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소녀, 그 사이

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 0

by 최영훈

열 살의 딸은 사슴 같다. 가끔은 타조 같기도 하다. 나하고 다른 하체 비율을 볼 때마다 신기하다.

아침마다 잠이 덜 깬 얼굴을 긴 머리칼로 푹 덮은 채 방에서 나오는 딸을 보고 있으면 훌쩍 컸다는 게 실감 난다. 오월쯤부터 입기 시작하는 반바지 잠옷은 다른 인종 같은 긴 다리를 여과 없이 보여주며 평범한 아저씨의, 그저 그런 길이의 아빠 다리를 더욱 짧아 보이게 만든다. 우린 애한테 도대체 뭘 먹인 걸까?


아침 뉴스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휘청거리며 다가와 잠이 덜 깬 얼굴로 폭 안기며 어리광을 피우는 딸을 보면 묘한 부조화를 느낀다. 이미 내 품의 경계를 한참 벗어난 팔다리에도 불구하고 은채는 아직 아기다. “야. 오버 사이즈 베이비다.”하고 놀려도 심드렁하다. 자기가 원할 때까지 안겨 있다가 미끄러지듯 벗어나며 한마디 한다. “아빠, 물.”


아이와 소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사이를 오간다.

작년(2020년), 개학이 연기됐을 때, 은채와 몇 개월을 붙어 있으면서 더 느꼈다. 방금 전까지 엄마가 쓰던 스마트 폰으로, 엄마가 깔아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희한한 셀카를 잔뜩 찍다가 갑자기 자기 방에 들어가 자잘한 인형들과 한참 소인국 놀이를 한다. 바비 인형 몇 개를 사촌 동생들에게 보내준 뒤, 인형을 졸업한 줄 알았더니 봉제 인형 몇 개를 다시 끼고 잔다. 신생아 때부터 곁을 지키던 은순이는 지금도 여행 갈 때 가장 먼저 챙긴다. 책상에 앉아 로알드 달을 진지하게 읽다가 디즈니 만화에 푹 빠진다. 엄마가 출근할 때마다 “잘 갔다 와요. 빨리 와요.” 혀 짧은 소리로 애교를 부리며 엄마한테 폭 안겨 있는데 이미 키는 엄마 가슴을 넘었다.


아직 무채색을 고집하진 않는다. 무채색으로의 진입이 곧 소녀로의 진입일지도.

이 혼란스러운 진폭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여주며 은채는 점점 소녀가 되어간다.


사진은 2020년, 2월 말, 1학년 종업식 날 찍은 사진이다.

저 때는 저 날 이후로 학교에 못 가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다.

감염병의 날들이 2년이나 이어질 줄 상상도 못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