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투쟁의 기록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8

by 최영훈

4월 첫 주 화요일부터 이번 주 일요일 밤까지 잠을 못 잤다. 자긴 잤으나 깊이 잠들지 못했다. 딸 때문이다.


화요일, 사건의 시작

4월 2일, 작업실에 출근해서 이런저런 회의와 미팅을 했다. 부산을 제외한 울산/경남/경북 대부분의 지역에선 이미 선거 결과를 받아 든 느낌이다. 불확실성이 제거된 사람들이 일을 하자고 전화를 했다. 그렇게 모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온 밤,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늦은 저녁을 먹는데 딸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H가 J와 D를 대동하고 쉬는 시간마다 자기 반에 와서 자기를 찾았다는 것이다. 네가 내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하던데, 그걸 좀 따져 묻고 싶다고 찾아왔다고 했다. 딸은 그 무리들과 몇 번 엇갈렸기에 찾아온 이유를 건너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엄마와 대응 전략을 짰다고 했다. 다음 날에도 찾아오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지를 말이다. 실제로 그 무리들은 다음 날, 수요일에도 찾아왔고 첫 번째 쉬는 시간, 복도에서 얘기를 하는 동안 언성이 높아졌는데 마침 지나가며 그 모습을 보신 음악 선생님이 각자의 교실로 돌아가라고 하여 흩어졌다고 했다. 무리들은 지치지도 않고 또 찾아왔고 딸은 물러서지 않고 말싸움을 하여 물리쳤다고 했다.

문제는 다음 날, 도서관에서 딸과 조우한 H는 네가 내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걸 우리 담임에게 이를 거라고 협박을 했고 딸은 그러라고 대차게 받아쳤다고 했다. 아마 이렇게 나오면 숙이고 들어올 거라 예상했던 모양이다. H는 실제로 담임에게 일렀고 일은 급속히 커져서 그 세 명과 딸, 양 반의 담임선생님이 한데 모여 사실 여부를 파악했고 쌍방과실로 판단하고 앞으로 서로에 대해 제삼자에게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끝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아내는 분노했다. 사건의 추이를, 그 H를, 그 H의 전력(前歷)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그 아이가 부 학생회장을 하고 있기에 더 그랬다.


사건의 배경

H와는 1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엄마끼리도 제법 친해서 학교에서 만나면 언니 동생 한다. 문제는 H가 무리를 짓고 왕따를 시키고 이간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과 지위를 확보하고 유지한다는 것. H는 매 학년마다 자신을 중심으로 무리를 만들었고 그 무리에 들지 못하는 아이들은 철저하게 소외시켰다. 한 반에 많아야 스물다섯 명, 이 중 여학생은 열두세 명, 무리의 규모가 예닐곱 명만 넘어가도 그 무리는 반의 핵심이 된다. 그 핵심적인 무리의 리더를 하면서 가입 자격과 탈퇴의 흠결을 결정하는 건 오로지 H만 할 수 있었다. 이런 H 때문에 딸의 오랜 친구인 Y도 4학년 때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었다.


5학년 때 H와 딸이 한 반이 됐고, H를 중심으로 몇몇이 뭉쳐 친하게 지냈다. 우리 집에 와서 논적도 있다. 겨울 방학이 오기 전 H의 생일엔 다들 어울려 놀았고 친구들이 돈을 모아 제법 비싼 선물을 사줬다. 겨울 방학 동안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엇갈리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화상 통화를 자주 했다. 딸은 당연히 기념품을 사다 줬고. 문제는 이 이후에 터졌다. 1월 말에 돌아온 딸은 자신을 제외한 그들만의 단톡방이 만들어진 걸 알게 됐다. 또, 2월 말인 딸의 생일과 생일 선물도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도 알게 됐다. 딸의 입장에서 서운했기에 그 마음을 표현했던 모양이다. 아내는 그런 관계에 미련 두지 말라고 지적했고 딸은 그들의 단톡방에서 나왔다. 개학 후엔 인사만 주고받고 말도 섞지 않았다. 그야말로 남처럼 대했던 것이다. 누군가를 대할 때마다 다시 무리에 넣어달라고 매달렸던 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어던 H로서는 딸의 냉랭함이 상당히 불쾌한 상황이었기에, 결국 기를 죽이기 위해 반을 찾아갔던 것이고 일이 그렇게 진행 됐던 것이다.


