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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21. 2024

물은 침묵과 집중을 요구한다.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67

말할 수 없는 운동

수영은 조용한 운동이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물소리와 숨소리뿐이다. 가끔 강사가 다음 세트를 지시하는 소리가 끼어들 뿐, 이 소리가 전부다. 세트와 세트 사이, 물속을 걸으며 숨을 고르는 시간에도 별 말들이 없다. 숨을 골라야 하니까.      


운동 중에 이렇게까지 소리를 낼 수 없는 운동이 또 있을까? 심지어 조용히 뛰는 마라톤조차도 말을 할 수 있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바라볼 수 있다. 도저히 잡히지 않는 앞에 사람의 등에다 대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대회를 나가면 물을 나눠주는 진행 요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할 수 있다. 축구나 농구나 야구는 말할 것도 없다. 말을 많이 하라고 독려받는 운동 아니던가. 그러나 수영은 조용하다.      


물속에선 오만가지 생각이 스친다. '오늘따라 물이 차갑다. 물이 무겁다(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도 왼 손이 너무 빨리 떨어진다. 다리가 좀 무겁다. 오늘은 2번을 잡을 수 있을까. 아, 오늘 사람 별로 안 와서 힘들겠다. 웜 업이 끝나면 여자 회원들이 좀 들어오겠지? 응 방금 스쳐간 사람은 누구지?’, 이렇게 생각이 많아도 말은 할 수가 없다. 물속에서 입을 벌리면 물이 들어오고 물 밖으로 입을 내밀 땐 숨을 쉬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수영장은 운동이 끝나야 시끄러워진다. 열 시 오십 분쯤 수영장에 들어서면 벌집에 들어온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연습 풀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면 그 소리는 점점 커진다. 아가씨, 아줌마, 아저씨, 총각들이 말을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남아서 미진한 부분을 연습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말이 없다. 수영을 안 하고 피니쉬 라인과  레인에 기대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소음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풀에서 나와서 연습 풀로 나와서까지도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섯 명에서 열 명 정도의 열 시 반의 여성 회원들은 연습 풀 수다방의 단골손님이다. 이들은 우리의 웜 업 자유형이 끝나고 나서야 여자 탈의실로 사라진다. 더 놀라운 건 뭔 줄 아나? 내가 수영을 끝내고 스포츠센터 로비에 나가면 종종 이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매일 보는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그렇게 하는 거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앞서 말했듯 수영은 동시에 뭘 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리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도 수영을 하면서 카톡을 하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아이팟을 귀에 꽂고 통화를 할 수 없다. 종종 음악을 듣는 사람은 있는데 그마저도 그 시간대에 한두 명 정도다. 순번이 뒤에 있으면 강사의 멘트가 잘 들리지도 않는데 무슨 음악을 듣겠는가? 결국 수영은 오감 중에서도 유독 시각과 촉각에 의지하는 운동 아닐까? 앞에 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고 앞에 사람의 발차기 진동을 느끼고 옆 레인의 파동을 느끼며 가는, 그래서 더욱더 이 두 가지 감각을 바짝 세우고 집중해야만 하는 운동.


한 번에 하나 밖에 못하는 사람

난 좀 옛날 사람이라 아직도 일이든 독서든 글쓰기든 대체로 집과 작업실에서 한다. 가끔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지만 겨우 들릴까 말까 한 정도의 볼륨이다. 당연히 이어폰도 아이팟도, 요즘 친구들이 끼고 다니는 헤드셋도 안 낀다. 그냥 그걸 할 때는 그걸 하려고 한다. 등산을 가면 최대한 빨리 올라가려고 노력하고 책을 읽으면 소리 내어 읽는 템포로 속으로 읽어 나간다. 수영도 마찬가지다. 누구를 만나려고 간 적도 없고 반가운 사람 얼굴을 보기 위해 간 적도 없다. 오늘 같은 월요일이면, 이번 주는 어떤 영법이 메인일지 추측해 보고, 그 영법을 하는 내내 어떤 점을 보강할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수영을 하는 내내 그걸 실천한다. 집중해서.     


요즘 친구들은 이거 하면서 저것도 하는 게 가능하고 그걸 또 당연히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뭐랄까, 침묵과 몰입의 시간을 두려워한다는 느낌도 받는다. 우리 동네의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마주치는 청년들을 보면 걷는 동안에도 아이팟을 끼고 누구랑 통화를 하며 걷는다. 음악을 듣는 건 기본이다. 심지어 문자나 카톡도 주고받고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걷는 이들도 많다.      


최근에 본 개그맨들이 만든 콘텐츠를 보면서도 이런 청춘들의 일면을 봤다. 오래된 커플이 모텔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이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용변을 보고, 심지어 낮잠을 잔 뒤, 아주 잠깐 섹스를 하고 나왔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모텔에 컴퓨터가 있는 이유가 뭘까? 닌텐도며 넷플릭스는 또 뭐고. 대실 시간은 뻔할 텐데, 그 시간에 정말 둘이서여야만 할 수 있는 걸 해야 하는 거 아닐까? 그 시간을 꽉 채워서 말이다.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스타벅스에서 딸 친구 엄마와 오래간만에 수다를 떨고 온 아내가 그랬다.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애들이 눈치를 줬는데 신경 안 썼다고. 잘했다고 했다. 이미 카페는 소란스러운 곳이다. 주문 소리와 커피 가는 소리, 창밖의 소음, 음악 소리. 백색 소음이라고들 하는데 소음은 소음이다. 정적과 고독과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다.      


