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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이서 Jun 25. 2023

지금 우리의 건축교육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너희가 게맛을 알아?”라는 광고가 한때 유행했던 적이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뷰를 하고 나서 문득 이 광고가 떠올랐다.  “너희가 건축설계를 알아?” 라는 문구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머리를 탁 치듯 떠오른 이 광고문구의 발단은  ’너희가 몰라서 그러는데’라는 저쪽 상대를 내리까는 의미에서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건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아니 이정도로?? 놀랄 만큼  건축설계 분야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대중의 정보가 정말 부족하구나‘ 라는 것에서 떠올랐다는 점이다.


대학의 전공 중에서 4년제가 아닌 과가 의과대학 외에 건축학과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의대 6년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도 건축설계전공이 5년인 것은 거의 모른다. 대학교의 정규 교육시간이 길게 책정된다는 것은 그만큼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건축학과는 전통적으로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가 있었고, 보통 건축학과는 설계전공(5년) ,건축공학과(4년, 대부분 시공전공)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학과 커리큘럼은 각 전공분야에 맞춰 집중되어서 짜인다. 둘 다 있는 대학교가 있고, 5년제인증이면서  '건축공학과'라는  이름으로만 있는 학교도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학과명으로만은 그 구분을 하긴 어렵다.


한국에서 건축설계전공에 의미를 둔 건축학과가 세계건축가연맹 UIA 기준으로 건축학인증제를 바탕으로 전환되어 5년제로 운영 된 것이 16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종합대학교에서 건축설계전공을 배우는 학과는 5년제라고 보면 된다. 이 이후 건축사자격제도도 5년제 인증이 된 건축학과 졸업생이 아니면 건축사시험  자체를 볼 수 없게 되어있다. 5년제 대학 졸업 후 건축사 시험을 보려면 실무경력이 설계사무소에서 3년이 있어야 한다.   5년제 건축학과 졸업생이 아닌 경우 인증제에서 인정하는 건축전문대학원을 추가적으로 나와야 건축사시험을 볼 자격을 가질 수 있다.


국내 대학의 건축학과 수업 장면 (전이서 건축가 제공)


건축설계는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분야


이렇듯 건축설계전공에 대해 5년제의 교육과 설계사무소에서 3년이라는 실무수련기간을 부여하는 이유는 이 분야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무를 바탕으로 현 건축교육을 바라보면 그 5년간의 교육, 3년의 수련기간도 사실상 짧아 보인다. 제대로 된 건축물이 하나 완성되려면 건축설계자에게 요구되는 지식이며 능력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건축학과 학생들은 기절할 노릇일 것이다. 5년도 긴데 더해야 한다고요? 할 것이다. 물론 다른 학과전공자들도 대학에서 전공을 했다고 그 분야실무에서 필요한 지식을 다 알고 사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전공자로서 필요한 기본지식은 배우고 나오는 것이 대학교육임에 실무에서 필요로 하는 수준과 대학교육의 수준을 조율하는 것은 끊임없이  수정 보완되어야 할 대학교육의 과제임에는 틀림없다.


건축가는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직업이다


건축가는 그야말로 그것이 자신의 사무실을 내었건, 직원으로 있건 간에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직업이다. 특히나 한국에서 건축설계를 하며 산다는 것은 ‘한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얽혀있는 다방면의 지식을 요구한다. 가끔 '이 많은 것을 아무 문제없이 해결할 사람은 신밖에 없겠다.' 싶을 정도로. 알아야 할 것이 진짜 많다.


갖추어야 하는 능력으로 건축설계능력은 기본이고 관계된 다방면의 업역, 구조, 기계, 전기, 소방, 통신, 조명 , 각종재료 등등 대한 기술적 지식은 물론이요 여기에 건축법 뿐만 아니라 관련된 수십가지의 법적 해석과 그에 따른 적정한 설계를 도출해내어야 한다. 거기에 법적으로 등록된 책임 건축사이면 법적책임도 피할 수 없다. 여러 분야가 총체적으로 합체되어야 완성되는 건축설계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조합과 그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지점은 불가피하다. 이것을 잘 작동하게 미리 조율하고 계획하여 건축 설계에 반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각 분야별 전문설계자들에게 건축설계 의도에 맞게 각 영역별로 일을 뿌려야(분배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취합하여 총체적으로 감독해서 전체 설계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문제가 발생되었을 때 잘 해결될 수 있게 판단해서 결정하는 역할이 건축사의 몫이다. 즉 각 분야의 코디네이팅은 건축사의 주 업무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하는 업무이다.