사건의 전개

아내는 다음 날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화요일 날 몇 번이나 찾아온 H의 무리에게 약간 공포감을 느꼈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건너 들으니, 결국 서로가 서로에 대해 소위 뒷 담화를 한 건에 대해선 재발 방지를 약속받고 무마 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적인 지위를 가진 애가 두 명의 부하를 대동하고 딴 반에 가서 위협적이고 위압적으로 들이닥친 건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조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 건에 대해선 학폭위,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서 진행해야 하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고 그 과정에서 딸이 스트레스를 받을지 몰라서 넘어가기로 한 모양이다. 그래도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이게 이렇게 넘어갈 일인가?


잠이 안 왔다. 어떻게 하면 딸과, 딸의 담임선생님에겐 전혀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공식적인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서 이 사안으로 H와 그 부모, 그 반의 담임선생님에게 사과를 받고 적정한 페널티를 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생각했다. 그러다 불쑥 생각이 났다. 바로 거실로 나와 검색을 해 봤다. 생각보다 이 이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이 사안과 관련해서 작년에 계셨던 교장 선생님이 보냈던 가정통지문도 생각났다. 그 링크도 다시 찾아냈다. 그래... 이거다. 이거면 되겠다.


아킬레스 건

학구 위반이라는 것이 있다. 풀어쓰면 통학구역 위반이다. 고위 공직자의 청문회 때마다 발목을 잡는 위장전입 사안이다. 알다시피 공립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는 배정지의 학교를 가야 한다. 이 배정지는 학생의 주소로 결정되는 데 당연히 가족관계증명서 상의 주소다. 그런데 여기에 조항이 하나 더 추가되는데 이 주소가 가족의 실거주지여야 한다. 그러니까 지인이나 친척의 집으로 주소를 옮겨놔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학구 위반이 발각될 경우, “주민등록법 제10조를 위반(주민등록 2중 신고, 주민등록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 한 경우, 같은 법 제37조에 의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딸이 다니는 학교는 대표적인 학구 위반 사례가 많은 학교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학군도, 학교도 좋다는 말이다. 이 학교는 일종의 섬과 같다. 학교 주변에 공원이 두 개가 있고 유엔기념공원과 부산시립박물관, 부산문화회관이 있다. 또 인근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있고 주변에 소위 유해업소 및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에 등하굣길에 눈살을 찌푸릴만한 일도 없다. 반면 주변의 다른 학교는 약간 상황이 다르다. S초등학교는 통학 환경이 좋지 않고 D 초등학교는 시장과 버스 노선이 공존해서 통학로가 복잡하고 주변에 상가가 밀집되어 있어 아이들이 한눈팔기 딱 좋다. 또 같은 남구지만 대로 반대쪽인 용호동은 경제 수준이나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떨어져서 그 동네의 부모들조차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동에 있는 학교, 특히 이 학교로 오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딸과 친하거나 딸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우리의 대화에 오르내렸던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은 학구 위반 학생이다. 대부분은 같은 남구에 사는 애들이지만 종종 자동차로 이십 분 이상 걸리는 다른 지역에 사는 애들도 있다. 작년 가을, 교장 선생님의 가정통지문의 내용으로 볼 때 이 학교의 학구위반 학생의 비율은 생각보다 높은 모양이다. 어림짐작으로는, 글쎄, 대략 20퍼센트 정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 반에 서너 명 정도다. H와 J도 이런 애다.


H는 같은 남구에 살지만 작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학구에 배정된 애다. 원래대로라면 S초등학교를 가야 했다. 그런데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이 학교를 다니고 있고, 더 큰 문제는 한 살 어린 동생까지도 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J는 학구위반 아이들 중, 최소한 내가 아는 한 가장 멀리서 온다. 영도. 그 영도다. 다리를 건너 들어가야 하는 섬 동네 말이다.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것이다. 아침 시간이라면 차로 대충 30분 이상 걸리지 않을까? 남항대교 등을 이용해도 이십 분 정도 걸릴 것이다. J도 중학생 오빠가 이 초등학교 옆에 있는 중학교에서 야구를 한다. 참고로 중학교의 학구위반 적발이 더 엄격하다. 게다가 부산에서 야구를 할 수 있는 중학교는 아홉 개 정도인데, 중간에 학교를 전학해 운동을 이어간다는 건 쉽지 않다.


