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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나래 Oct 30. 2023

메시아를  만난 이후

안드레와 요한


안드레와 요한(복음서 기자)은 오랜 기간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나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가 된 이들이다. 

당시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외치는 침례자 요한의 설교와 증언을 들었다. 혹시 그가 메시아일까 하는 기대감으로 요한(침례자)의 강연을 듣고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이제 거의 완수했으므로 그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은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보았으나 메시아임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그들은 거리를 거니시는 예수님을 보았고 그분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었으며 그분이 진리를 설파하시는 것을 보고 들었다. 그들도 똑같이 메시아를 고대하던 자들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메시아를 곁에 두고도 알아채지는 못했다. 

안드레와 요한이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마음은 기쁨과 기대로 충만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았던 중요한 이유는 성령의 부르심에 반응하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비평하며 스스로 기회의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다. 그들의 마음에는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 가득하였고 그들의 귀는 비평이 아닌 갈급함으로 말씀을 들었다. 또 그들에게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의 주장과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의 말씀을 식별하는 순수함이 있었다. 제자 요한은 독생자의 영광을 늘 명상하던 자였다. 그 덕분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시몬 베드로


예수께서 왕의 모습으로 오셔서 권력을 가진 자들의 무리에 섞이셨다면 병들고 가난한 이 땅의 비주류들은 영원히 희망을 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비천한 구유에 오심으로 몸소 가난을 체험하셨고 비주류에 속하심으로 속절없는 세상에 희망과 구원을 실천한 분이셨다. 

그분은 비록 화려하지 않지만 낮은 데서 오히려 더 빛나셨으며 절망 속에 희망을 심어 주셨다. 이런 분을 안드레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벅찬 감동으로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리쳤다. 마음 가득한 기쁨을 가눌 수가 없어서 사랑하는 형을 찾아간 것이다. 

안드레의 말을 들은 시몬,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즉시 구주께로 나아갔다. 그는 이미 침례자 요한의 전도를 통해 마음이 열려 있었다. 급하고 충동적인 성격 이면에 자리한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그 마음을 예수께서 읽어 주신다. 이후 시몬의 삶 속에 나타날 야심과 자만도 보셨지만 그 이면의 회개와 순교까지를 내다보신 그분께서는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그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빌립과 나다나엘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빌립은 즉시로 순종하여 제자가 되었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먼저 확신을 얻은 후에 친구 나다나엘을 부른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 이런저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와 보라”고 했을 뿐이다. “와 보라”는 말은 웬만큼 자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와서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말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직접 보고 선택하라는 뜻이다. 

무화과나무 아래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 말씀을 연구했던 두 제자는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가서 메시아를 만났다.


예수님은 첫 다섯 제자를 이렇게 만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오실 이의 길을 평탄케 했던 요한의 전도를 따라 준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는 그들 스스로 메시아를 만나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


예수님은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 주시는 것 같다. 나는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안달인 긴 시간을 보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 마음에 벅찬 뜨거운 감동이나, 눈앞의 기이함, 꿈을 통한 강한 인상쯤으로 기대했었다. 기적을 보여달라고 소원하며 떼를 쓰기도 했다. 눈앞에 메시아를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또 알아보지도 못한 채 기적만을 고대했던 유대인들처럼 말이다.

지나고 보니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임팩트 강한 어떤 기적 같은 체험이 아니었다. 그분은 말씀을 통해서 잔잔히 만나 주는 분이시다. 마음이 고요할수록 그분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게 하신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노라면 그 깊은 생각 속에서 깨달음을 주시고 만나 주시는 분 그리고 이어지는 마음의 평안함…이것이 메시아와 만나는 경험이 아닐까? 

메시아를 만난 후 제자들에게는 복음을 혼자만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형제에게, 친구에게 알렸다. 그 말을 들은 그 형제와 친구들 또한 머뭇거리지 않고 즉시로 자신들이 기다려 온 메시아를 만나러 갔다. 

어떤 것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알려 주고 싶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 정말 좋은 것이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제자들은 이런 방법으로 전도를 실천했다. 확신과 경험으로 그들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빛을 전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빛의 통로가 되었고 빛의 전달자로 변해 갔다. 이것은 진정 메시아를 만 이후 우리를 움직이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할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 없이도 죄인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사업을 분담해야 한다. 그분의 기쁨, 곧 그분의 희생을 통하여 구속받은 영혼들을 보는 기쁨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들의 구속을 위한 그분의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DA, 142).


다른 사람에게 빛을 나누어 주려는 사람은 모두 스스로 축복을 받게 된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이것이 우리가 메시아를 만난 후의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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