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채와의 다른 이야기를 올리기 전에
지금까지의 글은 은채의 1학년의 시간을 담았습니다.
은채와 아빠가 함께 크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쓰기 전, 은채가 열 살이 되면 뭔가 큰 변화가 있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저 또한 우리나이로 쉰이니 큰 변화를 겪을테고요.
그러면 열 살이 된 딸과 쉰이 된 아빠의 변화를 기록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 한 해 동안, 3학년의 일상과 단상, 쉰살의 아빠의 생각들을 써놨습니다.
아직은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서 이 글들은 세상에 나오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대신 다른 글을 먼저 올릴까 합니다.
작년 초여름, 칼럼 연재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일 년 반 정도 연재했고, 쉰번째 칼럼 게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절반은 <영화의 위로>이고, 절반은 <최카피의 딴 생각>입니다.
두 칼럼 다 분량은 같습니다. 한 글 파일 두장 반.
그러나 쓰다보면 늘 네장 다섯장 되기가 일쑤여서 줄이고 자르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덕분에 글 고치는 솜씨는 늘었죠.
그 중 <영화의 위로>는 감독의 디렉터스 컷처럼 무삭제판으로 어디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감독의 무삭제판이 이미 세상에 나온 삭제판보다 더 좋으리라는 법이 없듯이 글 또한 그러할겁니다.
그러나 좀 어수선하지만 영화와 철학이 얽힌 생각의 미로를 그냥 그대로 펼쳐 두고 싶었습니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여기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로 했습니다.
<영화의 위로>는 영화에 관한 칼럼이 아닙니다.
영화 비평도 아니고, 감독 비평도 아니고, 영화 리뷰도 아닙니다.
그저 제가 보고 좋아했던 영화를 통해 일상과 가족의 소중함, 그런 삶의 작은 알아챔과 발견...
다르게 보게 된 순간들에 대한 칼럼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영화+일상철학 에세이쯤 되지 않을까요?
일년 반, 칼럼 연재 기간동안 조금 글 솜씨가 늘었습니다.
아니 글 고치는 솜씨가 늘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지요.
다음 주 월요일부터는...<영화의 위로>무삭제판을, 조금 길더라도, 한편씩 올려볼까 합니다.
그 한 두 달 후, 열 살의 딸과 쉰살의 아빠가 새롭게 알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담은....
긴 글....<열살이 신나는 딸, 쉰이 두려운 아빠>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