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 - 파올로 코엘료

베란다에서 읽은 책 01

by 최영훈

판본을 보니 2004년쯤에 산 것 같다. 2001년 12월 1일, 1판 1쇄가 나온 책이 2004년 1월 5일엔 18쇄를 찍었다. 많이 팔릴수록 그 뒤에 찍어낼 때는 더 많이 찍어낸다는 걸 감안하면 아마 수만 권 팔리지 않았을까? 그때, 난 카피라이터 일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꿈을 향한 레일 위에 안착했다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 뒤로 이런저런 섣부른 선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 선택의 순간마다 그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연애도, 결혼도 다 그랬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재차 다짐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꿈을 잃지 말자고, 가진 꿈을 지켜나가자고, 어떤 고난이 와도 묵묵히 꿈의 여정을 헤쳐나가자고. 아직 젊었고 마라톤과 농구를 하던 시절의 나였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연금술사

4월의 테마 도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고, 함께 읽으면 좋은 책으로는 <수레바퀴 아래서>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골랐다. <데미안>에 담긴, 어찌 보면 반기독교적인 신비주의와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 <연금술사>의 기독교적인 신비주의와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여정과 만나, 서로 다른 음을 내며 아이들 마음속에 공명 되길 기대하며 골랐다.


또,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몰랐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그려보지도 못했으며, 결국엔 단 한 번도 자신이 원했던 방식대로 삶을 살지 못한 채 죽었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철저히 내면의 목소리와 계시적 음성을 따라 삶의 궤적을 이어 붙여 나간 산티아고의 서로 다른 삶이 아이들에게 짙은 질문의 그림자를 남기길 바랐다. 불행히도, 4월 말, 아이들의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데미안>만 간신히 읽어낸 애들에게, 두 책에 대한 이해는 나에 주석과 강의로 채워질 것 같다.


안달루시아에서 피라미드까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양치기 산티아고는 어느 목초지에 있던 오래된 교회에서 야영을 하던 중, 반복해서 같은 꿈을 꾼다. 한 아이가 양과 놀다가, 그 아이가 그의 손을 잡고 그를 피라미드로 안내하는 꿈이었다. 방랑을 원했고 세상을 둘러보고 싶어 신학생의 길을 버리고 양치기의 삶을 선택했지만, 그의 방랑은 이 초원에서 저 초원으로, 이 방목지에서 저 방목지로 옮겨가는 것일 뿐, 당연하게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 지방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꿈의 메시지는 모호했다. 해몽가를 자처하는 집시 여인은 그의 꿈을 명쾌히 풀어준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가서 보물을 찾아 부자가 될 것이라고. 그 꿈을 이루게 되면 자신에게 10분의 1을 달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나 양치기 소년은 속았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라니.


지도를 보자. 안달루시아 지방은 스페인의 서남부에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라나다와 세비야 등이 이 지역에 있는데, 예루살렘으로 향했던 십자군의 요란스러움에 가리어져서 그렇지, 비슷한 시기에 레콩키스타라고 불리던, 이슬람 세력의 지배로부터 땅을 되찾기 위한 대대적인 원정이 있었고, 1492년, 최후까지 버티던 그라나다를 되찾기 위한 원정이 더 있었던 곳이다.


이렇게 이슬람 세력의 영향을 받았던 건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북서쪽으로는 포르투갈과 접해 있고 남쪽은 지중해와 이어지는 말보란 해와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며 튀어나와 있는 지브롤터와 그 해협이 있다. 이 좁은 바다 건너엔 모로코의 탕헤르가 있다. 양치기가 피라미드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이 좁은 해협을 건너, 탕헤르에 와야 한다. 물론 그다음이 더 큰 문제다. 북아프리카의 큰 나라들인 알제리-리비아를 관통해야 한다. 아프리카 대륙을 서에서 동으로 횡단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횡단의 여정 대부분은 사하라 사막을 관통한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양치기가 왜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아 이집트로 향한다. 탕헤르에 가자마자 양을 팔아 번 돈을 다 도둑맞고 크리스털 가게에 취업해 다시 돈을 모으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에 합류하여, 연금술사를 찾아 영국에서 온 학자도 알게 된다. 영국 사람은 책을 통해 연금술을 배우려다가 결국엔 실존하는 연금술사를 찾아왔고, 산티아고는 그런 그를 보며 책 속에는 “자아의 신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후, 잠시 휴식차 들른 오아시스에서는 부족 간의 전쟁으로 인해 예기치 않게 더 머물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도 만나게 되며, 하늘에 매를 지켜보다 만물의 정기를 통해 오아시스가 침략당하는 환상을 보게 되어 오아시스 내의 부족의 신임도 얻게 된다. 이후, 그는 진정한 연금술사를 만나게 되고 그와 동행하며 이집트로 향한다. 그곳에서 피라미드를 발견한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았을까?