콜레트럴 대미지를 무릅쓴다.

결국 이걸로 가기로 했다. H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자신의 지위를 망각하고 친구를 대동하여 다른 반에 위압적으로, 여러 차례 찾아온 것에 대해 내가 원하는 조치를 받고 싶다. 그 조치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교육청에 학구위반으로 민원을 넣어 두 사람을 전학시키겠다는 것이 내 전략의 기본 구조였다.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그럼 다른 애들까지 피해를 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거야 당연하지, 그러나 난 그런 거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난 학교와 전교생이 고생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H 때문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리고 싶다. 설령 그 과정에서 다른 애들이 피해 - 분명 위법의 발각이기에 피해라고 볼 수 없지만 -를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고전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 나온 트릭처럼, 영화 <잭 리처>에서 무작위로 죽인 피해자 중 진짜 목표가 숨어 있었던 것처럼.


딸이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선생님과 길게 대화를 한 적이 없다. 어린이집 선생님과는 그저 안부를 물을 정도였고 초등학교 선생님하고는 얼굴도 본 적이 없다. 작년, 딸이 5학년 일 때, 운동회 때, 처음으로 딸의 담임선생님 얼굴을 봤고 그마저도 먼발치에서 봤다. 딸은 알아서 하는 애였고 성격도 무난했기에 부모가 나설 일이 없었다. 딸이 저학년 일 때 우스갯소리처럼 말했듯이, 학교에서 전화를 받고, 부모님 모셔 오라고 하는 것이 문제지 학교에서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는 건 문제가 없는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나서기로 작정했을 땐 다른 아이들의 피해는 그야말로 콜래트럴 대미지, 부수적인 피해 같은 거다.

선생님은 빠지세요.

아내에게 담임선생님에게 내 번호를 주고 전화를 부탁하라고 했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빠지라고 했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기 전 한 가지 불확실한 것이 있었다. 이 험담의 건의 수습에서 왜 위압적인 방문의 문제는 제외 됐을까? 왜 이렇게 빨리 수습된 걸까? 월요일, 하굣길, 딸에게 넌지시 물었다. “6학년 3반 담임선생님이 너네 담임선생님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응.”... 이제 좀 명확해졌다. 소위 짬밥에 눌린 것이었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 봤다. 3반 담임선생님은 학년 부장이었다.


월요일, 오후 세 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통성명을 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핵심은 간단했다. H와 딸이 서로에 대해 험담을 한 사안은 그 진위여부를 막론하고 일단락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렇다면 딸이 그 반을 찾아가서 따진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H가 딸의 반을 찾아와 위압적인 행동을 한 건은 해결이 안 된걸로 판단해도 되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했다.


먼저 대 전제를 말했다. 딸과 딸의 담임선생님을 제삼자로 만들고 싶다. 그런 이슈로 이 사안을 몰고 가려한다. 딸과 담임선생님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H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내 전제다. 그래서 다음에 말한 사안은 선생님이 잘 들으시고 6학년 3반 선생님께 전달해 주시고, 제 번호를 주신 뒤, 선생님은 빠지시면 된다고 했다.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사과의 범주다. 첫째, 3반 담임선생님은 학생 관리 소홀의 책임을 지고 나에게 사과할 것, 이 사과는 대면으로 하여야 하며, 장소는 학교, 시간을 정하면 직접 가겠다고 했다. 둘째, H의 어머니는 나나 아내에게 전화를 하여 이 일에 대해 사과할 것, 서로가 모르는 사이는 아니니 누구에게 전화를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페널티의 범주다. 첫째, H는 지위를 남용하고 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였기에 여자 부학생회장에서 사퇴를 할 것. 둘째, 6학년, 남은 기간 동안 딸이 참여하는 다양한 학내 외 활동에 참여하지 말 것, 여기엔 4월 말로 예정된 수학여행도 포함된다고 했다.


