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의외로 신입생은 의젓하다.

by 최영훈

입학식을 했습니다. 1월 달부터 본격적으로 입학 준비를 했죠.

입학 전에 뭘 준비를 해야 할지 모르기는 우리 세 식구 피차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은채의 어린이집 친구이자 이미 같은 초등학교에 큰 애를 보내 본 재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그 후 아내는 방과 후 학교를 신청하느라 분주했죠.


가방은 작년 가을에 미국의 은채 친할머니가 한국에 여행 오셨을 때 사온 걸 들고 다니기로 했습니다. 이런 디자인은 너 밖에 없어서 잃어버릴 염려 없으니 들고 가라고 했습니다. 은채도 가방 위쪽에 솜뭉치 같은 귀가 달려 있는 핑크색 가방을 맘에 들어 했죠. 문제는 보조 가방이었습니다. 다들 신발주머니를 사야 한다는데 도대체 뭘 사야하나. 저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야 소용없었죠. 그때는 그야말로 신발주머니는 주머니 역할만 하면 됐으니 아무거나 들고 다녔으니까요. 그러나 요즘엔 보조 가방이라고 해서 그 가방의 역할이 제법 큰 거 같았습니다.


아내는 며칠 동안 검색한 끝에 하나를 주문했죠. 어느 날 볼일을 보고 저녁에 오니 핑크색 토트백이 하나 보였습니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은채 신발주머니라고 하더군요. “야, 이거 검은색이나 회색이면 내가 들고 다녀도 되겠다.” 정말 그랬습니다. 마치 어른들의 크로스백 같더군요.



입학식 날 아침. 은채는 삼촌이 한 달 전에 사준 특별한 옷을 입고 엄마의 세팅기로 정성스럽게 머리를 했습니다. 삼촌이 사준 옷은 소공녀에나 나올법한, 영국의 사립학교 여학생을 떠올리게 하는 체크무늬 원피스였습니다.

“야. 이건 좀 오버 아냐?” 전 내심 혼자만 이렇게 요란스럽게 입고 가는 건 아닌 가 걱정했습니다.

입학식 때부터 너무 튀면 괜히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죠.

은채입학식아침.jpg 입학식 풀 세트

입학식은 새로 지은 실내 체육관에서 열렸습니다. 열시 반에 열리는 입학식엔 다들 늦지 않고 왔습니다. 주차장이 작다는 공지를 받은 터라 다들 걸어서 왔더군요. 집에서 가까운데 보내는 게 초등학교 배정의 기본이니 걸어서 오는 게 당연하겠죠.


재미있는 건 은채의 옷차림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남자 애들은 사실 무난하게 입고 왔습니다. 입학식이 끝난 후 찍은 은채네 반 단체 사진을 보면 여자 아이들은 나름 꾸미고 온 티가 역력합니다. 새내기 개강 패션의 어린이 버전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남자 아이들의 옷차림은 덤덤합니다. 대학 2학년 오빠의 개강 패션쯤 되죠. 예비역 복학생 같은 달관한 패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잔뜩 힘준 패션도 아니라는 거죠. 물론 여자아이들이나 남자아이들이나 새 옷 티가 났습니다. 이때다 싶어서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 일가친척들이 옷 한번 사주고 싶어서 명절 때만큼 지갑을 활짝 열었을 테니까요.


여학생들은 다들 핑크색 가방이었습니다. 디자인과 소재만 다를 뿐 거의 그랬죠. 개중엔 빨간색이나 노란색도 있었지만 역시 소녀에겐 핑크가 인기 있나 봅니다. 오히려 디자인과 색깔 면에서 다채로운 건 소년들의 몫입니다.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가 다르고 히어로가 다르다 보니 가방의 전면을 장식한 히어로와 캐릭터가 제 각각입니다. 또 그에 따라 가방 전체의 색깔도 달라서 다채로웠습니다.


아이들은 반 팻말을 보고 자기 반을 찾아가 앉았습니다.

체육관 입구에 이미 몇 반인지 잘 안내되어 있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우리 때와 달라진 건 그 팻말을 6학년 언니 오빠들이 들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요즘 친구들은 워낙 크다보니 그런 팻말 정도는 들고 있어도 가슴팍에 겨우 찰 정도라 선생님들도 걱정 없이 시켰던 것 같습니다. 또 6학년 선배 전원이 신입생 뒤에 반별로 앉아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이 거기 왜 앉아 있었는지는 나중에서야 알게 됐죠.


은채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의젓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어디 있나 두리번거리는 애도 거의 없었고, 교장 선생님의 축하 인사가 지루해서 몸을 비비꼬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시종일관 앞을 보고 있었고 순서에 따라 일어났다 앉았다 잘 했습니다.


제가 놀랐던 건 4학년 여학생들의 축하 인사였습니다.

마치 전문 성우나 연극배우처럼 신입생들을 반기는 인사를 두 명의 여학생이 잘 짜진 만담이나 대형 컨벤션 사회를 보듯이 자연스럽게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들은 방과 후 학교에서 동화구연을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하더군요. 어린이집 애들은 앞에 나가서 발표를 시키면 그 특유의 어조로 뚝뚝 끊어서 발표하는데 2,3년만 동화 구연을 배우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정말 아이들의 잠재력이란.


6학년 언니 오빠들은 마지막 순서로 신입생들에게 왕관을 씌워 줬습니다. 다른 학교도 이런 순서가 있나 궁금할 정도로 특이한 광경이었습니다. 신입생들은 그 자리에 앉아 있고 언니 오빠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씌워주고 퇴장하더군요. 문제는 신입생들의 엄마 아빠들이었습니다. 그 왕관 쓴 걸 찍어보겠다고 아이들 사이로 침투해서 열심히 스마트폰을 들이 댔습니다. 사회를 보던 교감 선생님이 나중에 사진 찍을 시간이 있다고 말려도 꼼짝을 안하고 말입니다. 이날 입학식에서의 유일한 옥에 티는 바로 부모들이 만들었습니다.

1학년 6반.jpg 왕관을 쓴 신입생 중 은채만 정면을 보고 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의 카메라를 찾고.

입학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반으로 가서 선생님과 인사하고 학교 안내를 받았습니다. 그 시간동안 부모들은 그 자리에 남아서 학부모 연수를 받았습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죠.


은채의 교실로 찾아갔습니다. 아내는 은채의 방과 후 학교를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층층을 오르락내리락 해서 저 혼자 은채의 교실을 찾았습니다. 은채의 교실은 아기자기 했고, 책상도 미니어처 같았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적은 터라 그 교실조차 휑하게 느껴지더군요. 출산율이 떨어지는 걸 그야말로 체감했습니다.

입학실날 1학년 6반 교실 앞에서.jpg 교실 앞에서

입학식 이후 일주일.

은채가 학교에 잘 적응하는지, 친구는 잘 사귀는지 걱정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 걱정은 그야말로 걱정이고, 은채는 그 학교가 자기 학교라는 걸 확인하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씩씩하게 다니고 있습니다. 앞뒤 좌우 친구들도 사귀고 하루 네 시간 꼭꼭 채워서 수업도 듣고, 쉬는 시간엔 화장실도 가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반에 있는 어린이집 동문도 만나러 다녔습니다. 어쩌면 은채는 부모의 걱정보다 더 빨리 자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07화은채의 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