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선에서 읽은 책 159
아즈마 히로키가 <존재론적, 우편적>을 세상에 내놨을 때, 난 아직 대학생이었다. 그의 데뷔는 이보다 전으로, 1993년, 비평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앞의 책은 1998년, <산토리 학예상, 역사부문>을 수상하기까지 했다.(그렇다. 당신이 아는 그 유명한 위스키 회사가 주는 상이다. 뭔가 폼 나지 않나? 아즈마 히로키가 21회 수상자이니 올해 47회가 된다.)
그는 이 한 방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학술과 비평의 세계에서였지만 뒤이어 들이닥친 인터넷의 물결을 타고 그의 인기는 2000년대로 이어졌고, 당시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SNS등으로 그 인기의 저변은 더 넓어졌다. 방송에도 심심치 않게 출연했고 아사히 신문의 고정 필자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대학에서 자리도 잡았다. 그런데, 이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그에게 찾아들었고, 그는 그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 채 또래 남자 서너 명과 힘을 합쳐 2010년, <겐론>을 창업한다.
“말을 통해 상상한 것은 경험을 통해 배신당합니다. 하지만 경험한 뒤에 본다면, 분명 사전에 들은 대로라는 것을 알게 돼요. 이야기를 좀 더 넓혀보면, 이 역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든가 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밖에 없죠. 말로 설득하고 논의하고 후세에 전달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중요한 것이 하나도 전달되지 않아요. 이 한계를 모르면 쓸데없는 ‘논쟁’만 하게 돼요. 이것은 현대적인 문제인 동시에 철학의 기원에도 있던 문제입니다.”, PP.143~144.
그 이후는 파란만장, 우여곡절이다. 동일본 대지진이 그다음 해 있었고, 그가 이사로 물러난 뒤에는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 십 년 동안 귀찮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다 배신을 당하기도 했고 의욕적으로 일을 벌이고 화려한 책을 만들려고 무리하다가 책은 책대로 안 팔리고 빚은 빚대로 지기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 사이, 그러니까 이 롤러코스터 같은 십 년 사이 그는 <동물화 하는 포스트 모던>, <일반의지 2.0>, <관광객의 철학>, <느슨하게 철학하기> 등의 책을 썼다는 것.
여하간, 그는 이 시기를 거쳐 겐론을 안착시키고, 방송 플랫폼인 “시라스”를 론칭시킨다. 더 중요한 건 이 혼란의 시기에도 내가 좋아하는 고쿠분 고이치로, 지바 마사야를 비롯한 문화, 예술, 학술, 문학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출판사를 통해 글을 세상에 내놨고 겐론 카페에서 강연을 하고 라이브 스트리밍 방송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작업을 일종의 2010년대의 아카이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해왔다. 이 작업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고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그는 확장과 스케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 댓글 따위를 구걸하지도 않고 팔로우 숫자나 커뮤니티의 무한 확장도 바라지 않는다. 그가 마주하고 싶은 관객은 분명하다. 지의 관객. 동시대의 철학과 문화, 예술, 담론을 함께 호흡하고 마셔줄 사람을 원하고 있다. 당연히 그들은 돈을 지불한다. 그야말로 지성의 넷플릭스다. 일본 한정, 지성의 넷플릭스.
아마 이런 사업을 하고 있는 많은 학자와 문화 전문가들이 이 책을 봤으리라 짐작한다. 아니 기대한다. 교만하지도 않고 교조적이지도 않은 채 그저 지의 무대에 지성의 향연을 올려 끊임없이 지의 관객과 소통하려는 아즈마 히로키의 시행착오를, 그의 올곧은 철학을 엿보길, 엿봤길 바란다. 테두리를, 심지어 장벽을 높게 쳐서 관객의 수준을 구분 지어 갈라 치기 하려는 콧대 높은 지성의 전당, 혹은 그 분점을 자처하는 이들도, 혹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두 하려 하고 돈만 주면 누구라도 받아주는 지의 홈쇼핑 호스트 같은 이들도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