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될 흥미진진한 소설의 원고를 읽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소설은 도착의 발생을 추적하는 일종의 로빈슨 크루소류의 모험 이야기인데 대단히 탁월해 보입니다. 작가는 미셸 투루니에라고 합니다.”, 들뢰즈, 1960년, 8월 27일, 장 피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들뢰즈의 세 번째 유고집 <들뢰즈 ; 다양체>에 수록.
이 책, <들뢰즈 ; 다양체>를 읽은 건 작년 가을이었다. 정확히는 9월 말에서 10월 초, 브런치 스토리에 서평을 올린 건 10월 13일이다. 저 편지의 앞 뒤 내용은 이렇다. 들뢰즈는 장 피엘이라는 편집자로부터 글을 의뢰받는데, 들뢰즈는 그걸 쓰기 어렵다는 말을 어렵게 풀어내는 것이 편지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의 중간쯤, 뜬금없이 소설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들뢰즈는 칭찬과 추천을 참을 수 없었던 걸까.
편지의 이 단락에 소설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 물론 난 모험 이야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소설의 내용은 들뢰즈가 요약해 놓은 것처럼 우리가 잘 아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다. 심지어 주인공의 이름도 똑같고 난파되어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아 살아나가는 이야기도 같다. 중간에 구하여 함께 살게 되는 원주민의 이름도 같다. 영어로 금요일인 프라이데이, 프랑스어로는 방드르디.
그러나 전개와 결말이 묘하게 다르다. 일단 다니엘 디포의 소설은 1719년에 나왔다. 읽어봤을까? 아마 요약해 놓은 것이라도 읽어봤을 것이다. 물론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건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로빈슨 크루소>이니 그 영화 내용으로 먼저 나온 소설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결투를 한 끝에 친구를 죽인 주인공이 밀항을 하게 되는데, 그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홀로 살아남는다. 그러다 식인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원주민을 구해주고 그에게 성경과 영어를 가르치며 우정을 쌓는다. 그렇게 살다가, 무려 28년 19일이 지나서 지나가는 배에 발견되고, 그 배와 항해를 한 끝에 무려 영국을 떠난 지 35년 만에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탄식의 섬, 탈출호, 그리고 광기
투르니에의 소설은 좀 다르다. 초반은 비슷하다. 물론 결투니 도피니 같은 전제는 없다. 주인공은 신앙과 근대학문으로 무장한 스물두 살, 젊은 청년으로 작은 상선을 얻어 타고 신대륙으로 가고 있었다. 선장의 방백으로 보건대 그는 이미 결혼해서 아내와 자식을 고향에 두고 왔다. 선장과 타로 카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 배는 폭풍을 만나 난파되고 혼자 살아남는다. 때는 1759년 9월 29일이다.
아무도 없다. 생존자도 거주자도 없다. 어딘지도 모른다. 이어진 육지도 건너 보이는 섬도 없다. 고립무원, 그 자체. 주인공은 섬의 이름을 탄식의 섬이라 부른다. 그리고 거기서 지나가는 배에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해 연기를 피울 생각을 하고, 섬을 떠나기 위해 배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잡념을 없애기 위해서도. 그는 묵묵히 제법 큰 배를 만든다. 손에 들어온 부족한 도구로 안간힘을 쓰며 배를 만든다. 다 만든 후에 깨닫는다. 해안까지 너무 멀다. 끌고 갈 수도, 밀고 갈 수도, 굴려 갈 수도 없다. 헛짓을 한 것이다. 광기가 찾아온다. 말 그대로 정신줄을 놓는다.
녹진한 진창으로 침잠한다. 그 안에서 뒹구는 돼지들과 다를 바 없이 야생으로 전락한다. 전락인가? 그는 그 안에서 싸고 뒹굴고 자고 배고프면 나와 잠시 손에 잡히는 걸 먹고 다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시간과 계절의 헤아림은 멈추고 문명의 세계를 향한 탈출의 의지 또한 사라진다. 돌아갈 세계에 대한 희망, 추구하는 이상이 멈춰진 인간은 그렇게 무(無)로 돌아간다.
문명, 역사, 그리고 방드르디
그러다, 정신을 차린다. 난파된 배에 남은 옷과 도구, 자원들을 모두 가져온다. 농사와 축산업, 어업을 도모한다. 땅을 경작하고 물고기를 양식하고 야생 염소와 돼지를 가축으로 만든다. 스스로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일과를 만들고 시계를 만든다. 섬의 이름을 바꾸고 자신이 제독을 취임한다. 문명이 시작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문명을 향한 탈출 의지가 있는 곳에서의 문명 수립 의지로 바뀐 것이다.
이후, 방드르디를 구해주고 함께 산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로빈슨 크루소에 등장하는 프라이데이와 조금 다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이 뭘 해야 행복한지 정확히 알고 있다. 아니, 존재의 이유를 행복에서 찾는다고 해야 할까? 행복이란 말도 좀 거창하다. 즐겁고 흥분되고 만끽하는 것이 삶임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단순한 행동이나 반복 작업이라도 어떤 흥 같은 것이 느껴지면 신명 나게 한다. 주인공이 자신이 만든 문명과 제도와 법 아래 그를 길들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신이 이뤄놓은 모든 것이 폭파된다. 은유가 아니다. 실제로 화약에 의해 완전히 초토화된다.
