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에서 읽은 책 115
“우리가 살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배경이 계속 바뀌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갈 뿐이다. 여기에 시작은 결코 없다.”, P.100(문예출판사 에디터스 컬렉션 판본)
“이것이 바깥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 안에서 일어난 일은 명확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보였고, 나는 역겨움을 느꼈는데, 그때 바다를 보고 있었는지, 돌멩이를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돌멩이는 넓적했고, 한쪽면 전체는 말라 있었고, 다른 쪽은 축축하고 진흙이 묻어 있었다. 나는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크게 벌려 그것을 잡고 있었다.”, P.15
“그들은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조용히, 별 열의 없이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P311
"핵심은 우연성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정의(定義)상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여기 있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은 나타나고, 누군가와 마주치게 되지만, 결코 연역될 수 없다. 난 이점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의 원인이 되는 필연적 존재를 꾸며냄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런데 그 어떤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연성은 가장(假裝)이나 흩트려버릴 수 있는 외관이 아니라 절대이며, 따라서 완전한 무상(無償)이다. 모든 것이 무상적이다. 이 공원도, 이 도시도, 그리고 나 자신도. 간혹 이 사실을 알아채게 되는데, 그러면 속이 뒤집어지고, 저번 저녁에 랑데부 데 슈미노에서 그랬듯 모든 것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구토다.”, P.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