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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동해선에 읽은 책 91

by 최영훈

도대체 왜?

한 십여 년 전, 우연한 계기로 1, 2 차 세계대전에 꽂혀서 그 전후의 역사와 전황과 사용된 무기들에 대해 읽고 찾아본 적이 있다. 집에 남아 있는 책들을 보면 그 양이 제법 되는데, 그 양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몇 가지 상황들이 있다. 우선은 “도대체 히틀러는 소련을 왜 침략했는가? 그 이후 왜 군대를 둘로 나뉘었는가? 스탈린그라드에 왜 그렇게 집착했는가?”와 같은 독소전쟁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도대체 왜 독일과 히틀러는 유대인과 집시와 폴란드 인들을 그렇게 학살했는가?”이다. 특히 유대인과 관련한 문제는 더 이해가 안 가서 그 몇백만 명의 유대인을, 심지어 유럽 전체의 유대인을 멸절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던 이유가 뭔지, 왜 그래야 했는지 이런저런 책을 읽어도 좀체 납득이 가질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몇 년 전에 이 책을 사뒀다. 잊고 있다가 최근, 술술 읽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꺼내 들었다. 당연하게도 이 책은 술술 읽힌다. 아마 한나 아렌트가 쓴 책 중 가장 쉬운 책이 아닐까? 이 책의 원 출처는 <뉴요커>다.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납치)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된 후, 그의 재판이 공개적으로 이뤄진다는 소식을 들은 저자가 <뉴요커>의 후원을 받아, 일종의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그 현장의 기록과 함께, 이 재판 과정 전후좌우의 인간적, 역사적 맥락을 곁들여 쓴 르포를 써서, 두 판에 걸쳐 그 내용이 연재 됐다. 이런 이유로, 이 글엔 복잡한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다. <뉴요커>라는 잡지의 독자 수준에 맞게, 또 자신이 파견된 르포라이터임을 잊지 않았기에 글은 쉽게 써졌고, 구조는 잘 짜여 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존 맥피와 조앤 디디온, 그리고 레이먼드 카버도 여기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지고...).....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P79


“일” 잘하고 “야망” 있는

아이히만에겐 책임자라는 말보다 실무자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는 그와 그의 팀에게 주어진 임무를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하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는 이 임무 수행을 위해 시온주의에 관한 책을 무려 “두 권”이나 읽었고, 덕분에 나치로부터 유대인 문제에 관한 전문가 대접을 받았다. 애초에 히틀러와 괴벨스 같은 이들을 엘리트로 볼 수 없으니 사람을 뽑고 쓰는 데 있어서 이렇다 할 기준이나 편견은 없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아는 사람, 똑똑한 사람,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기피했었는지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그러니까 대략 1930년대 초반부터, 유대인 문제는 그야말로 핵심 정책 과제였다. 어떠한 형태로든, 어디로든, 어떻게든 유대인을 유럽에서 몰아내려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됐는데, 심지어 이들은 유럽의 유대인 전체를 마다가스카르로 이민시킬 생각도 했다. 실제로 구체적인 계획을 짜보라고 지시를 했다고. 물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 이 계획은 흐지부지 됐고, 이후 유대인 문제는 이민-추방-수용-학살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당연하게도 2차 세계대전의 끝으로 갈수록, 그들 스스로의 종말이 예견될수록 유대인 문제는 더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어 했고, 그 결과 수용에서 학살로, 고민 없이 그 방법이 변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일종의 물류 책임자와 대 유대인 공동체 협상가 역할을 동시에 했다. 그렇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일종의 물류로 생각했다. A에서 B지점으로 얼마나 많은 유대인을 어떤 수단을 이용해 얼마나 빨리 이동시킬 것인가가 그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고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겪을 유대인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후자의 역할은 그의 속물근성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각 점령지의 유대인 공동체 리더들의 사회적 지위와 학력, 지적인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들에게 대접을 받으면서 자신 또한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그는 유대인 공동체 전체를 기만할 필요가 없었다. 그 리더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런저런 감언이설로 그들을 설득하여 떠나게 하기만 하면 됐다. 그 리더들은 가장 최후에 떠나는 특혜를 받았고 그 떠난 곳에서 어떤 삶이 기다릴지, 심지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수용소와 집단학살에 대한 소문이 유럽의 중심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발칸 반도, 발틱 해 인근에 다다르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 P-106


