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친구를 사귀는 법

아이들은 마음을 빨리 연다.

by 최영훈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뭘까요?

전 친구를 사귀는 문제였습니다. 요즘엔 왕따 같은 문제도 있고 하니까 말이죠.

첫 번째 어린이집에선 원장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도 어려워하던 은채는 두 번째 어린이집에서 그야말로 사회성의 잠재력이 터졌습니다. 모든 선생님은 물론이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자기 반 친구들하고도 두루두루 잘 지냈죠. 심지어 옆에 붙어 있는 막내 아기 반 애들도 잘 돌봐 주고 놀아줬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년 이상 다닌 어린이집이니 적응해서 그런 건 아닐까 의심이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의심은 새 학교에서 친구를 어떻게 사귈까하는 걱정으로 이어졌죠.


우리 어렸을 때처럼 동네에 애들이 많고 공터에만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시절이라면 새로운 친구를 어떻게 사귈 지에 대한 걱정을 아예 할 필요도 없겠죠. 그러나 요즘엔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부모들이 등하교를 책임지는 집도 많고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학교며 각종 학원으로 아이들이 바쁘니 친구와 놀 시간은 있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친구를 사귀고 놀이의 난이도도 높아질수록 우정도 깊어지니까요.

학교에 갔다 온 첫날부터 짝 이름은 뭔지, 앞뒤로 앉은 아이들의 이름은 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도 짝 이름은 알고 있더군요. 그러나 좌우 옆 분단, 앞뒤로 앉은 친구들의 이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숙제를 내줬습니다. 내일은 학교에 가면 그 친구들 이름을 알아 오라고요.


그날 저녁,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분단의 친구를 사귀었다고 했습니다. 방과 후 학교에서 친해진 친구였습니다. 방과 후 학교가 끝난 후 데리러 가야 했던 아내가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은채가 잠시 어쩔 줄 몰라 하게 됐죠. 그런데 마침 그 친구가 휴대폰이 있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고, 엄마가 온 뒤에 그 엄마가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아내가 은채를 데리러 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두 쌍의 모녀는 서로 통성명을 하고 아이들은 서로 친구가 됐습니다. 그 아이는 하영이라는 친구인데 학교와 좀 떨어진 어린이집에 다녔던 친구라 이 초등학교에는 어린이집 동문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하영이 엄마도 아이가 친구를 새로 사귈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죠. 게다가 하영이가 첫날 쉬는 시간에 그냥 엎드려 있었다고 하는 바람에 이런 걱정은 더 커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차에 방과 후 학교에서 은채와 같은 반인 걸 알고 친해졌고, 이런 해프닝을 통해 더 가까워진 것입니다. 덕분에 하영이 엄마도 한시름 덜었고 말이죠.

그 후, 은채는 하영이와 단짝이 됐습니다. 방과 후 학교도 같이 하고 저녁이면 엄마가 걱정 돼서 사준 키즈폰으로 통화도 합니다. 통화를 하면 딱히 하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뭐해?”, “저녁 뭐 먹었어?” 같은 질문과 대답이 전부인데 까르르 웃고 그럽니다. 문자도 주고받습니다.


은채는 이제 짝에 대해서도 아주 깊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편식이 심하고 자기 코딱지를 먹는 괴짜인데 의외로 조용한 친구라고 하더군요. 편식이 심한데 코딱지를 먹는 조용한 소년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요? 어찌됐든 이 친구는 은채 맘에 별로 안 드는 모양인지 거의 얘기를 안 합니다. 대신 앞에 앉은 두 명의 민서에 대해서는 종종 얘기를 하죠. 마치 영화 <러브레터>에서 이름이 똑같았던 남녀 주인공처럼 짝꿍의 이름이 똑같은 이 친구들 중 여자 친구하고도 친해졌습니다. 그 여자 민서는 은채한테 종종 “나 귀엽지?”하고 물어본다고 하더군요.

은채는 마지못해 그렇다고 대답해주는 모양입니다.


엊그제 제가 바래다 준 등굣길에선 어린이집 친구이자 동네 친구인 재하도 간만에 만났습니다. 재하는 은채만 보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고 눈도 못 마주치지만 전형적인 츤데레 스타일로 은채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해주고 저한텐 90도로 인사합니다. 은채가 초등학교 3학년부터 혼자 학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내건 조건이 재하랑 같이 가면 허락해준다는 거였죠. 우리가 만났던 날도 혼자서 학교를 갈만큼 다부지고 믿음이 가는 캐릭터죠.


어른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를 묻고 고향을 묻고 출신 학교를 묻고 명함도 교환하고, 그 뒤로 심지어 몇 번이나 밥도 먹고 술자리도 같이 해야 겨우 좀 친해지지만 아이들은 그런 절차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서로 이름을 묻고 한두 번 까르르대고 같이 방과 후 수업을 듣거나 철봉에 두 어 번 같이 매달리면 친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나와 통하는 친구인지 금방 아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짧은 순간에도 자기 마음을 활짝 열어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서로에게 알려주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이전 08화입학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