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딸의 초등학교 시절 마지막 참관 수업이 있었다.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했다. 1학년 때부터 5학년 때까진 아내가 참석했다. 그 중간, 2학년, 3학년 시기, 즉 코로나 시국엔 줌으로 대신했고 말이다.
한동안 머리를 길렀었다. 그렇다고 엄청 장발은 아니고 그저 머리 자를 시기를 넘겨서 일본의 초밥 장인 같았던 짧은 머리칼이 길어졌고 길어진 김에 뒤로 넘겼더니 <7년의 밤>의 장동건 같은 헤어 스타일이 되어 버렸다. 불행히도 얼굴은 그대로였다. 뭐, 오래간만에 길어진 머리칼도 나쁘지 않아서 놔뒀는데 아내가 마뜩지 않아했다. 그러던 차에 참관 수업 공지가 뜬 것이다.
아내는 그동안 반차를 내서 참석했었다. 그런 아내가 이번이 마지막이니 내가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마침 회장도 떨어졌고 반장도 안 됐으니 이래저래 부담도 없었다. 좋다고 했더니 딸이 조건을 걸었다. “머리도 자르고, 수염도 깎고... 아, 선글라스도 끼고 오지 마.”, 아빠가 깔끔해 보이고 그나마 멀쩡해 보이게 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가 갈지, 내가 갈지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요일을 앞에 둔 주말, 내가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월요일 아침, 딸에게 그럴 거라고 말한 뒤, 엄마는 안 가도 되냐고 물었더니 딸은 괜찮다고 했다. 결국 아빠 혼자 가기로 결정이 났다.
처음이자 마지막 참관 수업
이 주, 몸이 안 좋았다. 3월 한 달, 좀 무리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수영을 했고 맥주도 많이 마셨다. 나잇값 못한다고 몸이 성을 냈다. 월요일, 수영은 쉬었지만 수영장 앞에 있는 남자 전용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화요일엔 작업실에 출근해서 감독, 조감독과 회의를 했다.
수요일, 여전히 몸 상태가 별로여서 좋아하는 핀 수영이 있는 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안 가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딸의 참관 수업 참여를 여유를 갖고 준비를 했다. 씻고 면도를 하고 옷을 골랐다. 그렇다. 아주 신중하게...
이 날, 참석하는 엄마들은 상당히 공을 들여 꾸미고 온다. 헤어, 메이크업, 의상, 가방까지 그야말로 풀 세팅을 한다. 아내 대신 가는 것이고 딸의 체면도 있으니 최소한 고객과의 미팅 자리에 가는 정도는 하고 가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선생님도 분명 최대한 차려입으실 것이 뻔했다. 교사와 학부모의 첫 대면인데 서로 간 예의를 갖추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평소엔 거의 입지 않는 셔츠를 입기로 했다. 검은색 셔츠, 사막 색깔 바지, 재킷은 회색의 가는 흰색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것으로 골랐다. 적당히 깔끔하고 적당히 여유 있어 보이지 않을까 싶은. 막 나가려는데 밖의 날씨가 쌀쌀하다는 일기 예보가 생각났다. 날씨를 확인하고 재킷을 바꿔 입었다. 버건디 색의 모직 재킷으로.
아이의 학교에서
교사의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니 지나가던 선생님이 인사를 해 맞인사를 했다. 6학년은 5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자 점심시간이 끝난 뒤 복도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던 딸이 반겼다. 성큼 다가와 폭 안겼다.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돌아보니 아는 얼굴이 보였다. 이웃인 정화 엄마와 먼저 인사를 하고 어린이집 시절부터 친구인 지유 엄마와도 인사를 했다. 정화 엄마는 “은채랑은 한 번도 같은 반이 안 되네요.”하며 아쉬워했다. 지유 엄마는 노메이크업에 편한 차림으로 왔다. 오히려 독보였다. 아내 말로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한다.
이날 수업은 국어, 단원의 주 내용이 직유와 은유를 배우고 있는 터라 다들 이 비유법을 활용하여 좋아하는 과자를 소재로 시를 써냈다. 이 날은 시의 주인이 앞에 나와 직접 자신의 시를 읽고 학우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수업의 내용이었다. 일종의 작가와의 대화 형식을 빌린 것이었다. 난 교실에 들어가기 전 잠시 시간이 남아 복도 벽에 붙어 있던 시들을 미리 읽었다. 당연히 딸의 것을 먼저 읽고 딸과 친한 온유라는 남자아이의 것을, 그리고 딸의 친구인 지유의 것을 찾아 읽었다.
부모들은 교실 뒤, 아이들 뒤에 섰다. 수업이 시작됐는데 선생님의 얼굴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샤넬풍의 트위드 재킷, 네이비 색의 정장 바지, 젊고 생기 있는 얼굴에 꼭 필요한 메이크업만 했다. 선생님의 눈에 아이들의 긴장한 얼굴이 보였는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했다. 맨 뒤에 앉아 있는 딸의 옆얼굴을 봤는데, 별로 긴장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저러나 누가 제일 먼저 발표를 하려나.
과거의 칠판을 대신하는 스마트 칠판 화면엔 딸의 시가 가장 먼저 떴다. 선생님이 호명하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가 오른팔을 위에서부터 두 바퀴 돌려 내리며 깊이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커튼콜을 받는 뮤지컬 배우처럼.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졌고 그 순간 아이들의 긴장도 사라졌다.