주체와 사유의 범위

저번 주 금요일, 목포에 갔다 왔다. 울산의 대규모 프로젝트인 샤힌 프로젝트 공사의 일부를 수주한 한 플랜트 회사와 두 번째 미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는 그 회사의 상무와 부장급으로 이뤄진 사업 팀장 대부분이 자리했다. 그들은 각자의 사업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나중에 따로 만난 상무는 회사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가 생각하는 홍보 영상의 목표는 좀 더 거시적이었다. 반면 전자의 팀장들은 자신들의 업무 내용이 잘 반영되기만을 바랐다.

대체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의 범위를 넘지 않는다. 자신의 범위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와 더 나아가 그야말로 전 지구적인 사유로 그 지평과 지경을 넓혀가기 위해선 사유와 언어의 확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타자와 만나고 다른 생각과 만나야 한다. 그 형태가 대화이든, 공부이든 간에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아이히만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 사람이었다. 그 일을 잘한 것이 그의 죄의 근본은 아니다. 그 일의 의미를 사유하지 않았던 것, 그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거주지를 떠나 수용소에 들어가야 하고 거기서 삶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일의 “결과”와 “성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즉, 어떻게 말할 길이 없는 냉담함으로 사람을 실행의 대상으로만 봤다는 것이다. 과업 그 자체로의 유대인. 그것이 아이히만의 죄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정확히 알았지만 그것이 왜 죄인지 납득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의 계획 하에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이동하고, 수용되고 종국엔 죽고 말았지만 이 모든 것이 상부의 지시, 더 위로는 히틀러의 지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였고, 자신은 그저 장기판의 졸에 불과했다고 생각했다. 그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한 훌륭한 졸 말이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과거와 전쟁 당시의 그의 행적, 그의 행동이나 성격을 알만한 여러 에피소드를 공들여 수집하여 쓴 것은 그의 이 “특성” 때문이다. 이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말하는데, 난 오히려 사유의 불구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그는 생각이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않았다. 추상적이거나 현학적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은 마치 컴퓨터와 같아서 입력된 것을 처리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기능에 불과했다. 그렇다. 그는 타자가 없는 사람, 세계와 인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 더 나아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덴마크 유대인의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며..... 사람들은 비폭력적 행위 가운데, 그리고 엄청나게 압도적인 폭력 수단을 가진 적에게 저항하는 가운데 내재된 엄청난 잠재력에 대해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모든 학생들을 위한 정치학 필독서로 이 이야기를 추천하고 싶어 한다.”, P.251


악의는 없지만 선의도 없다.

얼마 전, 딸은 부산 인문영재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영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를 다녀왔다. 같은 교육을 받고 있는, 어린이집 시절부터 친구인 지유와 동행했다. 갔다 온 딸이 농담처럼 불평을 했다. 자기는 친구들 사진을 잘 찍어주기 위해 주저앉고 휴대폰의 각도를 바꾸고 별 짓을 다했고, 덕분에 친구들은 좋은 사진을 얻었는데 자기 사진을 찍어준 지유는 그냥 대충 찍어줘서 정작 자기 사진은 엉망으로 나왔다고 말이다. 그때 내가 한마디 했다. “지유는 악의는 없는 데, 선의도 없어.”


