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고백에 대처하는 법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9

by 최영훈

소년들의 관심 표현법

방학이 시작된 후, 남자아이들의 카톡이 종종 온다. 보내는 애들은 같은 반 애들인데, 온유, 지원, 윤제 등이다. 이중 온유와 윤제는 딸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런저런 방법으로 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딸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애나 어른이나 남자들은 참 서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생각해 보면 결국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 알고 있는 방법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으로,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으로....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주고 싶은 것은 다 똑같다. 다만 상대방이 좋아하는 분야가 워낙 넓다 보니 결국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접점을 찾으려 할 뿐이다. 그 방법이 서투를 뿐이다.


주말 아침, 딸은 모처럼 늦잠을 자다 열 시가 넘어 깼다. 카톡 때문에 깼다고 했다.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거실 바닥 - 이 바닥이 제일 시원하다면서, 요즘엔 이상하게 거실 바닥에서 등을 뗄 줄 모른다. -에서 뒹굴 거렸다. 오후 한 시가 넘어서, 멀리서 발레를 하고 온 엄마가 돌아왔다. 간단히 햄버거로 점심을 먹으면서 날씨 뉴스를 보는데, 열대야가 보름 이상 이어질거라는 무서운 예고가 나왔다. 그걸 본 뒤 아내가 말했다. “우리가 텍사스보다 더 더워.”, “진짜?”, 내가 되물었다. “응. 어제 미정(아내의 동생)이랑 통화했는데, 거긴 저녁에 24도 정도밖에 안 한다더라고.”


아내의 말을 딸이 이어 받았다. “나도 알아. 온유가 말해줬어.”, “응? 온유가 어떻게 알고?”, 내가 딸에게 물었다. “아, 걔, 폰에 텍사스 시간이랑 날씨를 설정해 놨거든.”, 대답을 들은 난 온유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긴 미소를 입에 담은 채 아내와 마주 봤다. 딸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엔 윤제한테 카톡 왔거든. 윤제가 제로베이스원 포토카드 여덟장을 보여주면서 고르라는 거야.”, “왜?”, 아내가 물었다. “자기가 사준대.”, 난 딸의 대답을 듣고 또 한 번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꼈다. '하.. 남자들의 애씀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는구나.'


고백이 오는 시기

5학년 때까진 이런 일이 없었다. 유달리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고 친절한 남자 애들이 있었지만 고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 호감이 성적인 매력이 있는 “여성”을 향한 호감인지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고백”이라는 걸 통해 어떤 문턱을 넘어버리면 이렇게 친한 친구로 지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여하간 이런 일은 없었다.


6학년이 되면서부터 달라졌다. 학기 초에 그런 일이 있은 후, 딸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졌다. 내면이 단단해졌다. 2차 성징 이후 딸의 얼굴은 어린이에서 소녀로 변했고, 가끔은 20대 초반 여성에게 보이는 성숙한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물론 아직은 애다. 여전히 2학년 때 사준 가방을 메고 걸어서 학교에 다니고 더워진 6월부턴 체육 활동이 있는 날에 입는 기능성 소재로 된 반바지 세 개와 역시 같은 기능을 가진 티셔츠 세 개를 일주일 내내 돌려 입는다. 금요일이나 월요일만 셔츠와 청반바지 같은 옷을 입으면서 겸사겸사 헤어스타일에 약간 신경을 쓸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변화는 티가 났다.


티가 나기 시작한 후, 고백을 받기 시작했다. 학기 초엔 온유한테 고백을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가 “연인”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온유가 연애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웠는지, 아니면 말이 잘 통하고 책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는 “여사친”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그냥 친구로 지내자고 당시 황급히 수습했기 때문이다. 그 뒤 윤제가 고백을 했다. 딸의 신발장에 편지를 남겼다. 이번엔 딸이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고 예전 같이 친구로 지내기로 합의를 봤다. 지원이는 직접적인 고백을 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딸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하교를 같이 하는 날도 제법 있다. 카톡을 주고받는 횟수도 많다. 이런저런 친절과 호의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다. 이 외에도 여러 소년들이 주기적으로, 간헐적으로 딸에게 친절과 관심을 보인다. 딸이 그런 얘기를 해줄 때마다 이런 말을 해준다. “남자는 관심 없는 여자에겐 절대 친절을 베풀지 않아. 관심이 없는데 친절을 베푸는 남자는 세일즈맨, 사기꾼 아니면 전도하는 사이비 종교 신자 뿐이야.”


