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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May 18. 2024

롤 모델과 멘토를 찾는 법

수영장에서 건진 철학 66

누가 잘하는지 알 수 없다.

월, 수, 금, 강습이 끝나면 할머니들의 아쿠아로빅이 이어진다. 이를 위해 초급반 레인을 제외하면 다 레인을 거둬들이니 다른 반 사람들이 잠깐의 마무리 운동을 위해 초급반 레인으로 넘어와 잠시 운동하고 가곤 한다. 물론 나 같은 경운 훨씬 작은 연습풀에서 마무리 운동을 하지만.     


어찌 됐든, 그렇게 다른 반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수영을 볼 때마다 초급반 사람들은 부러워하고 감탄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이날은 목요일이어서 아쿠아로빅이 없었지만 다들 힘들게 수영을 한 날이라 모든 레인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중 고급 B반 회원 한 명이 초급반 레인으로 넘어와 배영을 했다. 초급반 레인의 스타트 라인 앞이 여자 샤워실 입구 앞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 배영을 보던 초급반 아가씨 두 명이 작은 감탄사를 질렀다. “와, 빠르다.”, 마침 그때 내가 아가씨들 곁에 있었다. 막 접영 웨이브의 팁을 알려준 후였다. “아, 저건 안 좋은 배영의 예죠.”하고 바로 말해줬다. 아가씨들이 살짝 웃으며 그 이유를 물었다. “우선 스트로크를 위해 머리 뒤로 팔을 던질 때 손이 정수리 중심을 넘어와요. 그러면 삐뚤빼뚤 가죠. 게다가 롤링도 없고, 킥을 할 때 백 킥도 없으니... 아마 저런 배영으로 100미터도 힘들지 않을까?”     


잠시 후, 고급 B반의 다른 회원 한 명이 넘어와서 자유형을 했다. 아가씨들이 또 지켜봤다. 내가 말했다. “아, 저건 안 좋은 자유형의 예.”, 아가씨들이 또 웃으며 이유를 물었다. “스트로크 할 때 팔을 허벅지까지 밀어주지 않고 허리춤에서 쓱 빼버리면 추진력을 다 못 쓰는 거지. 그러면 당연히 팔 운동도 안 되고, 쫓아는 가야 하니 킥은 많이 차고, 그러면 남보다 더 힘들고...”, 아가씨들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를 찾는 법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수영은 운동할 때 자신이 어떻게 하는지 안 보이는 운동 중 하나다. 남이 봐주기도 애매한 것이 수영하는 내내 신체의 대부분이 물속에 있기 때문에 본다 한들 딱 꼬집어 말해주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코치와 강사들이 풀 밖, 사이드라인 위에서 걸어가며 내려다보는 것일지도. 이런 이유로 종종 스마트 폰이나 고프로 같은 작은 카메라로 촬영하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이게 또 그렇게 흔한 일도, 쉬운 일도 아니다. 최소한 내가 다니는 수영장에선, 지난 몇 년 간 이런 장면은 딱 두 번 본 적 있다. 한 번은 초급반 강사가 하도 답답해서, 한 번은 여자 회원이 연습 풀에서 자기들끼리.     


결국, 잘하는 사람을 골라 그 사람에게 봐달라고 해야 한다. 아내도 수영을 한참 할 때는 자신의 미모를 앞세워 많은 오빠들에게 자신의 폼을 봐달라고 했다고 자랑(?)을 하곤 했다. 어련하실까... 이러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거, 하나는 약간의 뻔뻔함. 개인적으론 전자가 훨씬 어렵다. 앞서 아가씨들처럼 자기들보다 빨리 가고 편하게 가는 것처럼 보이면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이런 사람을 고를 땐 눈높이를 높여야 한다.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자신이 다니는 수영장의 자신의 운동 시간 클래스에서 가장 잘하는 반, 가장 잘하는 사람을 골라야 한다. 그 시간대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그런 사람. 우리 반의 1번 주자 같은. 물론 그 사람이 수영이 끝나자마자 휙 가버린다면 곤란하다. 우리 1번도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강습이 끝나자마자 사라진다. 여하간 ‘내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이렇게 빡세게 운동하나.’하는 생각에 빠져 소위 현자 타임을 갖으며 수영장에 잠시 머무는 사람-예를 들자면 나 같은 아저씨-을 골라 자신의 수영을 봐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면 다들 기꺼이 봐줄 것이다. 왜? 자기도 그렇게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잘하는 반의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폼을 봐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눈높이를 높이기 위해선 선수들의 영상을 자주 봐야 한다. 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펠프스의 영상도 보고, 아담 피티나 박태환, 황선우 선수의 영상도 봐라. 그냥 적당히 나보다 좀 잘하는 사람을 목표로 하지 말고 그야말로 “넘사벽”인 사람을 모델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놔야 그 발끝에라도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수는 가까이 있다.

멘토나 롤모델을 찾는 청춘들이 많다. 때문에 그걸 자처하는 사람도 많다. 그나마 유일하게 하는 SNS가 페이스북인데, 이 안에도 멘토와 롤모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누가 진짜고 사기꾼인지 가려내는 건, 찾는 사람 입장에서는, 특히 사회 경험이 적은 청춘들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00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00 경력 00년.”, “00성공의 진짜 주인공.”과 같은 이력을 자랑하고, “이렇게 공부했더니 명문대를 갔다.”, “이렇게 사업했더니 대박이 났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성공하는 연애의 비결”과 “행복한 결혼의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사람도 있다.


책에 관심 있다 보니 나에겐 주로 출판과 글쓰기의 멘토와 롤모델을 자처하는 이들의 홍보성 페이지와 노골적인 광고가 뜨곤 하는데 이들은 주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될 책 다섯 권.”을 소개하고, “한 달 만에 책 백 권 읽는 법.”이 있고,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분양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에게 딱 맞는, 나에게 길을 가르쳐줄 멘토와 롤모델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건 고사하고 말이다. 그래도, 다른 건 몰라도, 이들의 자신만만함은 솔직히 부럽다.  

   

너무 멀리 있는 사람을 찾지 마라. 박태환의 영상을 볼 수는 있어도 박태환에게 수영 강습을 받는 건 쉽지 않다. 펠프스나 아담 피티는 말할 것도 없다. 레데키의 킥을 배우고 싶어 그녀의 영상을 수십 번 볼 수는 있어도 그녀를 찾아가는 것도, 찾아가서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하고 청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만수르라면 또 모를까.      


할 수 있는 걸 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배울 수 있는 사람에게 배우면서 천천히, 서서히 자신을 발전시키는 수밖에 없다. 인생이 수능이라면 일타강사에게 배우는 것만으로도 급속히 그 실력이 나아지고 소원 성취도 한방에 해결이 되겠다만, 인생에서 겪는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속 시원하게, 한방에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수영조차도. 그래서 수영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면 다들 그만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썼듯이 멘토와 롤모델을 찾을 때도 자신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그것을 잣대 삼아 스승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멀리 가지 마라. 우리 수영장의 레인 배치가 초급반의 옆 레인이 고급 A반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고수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러니 너무 멀리서 찾지 마라. 일단은 약간의 뻔뻔함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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