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화요일에 작업실에 나가기 때문에 화요일에 수영장을 가는 경우는 드물다. 화요일의 수영장이 다른 날과 다른 점이 뭔지 이 글을 꾸준히 읽어 온 독자라면 대강 파악했겠지만 더 확실히 알려드리기 위해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일주일 스케줄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월요일은 일주일의 웜 업과 같다. 한 주 동안 할 영법을 알려주고 관련한 드릴을 한 뒤, 자유형으로 훈련의 강도를 높인다. 화요일엔 주로 자잘한 드릴을 많이 하는데 반에 따라 턴 연습을 하기도 한다. 고급반인 우리는 주로 영법과 관련한 드릴을 많이 한다. 수요일엔 핀 수영이다. 목요일엔 훈련양이 가장 많은 날로, 일종의 체력 훈련의 날이다. 금요일엔 스타트 연습을 한다.
만만치 않은 플립 턴
이번 화요일엔 오랜만에 AKA, 퀵턴이라 불리는 플립턴 연습을 했다. 혹시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TV로 보는 수영 대회에서 자유형 선수들이 터치 패드에 다다랐을 즈음 몸을 앞 구르기 하듯이 휙 돌려, 오던 방향으로 돌아가는 턴 방법을 말한다. 그런데 이 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람에 따라선 수영을 몇 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터치 패드와의 거리감도 있어야 하고 부딪힐 것 같은 두려움도 없애야 하며 순간적으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야 하는 순발력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하간 플립턴 연습을 하는데, 우리 반에 새로 합류한 아가씨가 플립턴을 못한다고 강사에게 말했다. 이 아가씨, 체형이 딱 수영에 맞는 체형이다. 어깨도 넓고 피부도 희고 체력도 좋다. 마치 접영 국가대표 같다고나 할까. 이 아가씨는 올봄부터 합류했는데 체력이 좋아서 내 앞에 세우고 있다. 그러나 일전에 썼듯이 세기랄까, 기술적인 게 부족하다. 스타트도 잘 못해서 최근 강사에게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인데, 알고 보니 플립턴도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고급 A반에 들어온 것에 대해선 칭찬해주고 싶다.
사실 이 아가씨만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 반의 절반 이상은 플립턴에 서툴다. 세 번 하면 한 번 정도 제대로 할까? 단호하게 휙 돌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우리 반 상황이 이러니 다른 반은 말할 것도 없다. 앞서 썼듯 다른 시간대를 포함한 모든 중급반 사람들의 열망은 이 턴의 완성이다. 그러다 보니 다들 서로서로 코치해 주고 봐주기 바쁘다. 저번에도 썼듯이, 도대체 누가 누굴 봐주는 건지...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건지
특히 화요일과 목요일 열두 시 타임엔 할머니들의 아쿠아로빅이 없기 때문에 다들 조용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봐주며 턴과 스타트 연습을 한다. 이번 주 화요일에도 그랬다. 초급반 레인부터 거의 모든 레인이 부산스러워서, 난 마무리 운동을 하기 위해 맨 끝 레인, 중급 B반 레인으로 갔다. 그 레인엔 두 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넘어가 보니, 40대 아줌마가 30대 아가씨(아줌마인지도 모르겠다.)에게 평영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늘 하는 드릴을 하며 반대편으로 갔다. 저쪽에서 30대 아가씨가 평영을 하기 시작했고 40대 아줌마는 자유형으로 따라오며 물속에서 폼을 봐주고 있었다. 킥의 문제를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고 있는 아가씨를 보니 상체의 문제가 더 심각해 보였다.
모든 영법이 그렇듯이 평영으로도 동호인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영어권의 평영 영상을 보면 물 밖으로 나온 상체를 다시 물속으로 넣는 동작을 “Shooting"이라고 한다. 물속에서 부드럽게 글라이딩을 하며 상체를 물 밖으로 꺼낸 뒤 다시 들어갈 땐 그야말로 “촥” 소리가 날 것처럼 물을 쪼개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고개를 숙여서 굴을 파고 들어가듯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상체가 나왔을 때 얼굴을 들어 정면을 본 뒤에 숨을 쉬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하기 때문이다. 고급반 정도 되면 시선은 대략 15도 정도 앞의 수면을 본 뒤 얼굴을 고정시킨 채 그대로 찌르고 들어간다. 군동작이 없는 것이다.
