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에서 읽은 책 141
NBA 농구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논쟁 중 하나는 G.O.A.T(Greatest Of All Time)다. 개인적으로, 이게 논쟁이 될 만한 일인가 생각하는데, 가장 위대한 선수는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기 때문이다. 수상 경력, 우승 경력, 그 우승을 모두 한 팀에서 했다는 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주저 없이 말하는 이유는 내가 NBA를 보는 동안(참고로 필자는 1992년, 첫 번째 드림팀 형성 이전인 80년대 말부터 NBA를 시청했다.) 그보다 더 우아한 선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엔 마이클 조던보다 더 높이 점프하고, 더 많은 득점을 올리고, 더 돈을 많이 버는 선수가 있지만 마이클 조던보다 우아한 선수는 없다. 만약 농구의 신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마이클 조던이다.
내게 있어 우아함은 어려운 동작을 쉬워 보이게 하는 능력이다. 남들이 이렇게 할 때 그만 오직 저렇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하킴 오라주원은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센터이고 베르바토프와 베르캄프는 최고의 스트라이커다. 그리고 메시가 호나우두보다 더 위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아함은 단순한 신체 강화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상상력이 찰나의 순간에 조우하여 만들어내는 번개 같은 순간에만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읽을 때 쾌감을 주는 글들은 우아한 글이다. 우아한 글은 어려운 내용을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하는 글이다. 정확한 생각을 적확한 단어로 전달하는 글이다. 일부러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쓰지 않고 되도록 일상적인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 글이다. 쓰는 이의 입장이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물론이요 읽는 이에 대한 배려까지 스며있는 글이다.
이런 글을 쓰려면 타고나거나 숙련자여야만 한다. 타고난 사람이 그 재능을 갈고닦아 글의 장인이 되어 쓴 글은, 당연히 우아하다. 백종현 교수님의 글은 간단한 동작으로 네 명의 수비수를 바보로 만드는, FC 바르셀로나 시절의 세르히오 부스케츠의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기술과 닮아 있다. (독자들께서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백종현 교수님의 책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부스케츠의 하이라이트도 챙겨보셔야 한다.)
들뢰즈의 철학자 시리즈- 그냥 내가 붙인 이름이다. <경험주의와 주체성>, <칸트의 비판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처럼 들뢰즈가 다른 철학자나 작가를 공부한 뒤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자기 철학을 전개해 낸 글을 난 이렇게 부른다. -를 작년부터 꾸역꾸역 읽어가다가 <칸트의 비판 철학>에 당도했는데, 읽다 보니, ‘야, 이건 칸트의 철학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다들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교양 수업 등을 통해, 혹은 요약된 글이나 영상을 통해 칸트와 그의 철학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 않나.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다고, 각 잡고 3대 비판서를 읽을 생각은 없어서, 칸트에 “관한”, 혹은 그 철학을 “다룬” 책을 몇 권 읽고 넘어가기로 했다. 하여, 그전에 읽었던 김상환 교수님의 <왜 칸트인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들인 책이 백종현 교수님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이고, 김선형 학자의 <들뢰즈와 칸트>다. 이런 식으로 들뢰즈의 철학자 시리즈를 읽기 위한 해설서, 또는 그 해설서에 도움이 될 법한 해설서들이 쌓여 있다. 그러니까 일종의 들뢰즈의 철학자 시리즈의 세트 정도 되려나.
이 책은 2017년 9월에 있었던, 칸트 전집 완간을 기념하여 열린 강연을 정리한 것이다. 그러니 그 수준이 쉬울 것이라 짐작됐다. 세 차례에 걸친 강연에 각각 백 명이 넘는 독자들이 참여했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철학 전공자일 리는 없지 않나. 그러니 백발의 노교수님은 작심하고 친절하게 강연하셨을 테고, 그 강연을 모아놓은 책도 당연히 쉬우리라 짐작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내 예상은 맞았다.
