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음조 - 한병철

의문에서 읽은 책 10

by 최영훈
“어떤 이들은 제가 너무 많이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제 책들이 반복보다는 변주곡에 가깝다는 점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P.24


자신의 피아노와 정원과 집, 그리고 꽃을 사랑하는 철학자는 여행을 싫어한다. 저자 강연은 대부분 거절당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이런 그가 큰마음먹고 참석한 포르투갈과 라이프치히에서의 강연을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소비되는 걸 거부했던 강연이 책으로 묶어 나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강연에서, 그는 정원과 꽃, 음악과 음조에 대해서 강연한다. 강연일까? 바흐와 헨델, 슈만과 슈베르트의 음악이 흐르는 동안 그는 음악과 정원, 꽃, 시와 사유에 대해 말한다. 책 뒤에 있는 큐알 코드를 통해 그 강연을 잠시 봤는데, 그건 강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낭독, 낭송을 닮았다. 독일어를 하는 한병철의 목소리는 낮았고 사전에 써진 대본을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그렇다. 그러니까 그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강연이나 강의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찾아온 이들에게 선사하는 하나의 예술적 경험이었다.


“서구 사회에서는 만성통증이 지배적입니다. 서양 사람들의 70~75퍼센트가 만성통증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늘 어딘가가 아프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어딘가에서 통증을 겪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더 이상 접촉하지 않는, 접촉이 부재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사회는 만성통증을 야기합니다.”, P.105


포르투에서의 강연은 <에로스의 종말>과 <피로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자기 착취 사회에서 타자를 만질 수도, 타자에게 만져질 수도 없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내적, 외적 고통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의 책 중에서 <아름다움의 구원>, <타자의 종말>과 함께 꼭 읽어보길 권하는 책들이다. 이 네 개의 책은 같은 주제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앞서 강연에서 말했듯이 그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 책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이 네 개의 책이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하나의 책이 다른 하나의 각주가 되고, 하나의 책이 다른 하나의 보충 설명이 된다.


시간이 없다. 불안이 일상을 잠식한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들어야 한다. 아이들은 조금만 커도 포옹을 거부한다. 뽀뽀도 싫어한다. 사내 녀석들은 더 그러하고 사춘기 딸도 그렇다고 한다. 다행히 내 딸은 안아달라고 한다. 마음이 지쳤을 때, 터무니없이 많은 수학 학원의 숙제와 다가오는 시험을 생각하며 긴장이 찾아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모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또, 잠들기 전에도 엄마에게 한참을 안겨 있다고 오고 자기 침대에서 누워서 아빠의 포옹과 굿나잇 키스를 기다린다. 그 행사가 끝나고 아빠가 불을 꺼준 뒤에야 딸은 잠이 든다.


우리는 상실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으스러질 정도로 안았던 적이 언제였나? 그렇게 안긴 적은. 어느 선사의 말처럼, 인생은 너무 짧다. 덧붙이면, 게다가, 안을 수 있는 힘이 있는 시간은 더 짧다. 딸의 투병을 겪은 뒤, 내 앞에 있는 딸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다. 물론 그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그렇다. 세상에 없던 존재의 현현, 그 눈부신 순간은 최대한 많이 보기 위해 애쓰고 있다.


“희망의 양식은 ‘아직-아님’입니다. 희망은 앞으로 도래할 것, 가능한 것, 새로운 것을 향해 열립니다.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이미 주어진 것, 이미 보여진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존의 나쁜 것을 넘어서게 하는 정신의 태도이자 정신의 기분입니다.”, P.138


희망은 “현실에 신용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게도 절망의 반대이며 심지어 나태한 낙관주의의 어깨를 밀치며 튀어나오는 것이다. 희망은, 그래서, 감정이면서도 동시에 힘이며 행동이다. 불안을 이기는 것은 근거 없는 낙관도, 좌절 뒤의 회피도 아니다. 갱신의 가능성을 믿고 반복되는 하루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이다. 저자가 인용한 에리히 프롬의 메시지도, 라캉과 들뢰즈의 반복도, 심지어 니체의 영원회귀도 어쩌면 같은 말을 하고 있는지도.


직업을 바꾼 지 아직 6개월이 안 됐다. 작년 가을엔 어떨 결에 동참한 특목고 입시 준비로 정신없었다. 겨울을 지나며 입시와 사교육을 찬찬히 뜯어봤고 전체 로드맵을 구성할 수 있었다. 지금은 조금은 안정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진지하게 책을 읽고 찬찬히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답이 없어 보이던 놈도 제법 읽어줄 만한 글을 쓰고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금세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해 못 한 책도 몇 가지 힌트를 주면 제대로 읽어 온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약간의 힌트와 숨 쉴만한 여유인지도.


아이들은 대부분의 학원에서 머리에 넣기 바쁘다. 아이들이 머리에 든 건 짜내는 순간은 내 수업뿐이다. 머리에 물꼬를 터주는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이제 조금 내 포지션에 대해서도, 아이들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정립을 하고 있다. 나와 아이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적응하며 나아지고 있다. 덕분에 책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