진짜 문제를 모르는 선배
30대 아가씨는 물 밖에서 동작이 너무 많았다. 동작이 많으면 당연히 상체가 물 밖에 오래 있게 되고, 그러다 보면 당연히 하체가 가라앉게 된다. 몸이 수면과 평행인 상태에서 킥을 차도 앞으로 나가는 게 쉽지 않은 평영 킥인데 몸 전체가 수면과 예각을 이루며 기울어져 있으니 킥이 아무리 좋아도 나가는 게 쉽지 않다. 그 아가씨의 평영의 문제는 킥도 킥이겠지만 우선은 물 밖에서의 시간을 줄이고 물속으로 들어갈 때 허리힘을 이용하여 “팍”하고 찌르고 들어가는 걸, 그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반은 다들 그렇게 하고 있는 모양인지 40대 아줌마는 그걸 지적하지 않았다.
역시, 화요일처럼 한가한 목요일엔, 그 30대 아가씨가 더 젊은 아가씨에게 플립 턴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젊은 아가씨는 터치 패드에 가까이 왔을 때 한 팔을 뻗어 패드에 손을 댄 뒤 돌았다. 아마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 어려웠거나 벽에 부딪히는 것이 두려운 이 반의 사람들이 고안해 낸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돌면 퀵 턴이라 불리는 플립 턴의 효과는 없어진다. 터치 패드에 다가가면서 속도는 줄 수밖에 없고 속도가 줄어드니 도는 속도 또한 떨어져서 물속에서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반에선 누가 언제부터 이런 식의 플립 턴의 노하우를 퍼트린 걸까?
중급반의 지박령으로 남는 이유
멘토 얘기도 하고, 도전 얘기도 했었다. 예전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가끔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면서 스스로를 안심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자기 자신도 고칠 것이 많고 수준이 미천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한 수 가르쳐주고 조언을 하고 지적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어쩌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러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곤 하는 것이다.
우리 수영장의 내 시간대의 중급과 고급반은 A와 B반으로 나뉘어 있다. 고급 B반의 경우엔 우리 반보다 한 라운드 당 운동량이 많게는 한 세트나 두 세트 정도 적다. 반면 우리보다 그 라운드를 끝내는 시간은 같거나 길기 때문에 운동량은 우리보다 대략 20에서 30퍼센트 정도 적다. 중급 A와 B반은 더할 것이다. 일단 A반엔 고령자가 없다. 그러니까 최소한 50이 넘은 나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반면 B반엔 나보다 어린 사람이 거의 없다.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귀여운 누님도 B반이다. 그러다 보니 두 반의 운동량의 차이는 고급반의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체력적으로, 기술적으로 조금 높은 수준의 수영을 하고 싶다면, 그런 동호인이 되고 싶다면 반의 레벨을 올려야 한다. 그러나 대체로 자발적으로 그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강사가 올라가라고 재촉을 해야 그나마 움직이는데, 그마저도 두세 달에 한 명 꼴이다. 왜 그럴까? 같은 돈 내고 왜 편하고 쉽게 운동하는 걸까?
물론 나이와 신체 조건에 맞는 반이 있다. 고급 B반에 있는 할머니 회원 한 분은 그 반에서 오래 하셨지만 A반으로 올 수는 없다. B반에서도 접영 같은 영법은 자유형으로 대체하면서 운동을 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그러니까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제외하고, 또 한눈에 봐도 나보다 건강이 안 좋아 보이는 사람도 제외한 그 외 회원들이 일 년 내내, 아니 몇 년이 지나도 중급반과 고급 B반을 벗어나지 않는(그렇다. 않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우선 편하다. 몸도 마음도 편하다. 같은 수준의 사람과 같은 강도로 일 년 넘게 운동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마치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는 느낌이다. 좀 지루하다 싶으면 수영복과 수경, 수모를 바꿔주면 된다. 수영을 오래 해도 살도 안 빠지고 근육도 안 생기지만 그럭저럭 현재의 건강 상태(?)가 유지되기에 더 큰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우리 반 같은 사람들을 향해 유난을 떤다는 둥, 선수될 것도 아닌데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둥 말을 하곤 한다. 물론 자기들끼리 말이다.
