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짓기를 시작한다면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이 확 와닿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치 두 개의 시간이 나한테 달려오는 느낌이랄까, 두 개의 시간속도나 개념은 다른데 듀얼코르로 동시에 마구 달려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철도의 멈추지 않는 레일의 기차라면
그 사이사이 수많은 의미 있는 결정을 해야만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의 정점을 찍어주는 일을 무수히 만날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시간의식을 여러 순간 만난다. 내 집을 지을 때만큼 시간의식을 많이 느낄까? 싶다.
부랴부랴, 아슬아슬
건축은 법적인 여러 조항들의 규정 안에 있다. 그 규모와 용도에 따라 체크해야 할 법적조항이 다르다. 제2종 주거지에 짓는 작은 근린생활시설 건물이어도 체크해야 할 법적 조항은 상당히 많다. (내 건물은 제2종 주거지역의 근린생활시설 건축이었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건축법이 바뀌는 시점에 허가시점이 걸리면 그야말로 정신 바짝 차리고 허가 준비를 해야 한다. 허가 조건에 따라 설계는 물론, 착공, 준공시점의 허가 결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번 내 건물을 허가를 넣는 시점에 방화창호 규정인 신설되었다. 허가시점(더 정확히는 허가제출시점)이 그 바뀌는 실효 법령일자 전에 제출되어야 한다는 것이 걸렸다. 나의 경우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해서 허가를 접수했다. 건축가라고 잘 알아도 슬라이딩 문 닫고 들어가기였었다는 사실이다.
나무꾼집의 도낏자루가 썩고, 주방장집의 칼날이 무디다고
나의 건물을 짓는 설계의 시작에서 가졌던 신중함과는 달리, 허가 시점에서는 그 어떤 프로젝트 보다 설계를 가장 성글게 하고 허가를 넣었다. 실제 의뢰된 프로젝트를 할 때는 다른 여느 건축사무소보다 철저하게, 구석구석 디테일도 다 생각해서 의도하는 도면량도 정말 많이 준비해서 허가를 들어간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정작 내 건물을 설계할 때는 다른 프로젝트에 치여서 제대로 할 시간도 부족했고, 잘 안다고 생각한 탓이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인생에서 가장 엉성한 상태로 허가를 넣게 되었다. 허가시점이 개정법의 발효되는 시점이 걸린 탓에 일단 부족하더래도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컸다. 모자라는 것은 실시설계 때 보완하면 된다고 내 자신을 믿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사실 다른 프로젝트에서는 거의 이런 상황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지금 다시 생각해 보아도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서 내 건물이 우선순위가 되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이렇듯 건축허가접수를 위해 마음이 바빠지는 경험을 내집짓기를 하는 사람은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앞선 과정인 대지를 결정하는 때도 시간의 약자였다.
부동산을 사는 일은 거대한 초조함을 만나는 일이다. 내가 사려는 땅이 제대로 내 열망을 채워줄 바탕이 되어줄지, 마음에 드는 땅을 파려는 사람이 마음을 바꾸지는 않을지, 사실 고심 끝에 적정가격이다 싶어 살게요. 할 때 원주인인 매도인이 안 판다고 마음을 바꾸는 일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담보로 딜을 하는 과정이어서 이때부터 시간의 약자가 된다. 좀더 고민하고 싶어도, 기다려 주지 않을 까봐 자신의 결정을 뒷받침할 근거를 밤을 새워서 모아야 한다. 시세가격이 오를까 봐 보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에 시간과 날짜를 계속 쳐다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더.
대출에 있어서는 완벽한 시간의 약자가 된다.
건물을 지을 때 모두 내 돈을 써서 하긴 어렵다. 당연히 대출이 발생한다. 때로는 사업상 대출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매우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대출 없이 건물을 짓기는 어렵다. 대출은 곧 이자율과 관계가 있다. 어느 시점에 대출 관련 계약을 했느냐에 따라 내가 내는 대출이자가 달라진다. 건물을 지을 때는 건물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상수익에 따라 대출가능금액이 달라진다. 그래서 대출을 받으려면, 시공계약서도 들어가야 하고, 건물설계에 따른 예상수익을 제출해야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설계로, 시공계약도 그 시점이 잘 맞야야 하는데, 내 경우에 2021년 금리가 2% 대에서 갑자기 2022년 4, 5% 이상으로 이자가 치솟을 때였다. 하루가 다르게 이자율이 오를 때라 시공사와의 계약시점에 다시 한번 서둘러 진행했어야 했다. 대출이자에 대한 압박은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대출시기며 그 금액의 결정 모두 시간과의 싸움이다. 대출이자에 관한 한 차분히 계획하고 대처하기란 누구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집 짓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한 내 집 짓기를 평생 여러 번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두가 내 집 짓기는 처음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 된다.
시공 시 완성도와 준공시점과의 시소 타기
시공에 들어서면 도면대로 계획대로 착착, 아무 일 없이 현장이 진행되면 좋으련만, 그런 현장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가 이 업계의 정설이다. 시공시점에 정말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계절에 따른 시공성의 어려움에서부터, 각종 민원, 지난 몇 년간처럼 치솟은 자재값, 인건비, 등등으로 시공기간의 지연이 따라올 수 있다. 또한 설계도서가 제대로 되어 있어도 현장에서 그것을 보지 않았거나 해석하는 방법이 달라 다르게 시공해 놓았을 때 재시공을 해야 하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이 모든 것들은 사실 준공시점의 지연을 낳는다. 해서 다시 할지 말지, 시공 시 완성도와 안정도를 위해 혹한, 폭우의 계절을 피할까 강행할까 하는 모든 것들은 시간과의 싸움이 된다. 내 집 짓기의 주인은 이자기간을 늘릴지 말지, 더 안정성이 높고 완성도 있는 건물을 가지기 위해 시간에 지불을 할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집 짓기에는 우리가 부르는 건축가, 시공자, 모두 건축주가 책임져야 할 것들의 전문 대행자들이 있다. 전문성을 지닌 이들을 써서 하는 것이되 그 근본적인 모든 결정의 책임은 건축주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내 집 짓기의 주인은 가장 강자인 듯하면서 약자가 된다. 특히나 시간 앞에 완벽한 약자가 된다.
건물주가 되기 위해 당신은 완벽한 시간의 약자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