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오픈하며
귀촌 10개월 차, 책방을 오픈했다. 공간을 열었다고 손님들이 앞다투어 책방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온종일 손님을 기다리며 책방을 열고 닫고 있지만 그 시간이 꽤 기껍다. 예상보다 참담한 상황에도 “웃자~!” 하며 의기를 다지는 내가 대견할 만큼. 책임감도 스스로 짊어지면 동력이 되나 보다. 요즘은 출근하기 전 집을 나서며 꼭꼭 소리 내어 인사를 하고 문을 닫는다. “다녀오겠습니다!”
책방 오픈하기 직전까진 긴장감과 압박감으로 울음을 꾹꾹 참으며 지냈다. 책방이 그동안의 나를 증명하는 공간 같아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너머, 하고 싶은 것 너머를 욕심냈다. 책을 향한 애정, 일하며 기른 기획력과 디자인 실력, 귀촌 후 꾸려낸 관계, 하다못해 소품과 가구를 고르는 안목까지, 나란 사람을 공간으로 구현해 낱낱이 보여주는 자리 같아서 도망치고 싶었다. 오픈 당일 아침에 A4용지에 인쇄된 문장을 하나하나 오리고 있는 내게 “너는 당일까지 이러고 있니… 이런 건 미리미리 할 수 있는 거잖아.” 하는 엄마의 면박에 왈칵 눈물이 터져 나와 자리를 피했다. 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니 이리 절절한 표현일 수 없다고 훌쩍거리며 난 일잘러는 못 되나 보다 하고 한심해했다. 책방을 준비하는 기간은 여러 한계와 단점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해서 쓰라림이 컸다. 잘하고 싶다고 욕심내는 건 매 순간 부족함부터 느끼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욕심을 내려놓는 건 자포자기처럼 느껴졌다.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을 구분해 내는 일, 내 속도와 균형이 어디쯤인지 알아차리는 일에도 숙련이 필요했다. 숙련되지 못한 자는 스불재로…
눈물 콧물을 먹어가며 얼떨떨하게 책방 문을 열었다. 글방의 동료가 공간을 소리로 정화하는 고사 세리머니를 제안해 줘 얼결에 작은 행사를 열게 되었다. 책방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씩 악기를 들고 책방을 한 바퀴 돈 후 원으로 둘러서서 악기를 연주했다. 사람들로 가득 찬 책방의 풍경, 함께 모여 울리는 타악기 소리가 흥에 겨워 체면도 본분도 잊고 꽝꽝 꽹과리를 쳐댔다. 후에 친구가 “좀 많이 시끄러웠어… 내 악기 소리가 안 들렸어…”하고 얘기해주어 멋쩍은 마음으로 반성했지만 내가 느꼈던 기쁨과 설렘이 선명히 남아서, 그 기분을 믿을 구석 삼아 책방을 꾸려가야지 다짐했다. 모쪼록 신명 나는 시간을 많이 만들자고.
오픈 이후 예상했던 바대로 손님은 급격히 줄어들어 일희일비가 아닌 일비일비 하는 날들이지만 불안과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는다. 불안과 의심이 올라오면 허공을 향해 불쑥 내뱉는다. “저 부지런히 나아질 거거든요.” (혼잣말이 많아졌다) 나는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 사람. 그 약속만큼은 기꺼이 책임감을 발휘해 지키고 싶다. 책임감을 껴안게 된 건 친구의 말 덕분이었다.
“나는 은도가 완주에 온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
그 말을 듣자, 그동안 완주에서 받았던 돌봄과 도움이 서로가 서로에게 품는 책임감에서 비롯했구나 싶었다. 함께이기에 더 즐겁고 살 만해진다는 걸 아는 이들은 서로가 완주에서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염려하며 챙기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고 소중한 완주 살이. 책임감 때문에 돌봄에 더 부지런해진다면 나도 더 책임감을 껴안고 발휘하고 싶다. 책임감이 내 몫의 생활을 잘 살아내고 곁을 돌보며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는 걸 실감하며 애틋해져서 완주 좋다고, 완주 오라고 자꾸 외치게 된다. 책임감을 서로 주고받는 일이 우리를 더 살 만하게 만들어서. 더 잘 살고 싶게 만들어서. 앞으로도 꽹과리 치며 요란히 나아가야지. 책임을 다해, 흥겹게. 책방에서, 완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