또 하나는, 그 반에 올라온 사람에게 텃세도 부릴 수 있고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재미도 있다. 같은 강도, 일정한 수준으로 꽤 오래 수영을 했으니 모든 영법을 무리 없이 편하게 하는 법엔 도가 터 있다. 더 빨리, 멀리 가는 법은 모를 수 있지만 무리 없이 편하게 하는 영법은 잘 안다. 힘들다는 아가씨에게 힘들지 않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이유다.
사실 이렇게 한 반에서, 마치 지박령처럼 오래 있는 사람들도 보는 눈은 있다. 고급 A반의 수영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안다. 그러나 옮길 생각은 없다. 심지어 중급 A반으로 갈 생각도 없다. A반의 운동량을 소화하기 위해선 수영의 속도는 높여야 하고, 쉼은 짧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수영 전체를 교정, 즉 손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체력이 올라올 때까진 뒷번의 수모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 성장하는 나
성장을 하기 위해선, 좀 다른 나를 만나기 위해선 자기보다 나은 사람, 전문가의 지적을 구해야 한다.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 무리의 고인물, 지박령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물론, 그전에 자기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성찰과 반성이 선행되어야 좀 더 높은 단계의 나를 욕심 낼 것이고 그 욕심이 더 나은 사람과 전문가에게 답을 구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성찰과 자기반성이 없이는 배움도, 교정도 불가능하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해 들뢰즈는 그의 1964년도 발표문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에서 이런 해석을 했다. “영원회귀는 시련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모든 것을 제거해 버린다. 즉 사유 속에서의 어정쩡한 의도들뿐만 아니라 존재 속에서의 어정쩡한 역능들까지도 모두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난 이 구절을 읽으며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생각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영원회귀는 빌 머레이가 주연으로 나온 <사랑의 블랙홀>이나 애쉬튼 커쳐가 나온 <나비 효과>, 최근의 영화로는 <해피 데스 데이>의 반복되는 하루와 비슷하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그날로 돌아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반면 들뢰즈가 포착한 니체의 영원회귀의 본질은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반복과 유사하다. 반복되는 그 "하루" 속에서 미숙했던 나를 탈피하여 점점 더 새롭고 강해지는 나로 변해가는, 나를 방해했던 역능(力能)은 버리고 나를 새롭게 하는 역능은 취하여, 반복할수록 더 나아지는 내가 되는 그런 반복과 말이다.
더 선명하게 표현하면 담금질, 칼과 낫과 같은 철기의 제련과 비슷하다. 쇠의 단련은 불과 찬 물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반복되는 망치질을 통해 이뤄진다. 반복의 순간들 속에서 쇠는 그 전의 순간으로부터 탈피된다. 쇠의 불순물은 빠지고 강도는 높아진다. 처음의 쇠와 마지막의 쇠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수영을 얘기하다 어쩌다 좀 심각해졌다. 결론은 이렇다. 편 하려고 마음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도전하기 딱 좋은 상태라는 것도 없다. 그러니까 도전을 위해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경우는 흔치 않다는 말이다. 우리 반에 새로 합류한 그 아가씨처럼 스타트와 플립턴을 못하고 스트로크가 좀 서툴러도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수영을 하고 싶다면 일단 도전해야 한다. 자신의 젊음과 체력을 믿고 고급 A반에 뛰어들어야 한다. 아가씨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당연히 우리도 돕고 있다. 글라이딩과 캐치, 킥, 턴, 스타트와 관련해서 묻기만 하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일단 우리 반에 들어왔다면 우리와 함께 운동할 마음가짐이 있다는 말이니, 그 마음을 응원하며 다들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