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에서 읽은 책 12
잘 써진 얇은 책은 진액과 같다.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단서와도 같다. 사태의 본질, 이론의 핵심, 작가의 마음 한가운데로 다가가는 열쇠를 준다. 알고자 하는 학자와 작가, 이론과 철학이 어려울수록 하나의 얇은 책은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더불어, 당연하게도 얇은 책을 세상에 내놓을 배짱이 있는 이의 글이라면 역설적이게도 그 두께를 초월하는 무거운 뭔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잡다한 지식을 요약해 놓은,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같은 책은 예외로 하자.
이 책은 사르트르의 타자 이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우선 저자가 믿음직스럽다. 사르트르의 전문가다. 사르트르 철학의 친절한 가이드 북인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의 저자다. 최근 벽돌책의 기준을 바꾼 <존재와 무>와 <변증법적 이성비판> 개정판의 번역자이며, <페스트>와 <이방인>도 번역했다. 이 외에도 레이몽 아론, 롤랑 바르트의 저서와 학술서적도 번역했다.
사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내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과 레비나스와 사르트르의 타자 이론을 정리해 놓은 서동욱의 <차이와 타자>에도 더 풍성히 담겨 있다. 그러나 훨씬 압축되어 있기에 정리하기 편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사르트르 고유의 타자론의 해설이다. 얇은 책이니 디테일하게 정리하기보다는 그 본질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얇은 책에 대한 짧은 글을 마무리하련다.
<닫힌 방>의 대사에 나오듯, 타자는 지옥이다. 사르트르의 이론을 쉽게 말하면 맞춰주자니 나를 잃게 되고 나에게 맞추자니 타자의 주체성이 상실된다. 그렇다면 둘 다를 살릴 방법을 찾거나, 나를 살리기 위해 그를 없애야 한다. 둘 다를 살릴 방법은, 사르트르에 의하면 언어뿐이다. 그러나 그 효과는 유예된다. 말이 건너간 뒤 해석의 시간이 필요하다. 첫 번째 유예다. 해석의 결과가 내가 전하려는 의미와 맞는지 대차대조 해봐야 한다. 두 번째 유예다. 들어보니 내 말을 곡해했다. 구구절절 설명한다. 세 번째 유예다. 아, 답답하다. 죽일까? 없애버릴까? 나라는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증오를 해야만 하나.
투쟁은 반복된다. 사르트르는 이걸 시선 투쟁이라고 했다. 이 투쟁의 한복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극”을 한다. <말>에서도, <구토>에서도 주인공들은 이 시선 앞에서 “연기”를 한다. <말>에서는 어린 사르트르가 할아버지와 주변 어른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영특하고 올바른 아이로 각인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기한다. 이 대목, 의외로 슬프다. <구토>에서는 이런 인간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은퇴한 뒤 유식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도서관의 모든 책을 알파벳 순을 읽는 인간이 나오고 주말에는 다른 사람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최대한 옷을 차려입고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산층의 모습이 나온다. 주인공의 구토는 그 너머의 민낯을, 민낯 이후에 덮쳐온 존재 이유의 근거 없음을 확인한 뒤였다.
여하간, 이 책은 이러한 사르트르의 타자와 시선에 관한 이론을 사르트르의 다양한 저작을 오가며 인용하여 설명한다. 아주 쉽고 간명하게 말이다. 그래서 사르트르 철학의 문고리를 막 잡으려는 사람, 그의 몇몇 문학 작품을 읽었으나 뭔가 개운함이 없었던 사람에게 간단한 설명서가 되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