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삶 - 알랭 바디우

의문에서 읽은 책 03

by 최영훈
“사실상,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것은-그리고 당장의 나는 그저 그를 따라갈 뿐인데-우리가 참된 삶은 얻기 위해 선입견, 인정된 관념, 맹목적인 순종, 정당화되지 못하는 관습, 무한정한 경쟁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은 오직 단 하나를 의미한다. 바로 젊은이들이 이미 뚫려 있는 길로 접어들지 않게 하는 것, 도시(국가)의 관습에 대한 순종에 간단히 바쳐지지 않게 하는 것, 그들이 무엇인가 발명할 수 있게 하며 참된 삶과 관련하여 다른 방향을 제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P.18


충분한 학습

고백하자면, 난 이 책을 아이들과 읽을 생각이었다. 십 대 아이들과 말이다. 물론 지금도 약간은 그런 생각이 있지만 이번 겨울은 아니다. 그러나 다음 겨울엔 가능하지 않을까. 3월부터, 난 아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고 또 던지려 한다. 아이들의 머릿속엔 이미 지식이 충분하다. 기하, 미적분, 대수를 풀 수 있고 조선의 모든 왕의 이름을 외우며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다른 언어로도.


종종, 이런 아이들에게 학원에서 가장 전망 좋은 - 맞은편으로 금련산과 황령산이 보인다 - 창가에 서서 동서남북을 맞춰보라고 한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서 광안리 해수욕장은 어느 쪽에 있는지 물어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당황해한다. 등지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넘어가면 바로 바다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잊고 있다. 시장의 이름도 모르고 구청장의 이름도 당연히 모른다. 어디선가 불이 나도 모른다. 모르는 건 침묵하고 궁금한 건 없다. 무지의 영역을 없애기 위해 밤낮으로 책상에 앉아 있지만 정작 모르는 것 중 정말 알아야 할 건 뭔지 모른다.


질문의 방향

철학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문학 전체가 그렇다. 심지어 문학도 그렇다. 아이들과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그랬고 앞으로 읽은 <노인과 바다>도 그렇다. 오늘 아침 <노인과 바다>에 대한 생각은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로 이어졌다. 집에 아직 있나 찾아보니 90년대 중반에 산 것이 생존해 있었다. 심지어 <반항인>도. 이 책들은 이제 <시지프 신화>와 <반항하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또 작가의 이름도 까뮈에서 카뮈로 바뀌어 여전히 팔리고 있다. 교과서와 참고서는 답을 주지만 소설과 철학, 인문학은 질문을 던진다. 소설 한 권으로도 4주를 얘기할 수 있는 이유다.


다시 바디우의 책으로 돌아가면, 이 책을 산 이유는 바디우가 말년에 십 대를 대상으로 한 강연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십 대에게 한 강연이라면 우리 동네의 십 대에게도 통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바디우 앞에 앉아 있던 십 대는 조금 더 나이가 있는 십 대였던 모양이다. 바디우는 이제 막 성인에 접어들어 청춘을 만끽할 아이들을 위해 기성세대가 만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지,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말한다.


이 책이 재미있는 소년과 소녀를 위한 조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소년과 소녀는 다른 세상을 산다. 그건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년의 삶은 아버지의 법 아래 있었다.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통과 의례가 있었고 이 통과 의례는 모든 민족과 마을에, 그리고 구전 설화에 있었다. 소년들은 이 통과 의례를 통해 어린이의 딱지를 떼고 어른이 됐다. 일 인분의 책임을 지고, 한 사회의 일원으로, 공동체를 지키는 무사로 살아갔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

현재는 그런 것이 없다. 우리도 그렇지만 저쪽도 어영부영 학교만 다니다가 성인이 된다. 그러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는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커온 친구를 만나면 그 시절 놀았던 방식으로 논다. 소재는 다르지만 형태는 같다. 모형 자동차에서 고급 승용차로, 작은 모험에서 큰 모험으로, 가상의 영웅에서 스포츠의 영웅으로, 다시 트럼프 같은 영웅으로. 나이가 들뿐 어른이 되지 못하는 소년은 사춘기 소년으로 산다. 바디우의 지적처럼 이 자본주의 사회가 원하는 남자 어른의 전형으로.


소녀들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보수적인 사회가, 남성 중심의 공동체가 그녀들에게 요구했던 이중, 삼중의 역할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오히려 소녀의 시간을 단축한 그녀들은 재빨리 철이 들어 같은 또래의 소년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미래를 설계한다. 특히 유럽에선 학력 차이가 더 심한 듯하다. 하여, 소녀들은 독립적인 여자로,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은 주체로 성장하고 살아가지만, 이 또한 자본주의 사회는 그냥 놔두질 않는다.


어린 소녀들에게 어른 흉내 내는 법을 가르쳐주고 성인의 문턱에 있는 소녀들에겐 안전하게 즐기는 법, 연애하는 법,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멋진 여자로 살아가는 법, 인테리어와 멋진 여름 여행지를 소개해 준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탈리아 여성 주간지 《라 레푸블리카 델레 돈네(La Repubblica delle Donne)》에 2년 동안 연재했던 글을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는 이런 여성들을 위한 친절한 답이 담긴 편지가 실려 있다. 그렇다. 여성 잡지에서 사회학자의 글을 실을 만큼 이 시대의 소녀들 또한 불안한 것이다.


책은 얇다. 이제 막 십 대 후반에 들어선 이들이라면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며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렸다. <유행의 시대>도, 한병철 <피로사회>와 <아름다움의 구원>도. 바우만의 두 책은 아이들과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늘 마주한 친구에게 한 챕터 읽어오라고 시켜볼까 한다.


동서남북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 중요하다. 낯선 동네에서 길을 잃었을 때, 어느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혹은 전철을 타야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황령산 정상 전망대에서 어디가 서면이고, 어디가 해운대며, 어느 섬이 영도며 오륙도인지 가려내는 것이 중요할까? 중요하다.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정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