여기에 시공시 따르는 시공성을 예측하여 설계하여야 한다. 현재 산업에서 통용되는 재료의 수준과 시공기술을 감안해 설계해야하고, 예산에 맞게 그 비용 배분 및 예상 부가가치의 상황 등 너무도 많은 분야의 식견을 가지고 설계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적어도 기본만이라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한 교육을 받는 일은 5년도 짧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고도화된 사회로 갈수록 요구되는 각종 안전과 건물 성능의 확장으로 건축설계는 더욱더 복잡해졌다. 어느 수준이상을 맞추기 위해 친환경설계, 장애인 설계 등 각종 인증제도가 생겼고, 그에 준하는 건축설계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기획하고 설계하여 제대로 된 시공을 할 수 있게 코디네이팅하고, 건축언어인 도면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설계의 현주소이다. 이것은 건축사가 해야 하는 실무적으로 필요한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건축설계분야를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건축설계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를 시작도 안했다.


건축하기란 농사를 짓는 일과 같더라


한 10년 전쯤인가 건축계에서 일한지 한 20년 정도 지난 때였다.’건축하기‘란 농사를 짓는 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의 특성을 보고 그곳에서 거둘 필요 식량을 예상해서 그에 맞게 오랫동안 땅을 일구고 한 알 한 알 정성을 다해 씨앗을 심고 가꾸고, 온갖 기후변화며 계절변화를 견디는 시간의 세례를 받아야 온전히 결실을 맺는 농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받았다. 근대의 산업화와 함께 성장한 분야가 현대건축인데 이 아이러니한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식주의 한 축을 담당하는 건축은 세상이 바뀌었어도 전통적인 분야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건축설계는 중력을 이기는 물리적 구축과 갖은 기후환경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고 지어진 후에도 오래도록 세월을 견디고,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담는 공간만들기라는 점에서 세상이 달라져도 그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 안에서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야 하고, 구조적으로 안전해야 하고, 그 규모가 인간이 만드는 피조물 중에 가장 크고 돈이 아주 많이 든다. 이 본질을 훌쩍 뛰어 넘어 가벼이 다른 방법으로 갈아타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래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 실제 적용이 될 때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건축가는 끊임없이 지금까지 상용되어 온 공간보다 더 나은 공간을 찾아서 건축적 혜안을 연구하여 제안하고, 현존하는 산업분야의 기술력을 재고하여 건축적 구축에 적용할 뿐 아니라 더 나은 미래에 필요한 산업생산을 유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의 건축적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간다. 이것이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운 공간과 피조물의 생성이어야 한다. 하나하나 만들어진 건축물은 도시를 이루기에 그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전통적이며 기초적인 건축의 본질을 익히고, 건축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분야의 기술을 배우고, 사회적 결핍을 적시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인간의 삶과 지구환경까지 고려한 미래에 필요한 건축해법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되는 것이 지금의 건축설계이다.



국내 대학의 건축학과 수업( 크리틱) 장면 (전이서 건축가 제공)


건축교육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수용해 줄 건축교육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아주 전통적인 기본교육에서부터 현재의  AI (인공지능)까지 아우르는 교육이 요구되고 있다. 거기다 세분화되고 얽혀있는 분야의 기술적 지식도 건축설계에 응용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대학교육이란 현재 이 시점을 넘어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방식의 탐구가 되어야 한다. 건축설계는 예전부터 있어왔던 건축구축의 기본교육에, AI가 등장한 만큼의 시대가 요구하는 기술교육에,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가의 역할 교육 등 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기간도, 시간도, 많이 필요하다. 이렇게 양성된 전문가가 건축설계전문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과연 한국은 전문가 교육만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한국의 건축설계분야는 거대한 불균형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학과는 5년 내내 설계수업을 위해 잠 못 자고 준비해야 하는 학과로 유명하다. 아마도 학교 다니는 내내 가장 많이 밤샘하는 학과가 아닐까 한다. 대학 5년, 실무 3년을 채우고 건축사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어 시험을 보게 되어도 합격률 5~8% 내에 들어야 건축사가 될 수 있는 현실적 상황에 놓인다.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설계수준은 더더욱 상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렇게 어렵게 5년을 공부하고 전문적인 실무수련기간이 있는 건축설계에 대해서 사회적 인정과 그 대가는 터무니없이 낮다는 사실이다. 전문교육과 사회적 요구수준과 사회가 주는 대가의 불균형이 너무도 큰 분야가 현재의 한국 건축설계분야이다.