그렇게 스물다섯 명의 어린 시인들의 발표와 질문과 대답을 40분에 걸쳐 들었다. 선생님이 절묘하게 배치를 하셨는지 재미있게, 제법 잘 쓴 아이의 시가 몇 명에 한 명씩 등장해서 내 주의를 끌었다. 나중에 딸에게 물어보니 자신을 첫 번째 발표자로 한 것도, 그렇게 순서를 정한 것도 선생님이 고민 끝에 결정하신 것이라고 한다.
문해력 향상은 선생님의 숙원 사업
이 수업이, 이 날 수업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거나 학원에 가거나 엄마와 아빠를 밖에서 기다렸고, 나를 포함한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자리에 앉아 잠시 선생님의 학급 운영 방향과 핵심 학습 목적 등을 들었다. 선생님의 올 한 해 학습 목표는 한마디로 문해력 향상이었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한마디 하셨다. “솔직히 수학, 영어는 중학교 가서도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문해력을 놓쳐 버리면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힘듭니다.”,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표정엔 어떤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문해력 향상을 위한 선생님의 아침 자습 시간 운영 내용을 보니 선생님의 진지함이 더 깊이 와닿았다. 우선 반 아이들 전체가 읽는 한 권의 소설이 정해져 있었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익숙하거나 관심 있는 신문 기사를 필사하는 시간도 있었다. 또, 한자 공부도 함께 진행 됐다. 쓰기와 읽기, 그리고 어휘의 향상까지 함께 꾀하는 구성이었다. 선생님이 이 정도로 문해력에 진심이라면 아이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리라. 부모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이어서 선생님은 사춘기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청소년 소설 세 권을 추천해 주셨다. 다들 스마트 폰을 꺼내 화면의 사진을 찍었다. 난 적당히 기억해 두기로 했다. 은소홀 작가의 <5번 레인>,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 허진희 작가의 <독고솜에게 반하면>이었다. 집에 와서 딸에게 물어보니 허진희 작가의 소설은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참관 수업은 끝났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처음 참여한 참관 수업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는 참관 수업이 없지 않을까? 대학교도 당연히 없고. 그렇다면 아이가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 후 포토타임을 허락했다. 난 딸이 자기 자리에 앉은 모습과 단짝 친구인 지유와 함께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늘 붙어 다니는 온유와도 찍어주려 했으나 둘 다 기겁을 하며 사양했다. 남자 사람 친구와 남자 친구, 그 어디쯤의 경계에 있는 걸까?
온유는 딸에게, 너희 아빠 멋있다고 했단다. 예전에 머리가 길었을 때도 잠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딸에게 “너희 아빠, 무림 고수 같아.”라고 했었다. 온유의 취향이 그런 취향인지도 모르겠다. 아웃사이더의 느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고. 여하간, 책 밖에 모르는 바보로 유명한 온유는 날 그렇게 봤다.
딸은 크고 난 나이를 먹고
이번 주 금요일, 아내는 무급휴가를 냈다. 이번 사태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져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휴가를 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날, 아내는 오전에 지유 엄마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아내가 불쑥 말했다. “지유 엄마, 84년생이래.”, “응? 그럼 쥐띠네.”, “아, 그래?”, “그렇지. 나랑 띠동갑이네.”
아이가 클수록 내 나이를 실감한다.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들을 보면 더 그렇다. 이렇게 딸의 단짝 친구의 엄마가 나와 띠동갑이라는 것이 새삼 놀랍지도 않다.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은 나와 최소한 열 살 이상 차이가 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니 새삼 딸에게 고마웠다. 흰머리를 염색도 하지 않은 채 다니는 아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디서든 아빠를 발견하면 강아지처럼 달려와 주니.
참관 수업이 끝난 후, 집에 와서 딸은 쉬고, 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 혼자 라면을 끓여 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무탈하게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5년이란 시간이 쏜살 같이 지나갔다. 이제 좀 있으면 졸업 사진을 찍고 수학여행을 갔다 온 뒤 여름방학을 보내고 나면 금방 중학교 갈 준비를 할 것이다.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선 이미 예비 중학교 반에 편성되어 공부를 하고 있다. 들은 말로는 이후부터는 순식간이라고 한다. 중학교 3년 훅, 고등학교 3년 훅, 그리고 대학까지 정신없이 간다고.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 동안 나 또한 나이를 먹을 테고.
봄, 여름, 가을과 겨울, 그렇게 올 한 해가 지나면 딸의 초등학교 시절을 기록해 보겠다는 내 목표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엔 1학년 시절만 기록해서 책으로 내보는 것이 꿈이었다. 아이의 손에 그 책을 들려주고 싶었고,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가 내 이야기를 이렇게 썼다고 자랑할 수 있길 바랐다. 그 꿈은 말그대로 한끗차이로, 애석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브런치 덕분에, 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됐다.
언제까지 기록을 할 수 있을지, 또 그 기록을 여기에 계속 연재할 수 있을지,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고 약속할 수 없다. 다만 기록을 하든, 안 하든, 초등학교 6년처럼 딸에게 남은 학창 시절이 그렇게 순탄하고 무리 없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