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전달자 - 로이스 로리

동해선에서 읽은 책 158

by 최영훈

선택과 위험

잘 살아보자고 한 일들이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인류와 공동체의 선택 또한 그런 경우가 있다. 이 소설 속 공동체가 택한 삶의 방식은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였다. 어찌 보면 고육지책에 가까우리라. 살아남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어느 세대, 어느 시대에선가 저질렀던 크나 큰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방법이었으리라.


난, 앞의 문단에서 “선택”과 “택”한다는 표현을 몇 차례 썼다. 그러나 이 소설 속 공동체는 선택을 배제한다. 당연히 배우자, 자녀, 직업, 거주 선택의 자유는 없다. 또 당연하게도 옷차림과 교통수단, 이동의 자유도 없다. 태어난 곳에서 자라 지정된 임무를 수행하며 살다가 늙어, “임무 해제”가 된다.


이 공동체엔, 그러니까 이 균일화되고 균질화 된 공동체엔 기억 보유자가 있다. 아무리 통제된 세상이라 해도 사람이 모여 사는 이상 법과 규칙, 그 범례 밖의 일이 생기기 마련이고 또, 이 사회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소위 원로라는 사람들이 모여 낸 아이디어가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미처 예측하지 못할 때, 인류의 역사와 철학과 예술과 기쁨과 슬픔, 사랑과 좌절 등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 기억 보유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때문에 그는 고독해야만 한다.


원형과 오마주

책의 나머지 내용은 다들 아시리라. 영화로도 나왔고 소설 또한 이십여 년 전에 나온 것이니 직간접적으로 접해들 봤으리라. 그러나 이 소설과 영화를 모르더라도 이 내용은 우리에겐 익숙하다. 혹시나 해서 이 소설을 읽으며 기시감을 불러온 영화들의 제작 년도를 살펴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 감는 새(1994), 다크시티(1998), 트루먼 쇼(1998), 매트릭스(1999), 이퀼리브리엄(2002), 이온 플럭스(2005), 빌리지(2004), 아일랜드(2005).....목록은 계속 이어진다. 은둔한 공동체, 안온한 공간에서 탈출, 인간과 영혼의 본질이 담긴 도서관, 사람다움의 조건인 선택과 위험.....


이야기의 전과 후

앞서 목록에 나온 영화들은 전후의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엔 없다. 왜 이렇게 살게 됐는지, 또 이후엔 어떻게 됐는지도 없다. 수용과 수긍의 시간, 그리고 그 종말을 다룰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이 소설처럼 만 열두 살 이후, 즉 우리나이로 치면 중학생에 들어간 직후부터 선택의 연속이다. 입시에 내몰린다. 그게 옳은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다른 삶의 가능성은 없는지 물을 새도 없이 “학원 셔틀”을 한다. 그 레인에서의 이탈은 탈선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탈선을 탈주와 혁명으로 추앙하는 이들은 무심히 그 선을 벗어난다.


그 벗어남, 그 이후에 대해선 알려하지 마라. 벗어나지 못한 사람에겐 어차피 그 삶은 해석될 수 없다. 범례와 기호는 안온해서 밖의 것을 해석할 수 없다. 그러니 이 소설의 끝도 그렇게 싹둑 잘라졌을 것이다. 그 뒤 어떻게 됐냐고? 너에게 그걸 물을 자격이 없다. 설령 알려준다고 해도, 그 삶이 어떤 삶인지 넌 해석할 능력이 없다. 작가는 그렇게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1984>, <멋진 신세계>등과 함께 디스토피아 소설의 계보에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어린 독자를 겨냥하여 써진 소설이다. 앞서 나열한 영화와 소설들을 생각하면, 이 소설은 하나의 원형으로 추앙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도, 이 현실을 벗어나보려 하지만 그 이후의 서사를 가늠할 수 없어 망설이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소설은 <포레스트검프>의 초콜릿 박스와 닮은 교훈을 주며 자녀의 학교와 새로 생긴 도서관, 맨 앞자리, 추천도서 목록에 지난 20여 년간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언덕 위에서 눈썰매를 타고 내려올 용기가 생길 때까지,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