의외로 이런 사람이 많다. 악의는 없는데 선의도 없는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지만 오직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남에게 받는 호의는 당연시하지만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호의에는 무심한 사람 말이다. 악하진 않다. 그러나 선하지도 않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중년의 사내가 쓰러진 적이 있다. 그 순간, 그 안에 있던 모든 남자들이 하던 짓을 멈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라커룸에서 옷을 다 입고 있던 남자는 재빨리 뛰어나가 도움을 청했다. 그 순간 가만히 자기 일만, 샤워만 했던 사람은 없다. 설령 하던 샤워를 계속했다고 해도 거기엔 악의는 없다. 그러나 선하지는 않다.


아렌트는 9장에서 12장까지,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각 나라들이 그 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의 처분에 대한 독일의 압박에 어떻게 처신했는지 상세히 묘사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무기력했다. 약간의 태업과 의도적 외면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아이히만의 계획대로 진행됐고 일부 나라에선 그 나라의 인프라와 국민의 특성, 그리고 유대인과 얽혀 있는 여러 상황으로 인해 진척이 느렸다.


오직 덴마크만 체계적이고 일관되게 저항했다. 국왕에서 국민들까지 나치와 아이히만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그곳에선 유대인과 관련하여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심지어 그곳에 파견된 독일 공무원과 군인조차 베를린의 지시를 무시했을 정도다. 선의에는 이렇게 의도적인 자각과 노력, 행동이 필요하다.


선과 악, 주체와 타자에 대한 사유

흔한 말로, 이 전대미문의 사건의 재판을 통해, 뉘른베르크의 전범 재판이 아닌 예루살렘에서 벌어진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아렌트가 말하고자 했던 건 뭘까? 승자의 재판이기에, 또 구체적 살인을 하지 않은 이에 대한 재판이기에, 또 전례가 없는 인류에게 행한 악행을 단죄하는 재판이기에 그 이해와 수긍이 쉽지 않았던 이 재판을 통해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악에 대해, 그리고 타자에 대해 사유하지 않으면 선을 이루지도, 선을 유지하지도, 더 나아가 그야말로 주체가 될 수도 없다. 타자에 대한 인식과 사유가 부재한 주체는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주체가 주체로 존재하기 위해선 타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또, 역설적이게도 주체는 타자의 존립을 위해 자신의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타자의 거기 있음이, 주체의 여기 있음의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또다시, 역설적이게도 악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는 곳에 악이 만연한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다는 말만큼 무가치한 말이 없는 이유다. 앞서 다른 글에서 썼듯이 법의 부재한 곳엔 무법이 도래하고 그 무법을 몰아내기 위해 더 큰 법이 밀려들어온다. 사유도 마찬가지다. 우리 앞에 주어진 하나의 상황, 한 명의 인간, 또는 한 명의 정치인, 더 나아가 한 무리의 민족이 저지르는 일이,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이 그들만을 위하는 악행인지, 모두를 염두에 둔 선행인지 감시하고 판단해야 한다. 심리적이고 정신분석적인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타자를, 더 나아가 이 세계를 끊임없이 사유해야만 한다. 이것이 아렌트가 아이히만의 재판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가 말년에 <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라는 책을 쓴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 일지도.


사족

다시 말하건 데, 이 책은 1963년 2월과 3월, 요약된 형태로 뉴요커에 처음 게재됐고, 이후 5월에 초판이 나왔다. 체포는 1960년 5월, 재판은 1962년 5월 말에 끝났다. 아이히만은 사형당했다.


이 글을 아렌트가 썼다는 것, 그리고 뉴요커에 게재됐었다는 걸 감안하면 번역이 형편없다. 애초에 글을 못 쓰는 사람이 번역했다. 뉴요커라는 잡지가 어떤 잡지인가. 내가 좋아하는 존 맥피와 조앤 디디온, 그리고 폴 오스터 조차 자신의 원고 그대로 낼 수 없는 잡지다.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편집자들이 버티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 매체를 통해 글이 나왔다면 아렌트의 글 또한 상당히 교정됐거나 또는 교정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써졌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번역본의 문장들이 껄끄럽게 읽히는 건 순전히 번역자의 탓으로 돌려도 무방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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