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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이서 Sep 01. 2024

삶에는 늘 ‘방황의 마음’이 존재한다.

삶에는 늘 ’방황성‘ 이라 해야 할까? ‘방황의 성향, 방황의 마음이 존재한다.

이것은 ‘불안’의 마음과는 다른 마음이다. 해야 할 것을 머릿속에 나열하고 그것을 진행하고 마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데도, 해야 할 일들 앞에서 방황하며 주춤하고 서성거리고 그 시작으로 들어가는 시간까지 꽤 걸린다.


이것은 해야 할 일상이 복잡해서이기도 하고, 삶에서의 역할이 적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이를테면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업 전에 엄마이고, 부모님의 자식이기도 하고, 직업에 따른 건축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니 회사운영,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 그리고 이제는 건물을 짓고 나니 건물관리까지 하고 있으니 여러 역할만큼이라 해야 할 일은 자질구레해도 늘 많다. 사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크게 작게 여러 역할을 하며 산다.


물론 정리하면 삶은 단순해질질 것이나 한국에서 건축가로 사는 삶은 대부분 나와 비슷하다. 가족과 등지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곤 (보통 이렇기는 쉽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등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이 있었겠는가, 아니면 결핍으로 다른 불편함을 감수하는 삶이었을 수 있다. ) 가족과 관계된 삶, 직업인으로서의 삶, 그것이 직장생활이던, 자영업이던 직업인으로서의 삶, 적어도 건축가라는 타이틀에 맞게 추구하는 창작과 현실의 균형추에서 언제든 기울어질 수 있는 시소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삶, 후학을 이끄는 삶, 전문가로서 사회적 역할, 그리고 내 회사를 지탱하는 삶, 이모 든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매우 극소수 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에서 ‘방황하는 마음’은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일 수 있다. 머리로는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일상도 하나씩 보면, 하루하루 , 한순간한순간 당면한 것들을 해결 해나면 되는 작은 일들이라는 사실을, 머리는 잘 알고 있다. 특별히 마음 다스리는 책을 찾아 읽지 않아도, 인생을 잘 알는 멘토나 상담사를 만나지 않아도 이 나이가 되면 너무도 당연하게 잘 아는 논리이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방황하는 마음을 늘 만난다. 때로는 죽을 것 같이 하기 싫은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머릿속에서는 잘 될 것 같은데, 막상 컴퓨터르 마주하면 세상 이렇게 제대로 안되는 인간이 또있을까? 그게 나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처리할 수 있는 머리의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넘어서면 그것이 매우 강력한 상처로 뇌에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들어 3년동안 내 집 짓기를 하면서 중요한 결정 앞에 매우 다방면의 고려와 무거운 판단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렸었다. 그 무게에 짓눌려 뇌가 과부하가 결러 그 이후에는 사소하게 할 일에도 실제량보다 무게가 더 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흔적이 뇌에 한번 긁히고 나면 그것으로부터 회복되는데 사실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진다는 사실도, 언제 나는 이 무게에서 내가 자유로와 질 수 있을까? 내게 물어본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 많은 순간 무너지지 않으려  질문하고 답을 내본다.


정신적인 것이 힘든 것과 동시에 이 깨달음도 값진 것임을 알기게 아침이면(사실은 수시로) ’ 값진 시간‘을 주심에 감사하는 기도도 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기도나 감사의 마음도 ‘흔들리는 마음’을  피해 가기는 참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나이가 들고 보니 이것이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유전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늘도 난 ’ 방황하는 나‘를 여전히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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