3대 비판서의 내용이야 검색하면 나오는 것이니 넘어가고, 이 책의 가장 미덕 중 하나는 다른 칸트를 다룬 철학 책뿐만 아니라 여타 다른 철학 책에서도 무심히 넘어가는 단어를 정확히 짚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독일어와 라틴어, 그리스어 등 그 어원을 찾아갈 뿐만 아니라 그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했을 때 사용한 한자어 - 교수님은 동양 철학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으시다 -를 해제하여 그 의미를 분명히 한다. 또 그 한자어가 사용된 논어와 같은 동양 철학에서의 문장을 발췌하여 그 의미의 시대적, 지리적,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간다. 이런 이유로, 딸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했다.
물론 가장 큰 미덕은 칸트는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의 입장에서, 이데아와 같은 초월적 뭔가의 상정에 기반하여 설명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칸트는 인간을 신과 닮은 존재나 신과 동물 사이에 있는 어떤 대단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동물 중 하나인 존재로 봤다. 그런데 그 동물인 인간이 자신의 욕정을 억누르고 자기 스스로 법을 세워 자율적으로, 자유로운 의지를 갖고 세상을 경험하고 범주화하고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무엇이
선인지 판단하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까지 판단하며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간다. 시간과 공간의 연속선상에서의 이 끊임없는 정진과 투쟁 속에서 스스로 바른 인간이기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율”과 “자유”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 비장미마저 느껴졌다. 자연과의 투쟁을 막 끝내고 자기 문명을 수립한 인간이 계속 인간이기 위해 해온 그 지난한 투쟁의 역사들이, 한 개인이 “나”를 인식하고 그 “나”를 더 좋은 존재,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스스로 법을 세워 자율적인 존재로, 자유로운 존재로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개혁해 나가는 과정들이 떠올랐다.
나름의 지도를 그려놓고 책을 읽고 있다. 누구와 누구, 이 책과 저 책을 읽으면 얼추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그려지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고 있다. 그렇다. “나”는 질문이다. 에밀 시오랑이 “자살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너무 늦게 자살하므로”라고 <태어났음의 불편함>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는 왜 더 살아야 하는지, 왜 삶을 더 이어가야 하는지, 궁극적으로 왜 살아야만 하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나와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결국 살아 있는 존재는 질문, 그 자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자는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나름의 수를 쓴다. 에리히 프롬이 여러 책에서 반복하여 얘기한 것처럼 누군가는 종교에, 누군가는 이념에, 누군가는 강력한 지도자에, 누군가는 무한한 소비 사회에 자신의 질문을 집어 던져 맡긴 후 확고한 답을 얻는다. 그러나 칸트의 입장에서 보면, 또 그 이후 등장한 거의 모든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행위다. 스스로 하나의 국가처럼 법을 세우고 그 법아래 나름의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세워 치열하게 투쟁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렇게 “나”라는 존재를 세워가는 것이 인간이기에, 전자의 그런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선 타락한 인간이다. 게으르고 나태한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책을 읽는 이유 하나-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의 수만큼 많을 것이다-가 여기서 나온다. 책은 “나”라는 세계의 구축이자 구성이다. 우린 저마다 세계를 구축한다. 학벌, 인맥, 집과 회사, 자동차를 비롯한 다양한 사치품, 그리고 앞서 말한 종교와 이념 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 밖의 것이 아닌 내 이성의 힘으로 나라는 존재를 구별하며 위치시키는 행위가 진정한 “구축”이다. 하여, 독서는 머릿속에, 아니, 어쩌면 나라는 존재를 위해 의식과 이성과 상상력의 집을 짓는 행위다. 그것도 가장 오래가는 집을. 때문에 책을 사고 읽는 행위는 부동산 투자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라캉의 말처럼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면, 그 속지 않는 자는 읽는 자일 것이고, 결국 읽는 자는 속지 않아서 방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황은 결국, 사람답게 사는 것은, 나답게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이냐, 궁극적으로 사람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사람은 동물과는 뭐가 달라서 그렇게 유세를 부리며 사는 것이냐, 마지막으로는, 어차피 죽을 인생인데 왜 우리는 지금 죽지 않고 남은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