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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dal Apr 11. 2021

하기나 해


본격적으로 글을 쓰려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으니 곧 배가 고파질 것이다. 주방에서 뭔가를 만들어 허기를 채우고 나면 유튜브를 열어 영상 한, 두 개 정도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어느덧 전 인류의 브이로그를 정복하겠다는 기세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갈 것이다.


아마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이런 식으로 밀리고 밀려 지금까지 떠내려 왔는지 모르겠다. 급하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 특히 다이어트 선언 후 평소보다 두 배의 허기가 지듯,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두 손에 무거운 추가 매달린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괜히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는 11가지 방법”과 같은 영상을 보며 글쓰기를 미루고, “2021년을 새로 시작하는 당신에게” 같은 영상을 보며 아직 새로 시작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불행히도 낯설지는 않다. 심지어 이제 유튜브도 나를 답정너 이용자로 분류하였는지 “열심히 하지 말고 그냥 좀 해”라는 제목의 영상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 말 브런치 심사에 합격했을 때, 난 이 곳을 온라인에 자리한 직장의 개념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고정적으로 출퇴근 해 월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일간 이슬아’처럼, 매일 최소 한 개 이상의 글을 업로드하며 규칙적인 일상으로 자리하길 바랐다. 하지만 첫 번째 글을 올린 후 다시 몇 달이 지나버렸다. 늘 그렇듯이.


백수에게는 충동을 넘어 충격에 가까운 아이패드 구매 후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가볍고 예쁘게 불빛까지 반짝거리는 키보드까지 마련했다. 멀쩡한 노트북을 두고, 한 번도 무겁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키보드를 두고도 이 같은 세팅을 마쳤으니 이제 글을 쓰지 않을 101가지 핑계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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