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이 두려운 아빠, 열 살이 신나는 딸. 01
취향은 변한다. 은채는 여섯 살 때까지 감기에 걸리면 죽을 먹고 싶어 했지만 일곱 살 때부터는 죽을 입에도 안 댔다. 어린이집 아침 간식으로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집 메인 메뉴 중 하나인 기름기 많은 볶음밥은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가 “갓밥”이라는 부르는 갓 지은 흰쌀밥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은채가 말하길 갓밥은 명란젓이든, 김이든, 김치든, 어떤 반찬을 곁들여도 심지어 그냥 밥주걱에 붙어 있는 맨 밥을 먹어도 맛있다고 한다.
일곱 살 때부터 김치가 살짝 들어간 볶음밥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2학년쯤 되니까 신라면도 먹고, 김치가 제법 많이 들어간 김치볶음밥도 좋아하기 시작했다. 처가와는 달리 나에겐 매운 DNA가 있어서 은채도 조만간 짬뽕을 먹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날이 멀지 않았다. 매운 음식은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하는 자기들끼리의 척도다. 누가 벌써 짬뽕을 먹었다면 그건 다른 친구보다 더 언니야, 오빠야가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 종종 이런 대화를 하곤 한다.
“아빠, 하영이는 짬뽕도 먹는데.”
“야. 넌 선지 해장국에 순대국밥도 먹잖아. 넌 가짓수로는 이미 어른 입맛이야.”
"누가 토한 거 같아." 어느 아침, 장인이 만들어서 보내 준 전복죽을 데워서 막 먹으려 할 때 딸이 무심코 이런 말을 했다. 물론 딸의 말도 영 틀린 건 아니다. 장인, 그러니까 은채 외할아버지의 전복죽은 한 숟가락 뜰 때마다 전복이 건져질 정도로 정성을 들여 만드시지만 전복의 내장까지 넣어서 그 색깔이 그렇게 식욕을 당기는 색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 이 말을 듣고 눈으로 심한 욕을 십 초 정도 한 뒤에 차분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사람 먹는 거 갖고 그런 얘기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네가 이때까지 왜 전복죽을 싫어하는지 얘기 안 하다가 지금에서야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가식이야. 가식이 뭔지 알지? 그런 가식을 벌써부터 떨 필요 없어. 어제도 할아버지가 맛있게 먹으라고 전화하셨을 때 너는 "네"라고 말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잖아.
애초에 네가 몇 년 전부터 모든 죽을 먹기 싫어했을 때부터 "누가 토한 것 같아서 못 먹겠어요."라고 말했으면 엄마가 감전동에서 전복죽을 잔뜩 받아올 때마다 아빠가 다 먹을 필요도, 그러다 결국 남겨서 아빠가 엄마한테 욕먹을 일도 없잖아.
그런 가식은 좀 커서 떨어도 돼. 물론 아빠 같은 사람은 그런 가식을 보면서, 예쁜 게 가식까지 떤다고, 재수 없다고 느끼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생활 잘한다고 하긴 해. 그러나 지금부터 그럴 필요 없어. 오늘 저녁에 엄마 퇴근하면 왜 죽을 먹기 싫어하는지 말하고, 나중에 할아버지가 전복죽 싸줄까 물어보면 누가 토한 거 같아서 전 못 먹겠어요,라고 정확하게 얘기해. 할아버지 시간 낭비, 돈 낭비하게 하지 말고."
난 음식에 예민하지 않다. 20여 년 전 부산에 처음 왔을 때, 학원 강사를 한 1년 했다. 혼자 살면, 지금도 그렇겠지만, 식사는 끼니를 때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점심은 종종 끓인 밥과 김치 하나로 해결하곤 했다. 차마 말하기도 민망한 적은 월급을 받는 날에는 근처 시장에서 7천 원짜리 족발과 작은 국화주 한 병을 마시는 게 내 유일한 사치였다. 오후 늦게야 학원에 출근했으니 저녁 또한 애매했다. 학원 앞 노점상에서 어묵 꼬치 몇 개 먹는 걸로 때우곤 했다. 보통은 가난했던 시절, 힘들었던 시절 먹었던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지만 난 여전히 둘 다 좋아한다.