뭔가 생활 소음이 있어야 안정이 된다는 사람에겐 템플 스테이나 수도원 체험을 권하고 싶지만 개인적으론 수영을 권하고 싶다. 강제로 입을 닫고 있어야만 하는 힘든 운동을 말이다. 예전 같았으면 마라톤을 권했을 텐데 요즘은 크루를 구성하여 뛰느라 이 또한 명상하듯 뛰기 어렵다고 하고, 등산도 다들 그렇게 무리 지어 오르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니 별 수 없다. 하는 내내 물을 먹기 두려워서라도 입을 닫아야만 하는 수영을 권하는 수밖에.


뜻밖의 목적

동호회를 다른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등산의 목적>이라는 수상한 제목의 영화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수영장도 그런 목적을 갖고 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고, 실제로 강사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진행되는 사람도 있긴 한가 본데 최소한 내가 아는 한 우리 수영장에선, 현재, 그런 일은 없다.     

또 같은 클래스의 사람들끼리 모임도 갖고 회식도 하는 모양이던데 최소한 우리 반은 아직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간단한 점심 모임이나 티 타임을 가질 만도 한데 1번은 끝나자마자 사라지고 2번도 그리 사교적이지 않고 요즘 3번을 맡고 있는 나 또한 그러니 우리 반 사람들은 수영장에서 얼굴 보는 게 다다.      


물론 겸사겸사, 수영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애인도 사귀고 친구도 사귀는 거, 뭐 나쁘지 않다. 00 하는 김에 00 하거나, 00 하면서 00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등산을 가서 애인을 만들거나 수영장 사람과 단톡방을 만들고 계모임을 만들어 친목을 다질 수 있다면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고 권하고 싶지도 않다는 말이다.      


침묵과 고요와 몰입의 시간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이다. 도예가가 한 번에 하나의 도자기만을 정성 들여 빚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나의 대상에, 주어진 시간에 모든 감각을 동원하며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몰두하는 무엇, 열정을 쏟는 대상, 무아지경으로 날 데리고 가는 사람과의 그런 시간.


박물관과 롱 보드의 시간

지난 일요일 오후, 딸과 함께 시립박물관을 다녀왔다. 삼성 창업주, 화승의 창업주, 아모레 퍼시픽의 창업주가 수집한, 그야말로 국보 또는 국보급 고미술과 도예 작품들이 <수집가 傳>이라는 이름의 기획 전시 아래 한데 모였다. 딸은 서예와 산수화, 풍속화, 민화, 청자와 백자를 두루 보며 한 시간 이상을 머물렀다. 전시 작품 중 특히 달항아리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아무런 무늬도 없이 그저 하얀 항아리. 완벽한 원도 아니고 표면이 유리나 플라스틱처럼 흠 없이 매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그 특유의 고요함을 잉태하고 있는 항아리. 누가 처음 이름을 지었는지 몰라도 달이라는 이름을 갖기에 너무 적합한 존재. 그 존재를 오랫동안 봤다. 2년 전 이맘때,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치유의 시간, 부처를 만나다>라는 제목 하에 열렸던 불교 미술전을 보러 갔을 때 <건칠희랑대사좌상>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것처럼, 그렇게 오래 보고 나왔으면서도 다음 날 또 보러 가서 다시 한참을 보고 왔었던 것처럼, 그렇게 달항아리 앞에 못이 박힌 듯 한참 서 있었다.


집에 돌아와 잠시 쉰 뒤, 롱 보드를 타러 갔다. 부산문화회관에 늘 가는 공간이 있다. 한가한 일요일 저녁, 아무도 없다. 해는 서면 쪽으로 지고 있었다. 딸은 오랜만에 타는 롱 보드의 감을 잡기 위해 한 오 분 정도 애를 먹었다. 난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간 캔 맥주를 마시며 딸을 지켜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멀리 황령산이 보이고 멀리 부경대학교 기숙사 건물 사이로 광안대교가 보였다.

꽃이 한참 전에 진 벚나무와 목련 나무는 짙푸른 잎사귀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소리를 냈다. 잎과 바람의 소리, 딸의 롱 보드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딸이 롱 보드를 출발시킬 때 바닥으로 탁, 탁, 탁 세 번 차는 소리만 들렸다. 싸구려 맥주도 휴양지에서 마시는 느낌을 줬다. 느긋하고 조용한 곳에서 마신다면 어떤 맥주든 다 그런 느낌을 주지. 아무리 좋은 맥주도 시끄러운 곳에서 마시면 맛은 문 밖으로 달아난다. 몰입이 느낌을 만든다. 침묵과 고요가 못 듣던 소리를 듣게 한다. 수영을 하는 동안 나 자신에게 더 충실하게 몰입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주 일요일, 어떻게 지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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