우주의 음성, 자아의 신화

소설에는 성경의 이야기가 병행되어 흐른다. 꿈을 꿨던 요셉의 이야기, 별을 보고 가장 먼저 예수의 탄생을 알았던 목동들의 이야기, 아브라함을 축복해 준 살렘의 왕 멜기세덱까지. 산티아고의 여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런 성경 속 이야기의 변형이자, 신비주의적 해석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연금술사>가 성경과는 다르게 읽히는 것은 그 내용이 우리가 어린 시절에 가졌던,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특별한 경우엔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에 간직한 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직 자신과 우주적이면서도 초월적인 음성에만 귀 기울이며 나아가는 여정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동화와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이제 막 꿈을 갖기 시작한 아이들 덕분에 다시 읽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사실, 많은 아이들이 꿈이 없다. 진로는 대체로 부모가 정해준다. 뭘 좋아하는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모른 채 십 대를 맞이하고 쏜살같이 지나가는 중학교 3년을 보내고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받쳐야 하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다. 이후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그 뒤로도 대체로 남과 같은 길을 간다. 산티아고가 막 캐러밴에 합류해 사막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하는 부분을 읽으며, 산티아고하고는 달리 남과 같은 길, 그 여정의 초입에서 자기 맘과 대화하는 시간 없이 학원과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은 잘 못 골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수레바퀴 아래서>와 비교하여 아이들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건, 참으로 잔인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어제 아내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강수연 씨가 예전에 했던 말처럼, 난 카피라이터 할 때는 돈은 없어도 가오는 있었는데, 지금은 둘 다 없어.”라고. 물론 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번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자랑할 만큼은 아니고 그저 죽고 싶지 않을 만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얼마 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라는 제목의 드라마 예고편을 보고 칼럼을 써서 보냈다. 이거, 뭔가, 싸울 상대를 잘 못 고른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투쟁해야 할 건, 내 가치를 “맥”이는 타자, 사회와 해야 할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발판 삼아 글을 몰고 나갔다.


아이들도 나름 초조하다. 초등 고학년부터 이런저런 학원에 보내진 아이들은 중2, 늦어도 중3이면 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안다. 그렇다. 애들도 안다. 물론 안 그런 녀석도 있지만 그런 녀석들이 더 많다. 애들도 바보는 아니다. 자기가 원해서 간 학원도 아니고 자기가 정한 진로도 아니지만 부모가 가라는 의대를 마음에 품고, 부모가 가라는 좋은 대학의 이름을 마음에 품고 밤 열 시까지 학원가를 순회하는 아이들 이건만, 성과가 안 나오면 부모 탓, 학원 탓 안 하고 자기 탓을 하는 녀석들이 있다. 그 녀석들에게 <연금술사>의 서사가 가당키나 할까? 마음이 복잡한 밤이다.


지금 이 글은 학원, 내 책상에서 쓰고 있다. 밤 아홉 시 십오 분, 중간고사, 직보, 즉 직전 보강을 위해 학원 이곳저곳에서 강의를 듣고 문제를 푸는 아이들이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비교과 강사인 나는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치열한 전투를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존엄함과 숭고함을 잃지 않길 바란다. 지금 이 시간, 수학 학원에 있는 딸도 자아의 신화를, 자신만의 구별된 서사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연금술사>에게 시간을 허락해 줄까. 아직도 고민 중이다.


사족-

대체로 책을 처음 붙잡는 것도, 마지막 장을 덮는 것도 베란다에서의 일이라 매거진 제목을 이리 바꾸기로 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