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프롤로그

by 최영훈

마흔이 넘어 쉰이 가까우면 너그러워질 줄 알았다.

아이를 키우면 좀 더 마음이 넓어질 줄 알았다.

쉰을 앞두고 연민과 혐오의 감정이 오갔다.


제 깐에는 여기까지 살아오는데 수월치 않아서인지 남에 삶도 녹록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아이를 키워보니 어리든 늙었든 그 순간의 삶의 무게는 그 나름 무거워서, 이고 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여긴다. 또 가끔 만나는 업계 후배들과 마주 앉아 그 속사정을 들어보면 젊으면 젊은 대로 쉽지 않다. 아직 애가 없는 신혼부부도 마냥 깨가 쏟아지는 것만은 아니고, 부모님이 아파트 해주고 차도 사줘서, 내가 보기엔 어지간히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도 자기 인생이 맘대로 안 된다고 한탄한다. 살아낸 사람에 대한 삶의 무게에 대한 이 존중이 연민의 불꽃을 유지하는 땔감이 된다.


반면 한 업을 이십 년 가까이하고, 그동안 별의별 업종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과 부대끼며 경험을 쌓다 보니 제 나름의 기준과 지식이 형성되어, 어느 위치에 다다랐거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인간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 기대에 어긋나는 사람을 보면 스멀스멀 혐오감이 피어오른다. 그렇다고 테러를 할 정도는 아니고, 그저 저 나이 먹도록, 저 위치에 이르러서 왜 저렇게 밖에 못 살고, 왜 저 정도밖에 생각을 못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연민과 혐오를 오갔던 마음도 아이가 열 살쯤 되니 연민으로 기운다. 아이의 책가방 무게가 무거워지고, 이런저런 신경 쓸게 많아지고 제 나름의 인생을 고민하며 헤쳐 나가는 걸 보다 보니 나도, 그리고 그대도 그렇게 저 어린 시절부터 나름 인생을 헤쳐 오며 살아왔구나 하는 안쓰러움이 돋는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우연히 아이의 돌잔치 영상에 덧붙일 인사말 원고를 찾았다. 영상 업자가 인사말을 써 달래서 써 주었는 데 사용은 안 했더랬다. 그리고 그날 손님들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감사 인사도 기억났다.

"물처럼 흙처럼 튀지는 않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키우겠습니다."

여기 그때의 원고를 가감 없이 옮기면서 마무리하겠다.


<아빠의 바람>

보통의 아이들처럼 자라렴.

건강하고 밝게, 어디서나 환영받는 이웃 아이처럼.

최고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그저 매일 너를 두근거리게 하는 일들을 찾아 몰입하며 살렴.

공부를 잘하려고도, 좋은 대학에 가려고도 말고

도서관에서 너를 부르는 책과 만나고 좋은 스승을 먼저 찾으렴.

아빠의 경험과 낡은 지식으로 너에 미래를 간섭하지 않을게.

아빠는 그저 늘 네가 원하고 필요할 때 곁에 있을게.

네가 말을 시작해 첫 번째 질문을 할 때부터

아빠가 늙어서 너에게 마지막 질문할 때까지

아빠는 너에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선생이 되어 줄게.

마지막으로...

평생을 살면서 너 자신을 언제나 사랑하렴.

세상에 널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은채야.

첫 생일을 축하해.

여기 와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리자.


앞으로 이어질 글은 아이의 2학년과 3학년의 일상과 단상들이다.

감염병의 습격 앞에 모든 아이들이 집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를 드문드문 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이와 종일 붙어 있으면서 삼시 세 끼를 차려준 날들이 이어졌고

그러면서 아이가 어린이에서 소녀로 커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물론 그동안 난 사십 대의 끝을 보냈다.

1학년 때의 글이 관찰 일기라면 2, 3학년의 글은 좀 다르다.

뭐가 다른지는 읽어주시는 분들이 더 잘 아실지도...

이 글들은, 이미 써 놓은 분량이 많아 매주 월수금 오전 아홉 시에서 열 시 사이에 연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