물론 수제비는 꽤 오랫동안 안 먹었다. 내 어린 시절의 가난은 일부러 잊고 지냈을 만큼 난폭했기 때문이다. 나름 험하게 살았다는 동료 감독도, 서로 알고 지낸 지 십오 년 만에 처음으로 내 어린 시절의 가난에 대해 듣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겉보기에는 그런 어린 시절이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일 테고, 내가 말한 가난의 기억이 지금의 내 모습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음울한 풍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나 또한 그 풍경을 다시 꺼내보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수제비를 먹지 않았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감독이 두현 저수지 옆에 자리 잡은, 울산의 유명 맛 집인 얼큰 황태 수제비를 사준 이후론 다시 먹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씨처럼 “이따다끼마스”, 즉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하고 먹는 사람을 좋아한다. 또 같은 이유로 음식을 앞에 두고 불평하는 사람을 혐오하고 말이다. 집에서 먹든, 식당에서 먹든 음식이 일단 나왔으면 불평 없이 먹는 게 좋다. 그리고 대체로 한국의 식당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 그 지역민의 입맛에 맞춰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 지금 그 음식이 맛이 없다는 건 당신이 지금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있거나, 당신의 입맛이 변했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그러니 맛이 없다고 느끼면 일어나 나가면 되고,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거나, 그런 동네로 이사를 가면 된다. 참을 만하면 앉아서 먹으면 되고.
앉아서 목구멍으로 음식을 넘기면서 그 넘어가는 음식에 대해 계속 불평하는 것은 사리 분별하고 그 분별을 바탕으로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할 만한 일은 아니다. 자기 판단으로 그 음식이 맛이 없다고 느끼면 자기 판단에 의해 숟가락 놓고 나가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난 은채가 어린이집 다닐 무렵부터 밥투정을 하거나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면 그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 차라리 다른 음식을 주거나 굶으라고 했다.
물로 저 일본의 “이따다끼마쓰”가 그야말로 영혼 없는 인사치레에 불과하다면, 그건 음식 먹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내뱉는 음식 불평만큼 나쁠 수도 있다. 이런 입에 발린 소리는 일종의 사회적 행위이자 약간의 가식적인 표현이니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저 인사치레를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서야 익숙해졌다. 그전까지, 어머닌 내가 어린 시절부터 남에 집 음식을 먹으면 맛이 있다는 소리를 잘 안 한다고 걱정하셨다. 내가 남에 집 음식을 먹고 빈말이라도 맛있다는 소리를 못했던 건, 가난한 살림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훌륭한 음식 솜씨 때문이었다. 어머닌 대파와 간장, 식초만으로도 희한한 반찬 하나를 만드셨고, 교회 잔치가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호출되는 집사였다. 그러니 교회나 친구, 이웃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먹을 때마다 여간해선 빈말이라도 맛있다는 소리를 잘 못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런 기술이라면 기술이 늘어서 제법 뻔뻔하게 빈말을 하게 됐지만.
내 주변엔 애교가 많거나 가식적인 사람이 없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 왔고, 또 잘하는 사람인 아내도, 아마도 밖에서는 그런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집에선 담백하다. 나와 인연이 있는 광고업계나 관련 업계 사람들, 그 지인들 또한 일의 성격과 내용과는 달리 사적으로 만나면 비교적 담백하다. 최소한 부산, 울산, 경남 동네 사람들은 그렇다.
딸의 애교를 대부분 받아주지만 혀 짧은 소리에 얄팍한 잔머리를 얹으면 정색을 하고 지적한다. 사실을 부풀려 왜곡하거나 감정의 진위를 알 수 없는 표현과 말도 지적한다. 인위적인 표현을 상투적으로, 일상적으로 하다보면 진짜 감정의 표현과 혼동을 일으킬 수 있고, 그러다 결국 두 개의 경계가 모호해져서 자신과 타자, 모두 속이게 되는 데까지 이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섹스할 때마다 거짓 오르가슴 연기로 파트너를 속이는 일이 반복되어 결국엔 가짜 절정을 진짜처럼 착각해서 정작 진짜 오르가슴은 뭔지 모르고 평생 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불행하게도 그런 섹스는 옷을 다 벗고 하는 연극이다. 연극은 옷을 입고 문 밖에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런 안팎으로 이어지는 연극적인 삶은, 어빙 고프만의 말을 빌리면, 그야말로 모든 인생의 순간이 자아 연출의 무대가 되어 버린 삶이다.
안 그래도 딸은 피곤한 스타일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의 모든 딸들은 피곤하게 살고 있고, 살아간다. 은채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딸들이 싫은 건 싫다고 솔직히 말하는 시기는 의외로 짧다. 난 그 시간들이 좀 더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 어른이 돼서도 자기감정이나 의견을 담담하게 말하고, 그것이 표현의 정직함, 오해 없는 표현임을 딸들과 그 딸들이 마주할 모든 타자들이 받아들였으면 한다. 피곤하게 수사학과 기호학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은 나 같은 광고장이나 정치꾼 같은 이들만으로도 넘쳐나니까. (2020/0309)
좋아하는 음식만 얘기하던 딸은, 최근 들어 그저 그런 음식과 별로인 음식도 솔직하게 얘기한다. 덕분에 최근에 들어서야 족발과 보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가족이라도 말을 안 하면 모른다. 말 안 해도 척하면 착 알아주길 바라면 차라리 개를 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