아직은 관심 없는 소녀

우쭐대는 기색은 없다. 커플이랍시고 학교에서, SNS 상에서 “꽁냥” 대는 것이 아직은 닭살 돋는 모양이다. 물론 카톡 외엔 SNS를 하지도 않지만. 집에서 엄마와 아빠가 나누는 달달한 멘트에도 이상 반응을 보인다. 잘 생긴 아이돌 오빠들은 좋아하지만 또래 남자 애들에 대한 관심은 없다. 가끔 학원에서 마주치는 중학생 오빠들 얘기는 하는데, 그마저도 키와 덩치 이야기다. 어떤 “놈” 하나를 콕 집어서 얘기한 적은 없다.


외모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얼굴에 뭐가 나는 것만 좀 주의할 뿐이다. 당연히 틴트니 하는 것도, 색조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다. 아직은 세수한 이후 엄마가 바르라는 로션만 열심히 바를 뿐이다. 그마저도 엄마가 잔소리를 해야 잊지 않고 바를 정도다. 헤어스타일도, 자를 때가 한참 지났지만 개의치 않는다. 더운 요즘엔 질끈 묶은 후 올려 큰 집게 핀으로 고정하는 것이 다다. 물론 자기가 봐도 좀 예뻐보인다 싶은 날엔 이상한 설정샷을 찍긴 하지만...

아직 카리스마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딸에겐 뭔가 만만치 않은 기운이 있다. 공부도 제법하고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다(이건 어디까지나 아빠의 기준이니 양해를 구한다). 운동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한다. 수업 시간엔 똑 부러지고, 제법 리더십도 있다. 남자 애들 농담도 대차게 받아칠 줄도 안다. 남자 입장에선 파악이 어려운 여자다. 어떻게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다 큰 남자도 이런 성인 여자를 만나면 일단 심호흡부터 할 것이다. 하물며 애들은 오죽할까.


딸에게 고백했고 호감을 갖고 있는 소년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관심과 호감을 표현하고 있다. “난 너에게 관심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다른 뭔가에 슬쩍 숨겨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다. 방학이 끝나면 얼굴을 볼 날도 몇 개월 안 남았으니, 그 친구들 입장에선 초조할 것이다. 이대로 보내면, 이렇게 중학교에 올라가 헤어지게 되면,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니, 그 친구들 사정이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인연이 닿고 운명이 허락한다면 또다시, 언제 어디선가 만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기엔 아직 터무니없이 어린 나이다. 초조한 것이 당연하다. 어쩌다 보니 그 친구들을, 그 소년들을 격려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사족 : 투쟁 후기, 혹은 무기력한 학교

학교는 무기력하다. 앞선 글에 담긴 투쟁은 단단히 생활 지도를 하겠다는 교장의 약속을 받는 선에서 물러섰다. 교장을 만난 자리에서 분명히 말했었다. 하영이 성향상 이런 일이 학기 내내 반복될 거라고. 실제로 그런 일이 또 일어났다. 하영이가 채원이라는 친구를 온오프라인 상에서 험담을 했다는 사실을 채원이가 알게 돼서 교장이 또 나섰다. 한 번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강제 전학을 하게 될 거라고 부모에게 경고를 줬다고 한다.


하영이의 담임이자 학년 부장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휴직을 했다. 자기 반 학생의 잘 못으로 계속 민원을 받는 것이 엄청 스트레스가 됐었던 듯 하다. 그 사람은, 나와 통화할 때는 담임이자 학년 부장으로서, 자신의 잘 못은 전혀 없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오류의 가능성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매뉴얼은 완벽하고 갖고 있는 답이 유일한 정답이라고 믿는 교사는 다양한 매뉴얼과 수많은 답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학교 밖 사람과의 대화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학교라는 세계만 알고 학교 밖 세계는 모르는 사람은 학교 밖의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학구 위반에 대한 조치 권한이 없는 학교는 그 사실 자체를 모른 척하고 있다. 며칠 전에서야 관련 통지문을 보내어 학구 위반과 이와 관련한 법을 공지하고 해당되는 학생이 있다면 전학을 하라는 권고를 했을 뿐이다. 물론 이것도 후에 교육청과 같은 상급 기관에서의 감사, 또는 관련 민원이 있을 경우 "권고"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 교사와 학교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교권이 약해졌다는 말은 틀리다. 교권은 약해진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 무기력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지도. 솔직히 안쓰러울 정도다. 다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전근을 가고, 조용히 임기를 채운 후 조용히 은퇴하기를 바란다. 이런 현상의 원인에 대해선 이런저런 말들이 많으니 나까지 말을 보태진 않겠다. 다만 무기력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겐 그 기력을 보충해 줄 방법이 없다는 말만 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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