건축과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로 가면 박봉에 시달리고, 국가가 인정하는 건축사가 되어도 설계비가 너무 낮아서 사는 일이 묘연하다. 결국  전공을 살려 설계사무소 가는 것을 기피하는 학과가 되었다. 5년의 건축학인증제를 거친 건축학과 학생들은 매년 다수가 졸업한다. 그러나 이들이 전문필드로 이어지질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전공졸업자가 건축설계의 취업을 기피하니 현장에선 전문 인력을 구하기가 어렵다.


건축계의 불균형은 위기의 수준이다.


그 불균형이 어디서 오는가? 보면 턱없이 낮은 설계비에 있다. 혹자는 “낮은 설계비에 맞추어서 설계를 하면 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 그러면 제대로 된 건물이 지어질 수 없다. 저가설계, 그러기에 황당하게 무너지는 건물, 창 하나 제대로 안 뚫린 환경 열악한 건물이 등장하고, 도시를 망치는 건물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건축설계는 그 본질의 특성상 아주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한명의 전문가가 만들어지는 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드는 분야이다.


건축설계는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책임건축사와 세분화된 전문가들, 그 밑으로 대학에서 전문교육을 받은 다수의 인원이 모여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만들어진다. 즉 전문가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노동집약형 산업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 산업에 적정한 사회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 현재 그나마 낫다는 공공건축설계비 요율도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설계비 요율을 최근 인건비를 감안해서 실비정액가산식으로 대치하면 이윤은 고사하고 기술료도 제로로 놓고, 프로젝트 해당 인원은 1/2로 줄이고, 일하는 시간은 절반 이하로 줄여야 겨우 맞는 정도의 설계비이다. 여기에 시대적으로 요구되는 건축설계의 질적 수준은 예전보다 더 세분화된 전문 인력과 두 배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불균형 하에서 건축대학 교육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 막연히 너희는 좋은 공간을 만드는데 충실해야 하고 이제보다 더 살만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돈생각하지말고 일하고, 공부하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최저의 삶도 보장되지 않는 전문가인데 사회는 계속 더 진보한  건축을 요구한다. 그간 오랜 세월 그 불합리함을 건축계가 자신의 살을 깎아가며 그 불균형을 메꿔 왔다면 이제는 더 이상 대체할 수 없는 위기의 시점에 도달한 것이다. 이 불균형의 폐해를 결국 누가 가져갈까? 심각히 고민할 시점이다.


준비된 전문인력이 세상에 온전히 정착하게 할 대중의시선과 인정이 필요한 때


이 터무니없이 낮은 설계비는 어디에 기인할까? 사회가 인정하는 설계비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일반인들이 좋은 건물이 하나 만들어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의 준비와 잘 교육된 전문 인력이 동원된 건축설계가 선행되어야만 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된 건축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더 이상 물량으로 때려넣어 짓는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개발도상국 때에 만들어진 건물은 우리 도시에 이미 넘치게 켭켭이 쌓여있다. 지금까지 이어왔던 설계비는 그때 수준에 맞춰진 설계비 인 것이다. 이제는 그 시절에 세워진 건물을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할 시점이다. 아파트 재건축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도시에 그간 만들어졌던 질 떨어진 낙후된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재건축할 때 인 것이다. 이제 한국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논하는 상향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질은 좋은 공간, 좋은 건축이 있을 때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모인 건축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사는 도시가 된다.


‘너희가 게맛을 알아?’ 하는 것처럼, 일반인들이 ‘좋은 건축의 맛’을 알 때가 되었다. 아니 지났다. 좋은 건축의 경험을 만들어 줄 건축전문인력은 준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준비된 전문인력이 제대로 세상에 정착하게 해줄 대중의 시선과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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