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향해가는 딸에게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56

by 최영훈

애들의 교우 관계는 얄팍하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붙어 지내고 주말에도 영상 통화를 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다가도 계절이 바뀌고 학년이 바뀌면 소원해진다. 올 겨울방학 때도 그랬다. 6학년에 올라가면서 5학년 때 친했던 애들과 소원해졌다. 미국에서도 매일 카톡을 주고받던 애들이고, 방학을 하기 전, 그중 한 명에겐 무리해서 생일 선물도 사줬다. 미국에 갔을 땐 없는 용돈으로 자잘한 기념품도 사람 수대로 사 왔다. 그러나 개학이 되자 관계는 시들해졌다. 2월 말이 생일인 딸은 당연히 생일 선물도 못 받았다.


누굴 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친구한테 퍼주는 스타일이었다. 그 후 자신은 그렇게 마음을 썼지만 친구들은 그렇지 않아 속이 상하곤 했다. 모처럼 데리러 갔던 날, 집에 오면서 그런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했다. 이런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딸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개는 늑대의 생각을 몰라."


이 날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인생에서 학교 친구가 정말 중요할까? 정말 중요한 건 자기 자신 아닐까?", 오은영 선생이 어느 방송에서 했던 말처럼 반 친구들하고, 학교 친구들하고 굳이 다 친하게 지낼 필요 없다고, 엄마가 회사 사람들 모두와 다 친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후, 늘 반복했던 가르침이 이어졌다. 아이가 열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가르친다. 해야 될 것이 있고 가야 할 길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참고로.... 개와 늑대의 유전자는 99.96퍼센트 일치한다고 한다. 0.04퍼센트의 차이는 백인종과 황인종의 차이보다 가까운 것이라고. 그런데 이 작은 차이를 극적으로 만든 것은 윌리엄스 증후군. 사람에게도 이런 유전자 변이가 있는데, 이 경우, 쉽게 말해 자폐증의 정반대 되는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사교적이고,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말은 잘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산 탓인지 - 나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 몇몇 후배라면 내 성격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 아내 덕분에 부산에 정착하여 20년을 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사람이 없다. 종교도 없고 동호회나 커뮤니티 활동도 안 하는 데다가 좋아하는 운동인 수영조차 개인 종목으로 분류되는 운동이다. 물론 반에 따라선 수영장 밖에서도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 반의 1번 주자는 사교적인 것하고 거리가 먼 사람이다. 토할 때까지 수영을 하라고 다그칠 줄만 알지.


친인척, 가족의 범위도 좁다. 얼마 전 아내한테 솔직하게 얘기했듯이, 내게 있어 가족의 범위는 아내와 딸, 거기까지다. 내 쪽 가족은 내가 애착이 없고 처가 식구도 아내를 사랑하니까 관계가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지, 아내가 없다면 따로 만날 일 있겠나?


그렇다고 딸에게 나 같이 외롭게 살아도 된다, 그게 좋은 삶이다라고 가르치는 건 아니다. 타자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사는 법을 알길 바라고, 또 그러고 있다. 그건 나보다 훨씬 잘한다. 다만 그 타자에게 자신의 삶이 휘둘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자신의 삶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길 바랄 뿐이다. 미래의 자신이 과거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니까.


스스로를 사랑하되 만족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어제의 나를 용서하고 오늘의 나를 격려하며 내일의 나를 기대하며 사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따뜻하되 무른 사람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그럽되 자기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사로운 이익에 흔들리지 않되 자기 것은 분명히 챙겼으면 좋겠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되 모두에게 사랑받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이다. 아빠의 바람이란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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