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코디를 하다.
미국에 사는 은채 할머니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박스로 옷을 보냅니다. 보통 여름에 한번, 크리스마스 즈음에 한번이죠.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 텍사스의 작은 시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옷들이 색상은 화려하지만 다루기는 수월하죠. 세탁기에 막 돌려도 되고 건조기에 돌려도 변하지가 않습니다. 처음에 옷을 보내실 때는 마냥 화려한 거만 보내셨습니다. 첫 친손녀인데다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그 애틋한 마음이 더 하셨겠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린이집에 입고 가기에는 애매한 옷들이 제법 있었죠.
은채가 세 살 때 처음 할머니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곳에서 할머니는 은채와 놀면서 은채가 어떤 옷을 좋아하고 평소에 어떤 옷을 잘 입는지 알게 됐죠. 그 이후로 보내시는 옷들은 실용적입니다. 튼튼하고 따뜻하고 시원한 옷들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가끔 화려한 옷도 있지만요.
그렇게 보낸 옷 중엔 종종 어떻게 입혀야 할지 잘 모르겠는 옷이 있습니다. 남자인 아빠 입장에서 말이죠. 작년 가을에 한국에 들어오실 때 가져온 옷들 중에서도 그런 옷이 있습니다. 분명 가을 겨울옷입니다. 색은 따뜻한 핑크고 안에는 기모가 들어가 있으니까요. 그러나 원피스인데다가 반팔이고 라운드 넥입니다. 이거 하나만 이너로 입기에는 추울 것 같고 그렇다고 안에 긴팔을 입히자니 애매하고 게다가 하의로는 뭘 입혀야 할지 감이 전혀 안 왔습니다.
그 옷을 오늘 입혔습니다. 일단 안에 도널드 덕의 여자 친구인 데이지가 그려진 흰 내복을 입히고 그 위에 원피스를 입혔습니다. 하의는 역시가 할머니가 보내주신 레깅스인데 이 역시 입히기 애매한 디자인이었죠. 흰색 바탕에 진한 민트색 줄무늬가 가로로 들어가 있고 무릎 부분에는 보라색 하트가 붙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딸이 직접 골랐습니다. 아빠가 추천한 회색 레깅스와 보라색 레깅스를 물리치고 말이죠. 애매한 원피스와 입히니 한 벌 같았습니다. 딸도 좋아했고요. 딸은 옷 방에 들어가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비춰보고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오늘은 삐삐 머리로 해주세요.”
예상하다시피 삐삐 머리는 양 갈래로 묶는 것인데 솔직히 저한테는 고난이도의 묶기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앞머리를 한번 묶고 다시 뒤통수에서 모아 깔끔하게 묶는 걸로 헤어스타일을 유지해 왔습니다. 공부하기 좋고 뛰어 놀기 좋게 말이죠. 그런데 오늘은 딸이 삐삐 머리를 요구한 겁니다.
전 5분도 넘게 실랑이를 하면서 결국 묶어 줬습니다. 여기에 똑같은 모양에 색만 다른 핀을 이마 위쪽에 꽂아 주었죠. 딸은 맘에 들어 했고, 저도 맘에 들었습니다.
오후에 데리러 갔더니 어린이집 선생님이 오늘 너무 예뻤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친구들도 오늘 너무 귀엽다고 했다더군요. 퇴근하고 돌아온 엄마도 정말 예쁘다고 하면서 “오. 그 헤어스타일이 신의 한수네.”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다섯 살쯤 부터였을까요? 앞서 말했듯이 어린이집 등원 패션을 아이에게 고르라고 했습니다. 상의 여러 개와 하의 여러 개를 늘어놓고 말이죠. 아이는 그 조합을 맞춰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여기에 의상에 맞춰 신발을 고르는 재미를 추가했죠. 자신이 원하는 데로 입게 하면서 아이는 어떤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신발과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알아낸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런 알아챔의 결정판이었죠.
창의력은 뭘까요? 전 십 년 넘게 카피라이터 일을 하면서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을 수도 없이 쓰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창의력, 즉 크리에이티비티가 뭔지 종종 물어 왔습니다. 대학에서 강의 할 때도 이것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죠.
오늘 아이의 헤어스타일 선택을 보면서 창의력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창의력이란 결국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실천하는 힘이고, 상상하는 것을 현실화 하는 힘 아닐까요? 이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부모들이 노력합니다. 동화를 읽어주고, 체험 놀이도 시켜주고, 촉감 놀이고 하고, 여행도 갑니다. 장난감도 많이 사주고 예체능 학원에도 보내죠. 그러나 정작 일상 속에선 아이의 생각이 실현될 기회를 뺐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얼마 전 어린이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때 아이는 엄마와 함께 쿠키를 구어 갔습니다. 모양도 자기가 만들고 그 위에 그림도 자기가 그렸죠. 우리는 종종 집에서 월남쌈을 해 먹는데 엄마는 은채에게 게맛살 뜯기와 파인애플 자르기를 꼭 시킵니다. 그것은 얼핏 창의력과 관련 없어 보이지만 엄마가 요구한 크기와 굵기를 머리로 받아들여 손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곧 입력 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실천입니다. 이런 요구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아이는 언어와 활자의 인식을 몸과 손으로 직접 실현해 내는 힘이 증가할 것입니다. 우리가 2차원의 설명서나 설계도를 보고 가구를 조립하거나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행위를 아이는 일상 속에서 반복해서 실천하는 것이죠.
이런 실천과 실현이 반복되면 거꾸로 자신의 실천과 실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이와 같은 실천과 실현을 다른 사람도 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전달해야 하는 지 생각하게 됩니다. 즉 의미와 언어를 바탕으로 한 실천 후에는 지금 하는 행동의 의미와 그 의미를 상징화해서 타인에게도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설득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죠.
아이는 종종 어린이집에서 새로운 게임을 습득해 와서 저에게 게임 규칙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게임을 하면서 필요에 따라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합니다. 여럿이서 하던 게임을 둘이서 하게 되면 아무래도 기존의 규칙으로는 재미가 떨어지니까요. 아이는 그 과정에서 게임 도구의 한계와 설명서에 적힌 규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게임의 창작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창의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세상과 방법에 새로운 것을 덧붙여 새로운 방법으로 남과 조금 다르게 살아내고,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하나 둘 열어가면서 결국엔 나답게 살아나가는 걸 깨우쳐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