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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나래 Feb 15. 2024

신묘막측한 처방


그는 38년 동안 지켜만 보았다. 그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껏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만 보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는 광경을 목도하였고 성공의 문턱에서 죽어 가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그에게도 가끔 기회가 왔으나 동참할 수는 없었다. 홀로 경쟁에 참여하기란 이만저만 힘든 일이 아니었다. 우선 일어설 수가 없었다. 그러니 걷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다. 그런 건 모두 남의 얘기였고 그의 눈앞에서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특히, 다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순간, 가장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에 외면당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딱히 그를 돕는 손길은 없었다. 그도 살고 싶었다. 그간의 지긋지긋한 불행의 끈을 이제는 놓고 싶었다. 그의 절실함이 극도에 다다랐을 때 예수님이 그를 찾아오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한 걸 물으신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아닌가? 자신에게는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던 희망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혼신의 노력을 해왔는지가 생각났다. 그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기어기어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설움이 북받쳤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의 운명인 것을, 지병이 악화되어 이제 곧 죽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속절없는 처지가 말할 수 없이 슬펐다.

세상 가련한 이 남자…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 같고 세상의 눈곱만큼의 온정마저도 다 그를 피해 갔다. 물이 동한다 해도 그 물속에 들어갈 수도 없지만 물이 동할 때까지 살아 있을까도 염려되었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물이 동하기를 함께 기다려 온 주변의 수많은 경쟁자들과 이제 더 이상 경쟁이 불가능한 비참한 자신의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 이런 팍팍한 인생이 다 있다. 그렇게 속절없는 자신의 인생이 이제 곧 끝나려던 순간이었다.

바로 이때 예수님은 그를 만나러 베데스다로 오셨다. 수많은 병자를 뒤로 하고 예수님은 기적처럼 그의 앞에 서셨다. 예수님의 기적은 늘 이런 상황에서다. 그에게 일생에 다시 오지 않을 천하의 기회가 운명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하늘이 사람에게로 내려오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연약한 병자를 향해 운동을 열심히 하고 고기를 끊고 현미밥을 먹고 맵고 짠 음식을 피하라며 건강 법칙을 지켜야 산다고 하지 않으셨다. 용한 병원을 소개해 주시며 의사에게 가서 질병을 보이라고도 하시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 인생이 얼마나 용을 써야 하는지 그런 방법적 측면을 훈계하시지 않았다. 다만 예수님은 그가 얼마나 그동안 살고 싶어 몸부림쳤는지에 주목하시고 신묘막측한 처방을 내리신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이것이 예수님의 처방이었다.

‘신묘막측’이란 신기하고 오묘하여 사람이 측량하거나 헤아릴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솜씨와 그분의 한없는 사랑을 느낄 때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 표현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사전에도 없는 이 말을 나는 즐겨 사용하고 또 좋아한다.

38년을 중풍병자로 살았고 그마저도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는 처방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 이것을 신묘막측이라는 표현 외에 달리 무엇이라 표현할까? 우리는 그가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그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신다. 그분은 하라시는 명을 내리면서 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춰 주시는 분이다. 그의 힘없던 다리의 신경세포와 근육이 살아났다. 그리고 그는 힘주어 일어난다. 그리고 걷는다.

그는 이 신묘막측한 처방을 받을 아무런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38년 동안 앉아서만 살았던 그저 무력한 환자였을 뿐이다. 그의 살고자 하는 절실함이 그 믿음의 전부였다. 그는 과거에 걸었던 적은 없었으나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그렇게 하고자 일어섰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질 그것을 그는 믿음으로 했다. 단순한 믿음 바로 그것뿐이었다. 낫고 싶으면 일어나 걸으라시지 않는가? 오직 믿음으로 일어나라고만 하셨다.

나이가 들고 점점 지식이 채워지면서 단순함이 사라지고 있다. 뭘 그리 꼬치꼬치 따져 논리에 맞아야 하는지, 명분과 체면은 늘 단순함의 자리를 밀어낸다. 다 내려놓고 예수님만 의지하고자 하는 단순한 믿음은 그렇게 자꾸만 밀려난다.

그대가 완쾌됐다고 느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분의 말씀을 믿으라. 그러면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의 편에 두라. 그분을 섬기고자 뜻을 세우고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할 때에 그대는 힘을 얻을 것이다 (DA, 203).

이것이 바로 “인생 꿀팁”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억해야 할 일이다.

첫째, 말씀을 읽고,

둘째, 그 말씀을 믿고,

셋째, 하라시는 일을 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난관에 봉착하면 단순한 믿음으로 매달리고 그것을 해결해 주실 예수님을 또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진심 인생 최고의 꿀팁을 득템한 것 같다.

이때처럼 하늘이 사람에게로 내려온 때가 그 후로도 종종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에까지 하늘은 절실한 자에게 내려오신다. 절실함이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사람에게로 내려오시게 한다. 중풍병자를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오늘 나의 필요와 부르짖음을 들으러 내게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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