역사 없는 시간, 시간 없는 공간과 인생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그들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하나의 영혼으로서의 섬, 영혼의 동반자로서의 있는 그대로의 타자, 소유되지 않는 모든 것, 내 것일 수 없는 시간들, 이성과 도구로 구획되지 않는 공간과 시간과 역사들. 결국,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태양이 질 때의 아름다움, 뜰 때의 벅차오름, 방드르디의 아름답고 오직 생을 만끽하기 위해 설계된 신체, 삶 그 자체가 목적인 삶, 존재 자체가 존재 이유가 되는 모든 것들의 그 온전한 가치와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의 배가 섬에 들어온다. 방드르디는 그 배조차 만끽한다. 큰 배와 낯선 선원과 문명의 이기가 응축되어 있는 그 배를. 이 지점에서 독자인 나는 - 아마 이 소설을 읽었던 많은 이들 또한 - 어리둥절하게 되는데, 그가 온전히 자연인으로서, 비문명의 테제로서, 문명의 안티테제로서의 역할을 섬에서 계속 이어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 배에 올라타 떠나버린다. 대신 그가 타고 온 카누를 타고 배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열두 살 소년이 섬으로 들어오고. 어쩌면, 방드르디는 철학 없는 행동, 두려움 없는 만끽, 이유 없는 실천, 그 자체를 표상하는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신도, 타로 점도, 이성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해석도 거부하는 충동 그 자체.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순수한 욕망, 그 욕망의 동사형이자 화신.
도착, 혹은 집착
다시, 들뢰즈의 편지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들뢰즈는 왜 이 소설을 설명하면서 “도착의 발생을 추적”하는 소설이라고 했을까? 로빈슨처럼, 우리 또한 인생의 허무를 견딜 수 없다. 무엇을 하든 생의 굴레와 죽음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사실 앞에 초연할 수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우울과 허무에 빠지거나 그것을 가려주는, 잊게 해주는 뭔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된다. 후자를 들뢰즈는 도착이라 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 속에서 로빈슨은 야생의 무인도에 문명의 체계와 제도를 수립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시간, 하루, 일주일을 정교화게 조직하여 사용한다. 일종의 강박증으로 보일 정도다. 아니 강박이다. 그 강박의 실천 속에서 존재의 덧없음을 잊는다. 그 대신, 그는 야생의 삶, 길들여지지 않는 삶의 순수성으로부터 멀어진다. 로빈슨이 섬 그 자체가 선사하는 신비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자신의 신체와 주어진 하루를 온전히 만끽하게 된 건 강박적으로 누적한 문명의 모든 것이 사라진 뒤였다.
온전한 삶
그래서, 우린 그가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재물과 문명의 첨단 도구로 무장한 배로의 귀환, 더 나아가 그 배를 통한 문명 세계로의 귀환을 거부한 것을, 최소한 이해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그 승선은, 승선과 항해는, 그리고 항해 끝에 다다를 고향에서의 삶은 강박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게 주어진 여분의 삶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십 대였던 주인공은 오십 대가 되었다. 그 시간은 문명화된 사회였다면 뭔가를 누적시켜 성과와 성취로, 업적으로 보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그 움켜쥔 것을 지켜내는 시간에 불과하리라. 무인도에서 30여 년을 보낸 로빈슨이 깨달은 것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선택했으리라. 죽는 순간까지 나를 느끼고, 인생과 자연이 주는 신비를 오롯이 느끼며 살기로. 그 기쁨을 때 묻지 않은 한 영혼에게 가르쳐주며 남은 생을 살아가기로.
물론, 우린 이 지점에서 하나의 불가능함과 만난다. 우리는 그렇게 살기에, 심지어 나 같은 이조차도 너무 많은 걸 손에 쥐고 있으니 말이다. 이 때문일까? 나 같은 나이 든 사내들이 <나는 자연인이다.>를 열심히 보는 건,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이 방송의 재방률이 가장 높은 건.
사족
미셸 투르니에는 소르본 대학에서 푸코, 들뢰즈 등과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철학 교수가 목표였다고. 그러나 그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독일에서 철학을 더 공부한 뒤, 스물다섯에 시험에 응시했는데 꼴찌를 했다고. 그러나 사람 인생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이후 그는 독일 문학 번역가, 유럽 제1방송의 음악 프로그램 PD, 플롱이라는 출판사에서 무려 십 년 간 문학부장으로 일하게 된다. 이후, 소설 습작을 거듭하다가, 1962년에 이 소설 집필을 시작하고, 1967년 9월 2일에서야 세상에 선보인다. 1950년에 시험에 실패한 뒤 무려 17년이 지나서야, 여러 직업을 거친 뒤에 소설가가 된 것이다. 그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