 역사가 고스란히 몸에 남아 있다.    

  

5월은 웜 업에서 2번 아저씨를 따라잡아 보기로 했다. 우리가 배우는 수영이 생존 수영이 아니라 그야말로 속도를 중요시하는 경영(競泳) 임을 생각하면, 누군가의 속도를 따라잡겠다는 목표 설정은 운동 동기 부여의 핵심이지 않을까? 그렇게 따라잡으려 노력하다 보면 지금 하고는 또 다른 몸의 형태가 생길 것이다. 언제 그런 변화가 가시적으로 보일지 알 수 없지만, 앞서 썼듯이 어느 날 갑자기, 그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결과가 눈으로 보일 것이다. 여름이 코앞이다. 다들 몸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드는 요즘이지 않을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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