요구사항이 이뤄지지 않을 시 어떻게 할지를 이어 말했다. 혹시 학구위반이라고 아시냐고 물었다. 당연히 안다고 대답했다. 두 학생이 학구위반 학생이다. 그 오빠와 동생도 그렇다. 제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1차로 두 학생의 학구위반사례로 교육청에 민원을 넣을 것이다. 계속 지연되면 2차로, 6학년 전수조사 민원을 넣을 것이고, 더 지연되면 3차로 전교생 조사 민원을 넣을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우리 팀이 바빠지고 4월 말엔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데드라인은 4월 15일이다. 그때까지 만족할만한 반응을 보여 달라고 했다.


내 직업과 경력에 대해 짧게 얘기했다. 그리고 넌지시 압박을 넣었다. 이 일을 오래 했고 대학원 동기들이 다 언론사 국장이거나 사장이다 보니 부업으로 여기저기 글을 쓰고 있다. 총선이 끝나면 딱히 뉴스도, 이슈도 없는데 공정과 정의로워야 할 공교육 현장인 초등학교에서 학구위반이 묵인되고 있다는 건 좋은 뉴스거리 아니겠는가, 학교가 안 좋은 일로 뉴스 타는 건 좀 그렇지 않으냐고. 이어 덧붙였다. 내가 딸 친구 학부모들하고는 거의 띠동갑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넘어가며 지금까지 왔다. 그런데 이건 못 넘어가겠다. 일단 나선 이상 지저분해질 각오를 하고 있다. 손에 피를 묻힐 각오가 되어 있다. 6학년 3반 선생님에게 저에 각오를 전해주시라. 그리고 이제 선생님은 빠지시라.


어디에나 빌런은 있다.

딸의 담임선생님은 젊다. 인천에서 교육대학을 다니시는 동안 SSG의 우승을 보고 야구팬이 됐다고 했으니 빨라야 14학번, 늦으면 18학번일 것이다. 14학번이라면 많아야 서른 안팎이고, 18학번이라면 이십 대 중후반이다. 그 선생님에게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했다.

이 일을 이십 년 이상 하고 오십이 넘도록 살아보니 어디에나 악당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빌런은 흔하다. 법 밖에, 법 위에 존재하고 군림하려는 자들도 많다. 누구나 기회만 주어지면 악당이 될 수 있고 사악해질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듯이 한 사람의 인성은 그 사람이 가난하고 힘없을 때가 아니라 부자가 되고 권력을 쥐었을 때 알 수 있다. 이런 악당, 이런 사악한 존재가 되는 걸 방지하고 나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일찍부터 그런 교육이 필요하다. 교훈이 필요하다. 요즘 애들 말로 하면 그야말로 “참교육”이 필요하다. H에겐 이번이 그런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물론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딸의 선생님과 통화하던 날 오전,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와 통화를 했다. 교사 생활한 지, 이십몇 년 되지 않았을까? 이 사연을 얘기했더니 그 친구가 이랬다고 한다. 아이가 그런 아이면 부모도 그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고 한다. 이 친구, 딸이 입학하기 전 아내와 대화할 때,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앞으로의 미래 견적이 나온다고 했던 선생님이다. 그 말이 틀린 말이 아니어서, 요즘 무서울 때가 있다.


이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학부모회장인 학생회장 엄마에게 전화를 해 사안과 이슈를 증폭시킬지도 모르겠다. 그 집 애와 엄마와는 1학년 때부터 꽤 오래 독서 모임을 한 사이인 데다가 그 엄마 부모님이 급작스레 병원에 입원해야 했을 때 아내가 약간의 도움을 준 적이 있다. 그러니까 소위 인연도 있고 마음의 빚도 있는 사이인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모든 가능한 수를 생각하고 있다. 그 끝에 다다를 결론은 간단하다. 이 학교의 동급생들과 후배들에게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것. 이를 위해 갈 때까지 가보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것이라는 것.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