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10
아쉽지만 마지막 날이다. 오사카에서 할 거 없다고 빨리 집 가고 싶다고 할 때가 엊그젠데 막상 가려니까 아쉽다. 아침은 그제 가와구치코 도착하고 편의점 털이할 때 사 놓은 짐발라야로 해결했다. 냉장고 안쪽에 뒀더니 하루 사이에 얼어버렸다.
즉흥적으로 여행을 계획하다보니 동선이 개망해버렸다는 건 여러번 언급한 바 있다. 오늘은 그 개망한 동선의 정점이다.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이라는 이름에 속아 귀국편을 시즈오카 공항으로 예매했는데 후지산이란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찾아가는 길이 불편하다.
고속버스타고 미시마역 -> 전철타고 카나야역 -> 공항버스타고 시즈오카 공항, 이렇게 총 3번을 갈아타야 한다. 심지어 공항버스는 배차가 길어서 까딱 잘못하면 비행기를 놓칠 수 있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도쿄 나리타 공항은 거리가 더 멂에도 한 번에 가는 직행버스가 있으니 나중에 후지산 오실 분들은 가급적 도쿄로 이동하시길.
여행 갈 때 보면 항상 날씨운은 좋은 편이었다. 이번에도 일본에 지내는 내내 비도 한 번 안 오고 날씨가 죽여줬다. 후지산 아랫동네 가와구치코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확실히 여유가 있으니까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복귀는 온 순서의 역순이다. 첫 순서로 가와구치코에서 버스를 타고 미시마로 돌아간다. 미시마역은 교토에서 신칸센 타고 올 때 버스로 갈아탔던 바로 그 역이다.
이제 미시마에서 시즈오카 공항 쪽으로 가야 하는데 바로 가는 방법은 없고 가까운 역에 내린 뒤 공항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신칸센을 타면 빠르고 편하지만 3,500엔 가까이 들고 재래선을 타면 오래 걸리고 재수없으면 앉지도 못하지만 1,000엔 언저리에서 해결된다. 편안함과 저렴함을 저울질 할 때 나같은 거지여행자에는 대개 저렴함을 선택한다. 그런고로 저렴한 가격을 자랑하는 재래선, JR 도카이도선을 타고 가기로 한다.
파스모에 잔고 남기기 싫어서 이 때부턴 표를 직접 결제했다.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역인 카나야까지 대략 한시간 반 정도 이동할 예정이다. 더 가까운 시즈오카역에서 내려도 되지만 혹시라도 공항버스를 놓치면 택시를 타야하기 때문에 최대한 거리를 좁혀놨다.
인제 전철 타는 것도 마지막이다. 이 날도 여전히 존내 더웠다.
[동영상이 안 들어감ㅜ]
재래선이라길래 무궁화같은 기차인줄 알았는데 도카이도선은 자리배치나 역 간격을 보아 경의중앙선같은 지상철에 가까웠다. 덕분에 편하게 동네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가성비 하나만 보고 선택한 결정이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여행 중 즐거웠던 순간 Top 3 안에 들어간다. 관광객도 별로 없고, 조용하고, 시원하고, 걱정 없이 긴 시간 여유롭게 멍때릴 수 있고, 풍경도 계속 바뀌고 최고였다.
바깥구경 하다보니 어느새 카나야역에 도착했따. 나같은 외부인을 위해 공항버스는 저기서 타라고 친절하게 가리켜 놓았다.
카나야역은 편의점 하나 없는 황망한 랜드스케이프를 자랑한다. 시골가는 기차에서 졸다 깼을 때 창 밖에 보이는 그런 농촌마을 같은 느낌이다. 택시 정류장도 없던데 공항버스 놓치면 정말 답도 없을 뻔 했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는 일은 없었다. 공항까지 한 정거장 간다. 가격은 500엔인데 아직도 일본의 대중교통 물가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몰랐는데 시즈오카는 차가 유명하단다. 제주도 감귤밭마냥 고개만 돌리면 차밭이 즐비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다음엔 시즈오카를 돌아다녀 보는 것도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공항이 멀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들어가기 아쉬워서 주차장이라도 찍어봤다.
시즈오카 공항은 굉장히 작고 조용한 공항이다. 한국 직항도 있고 해서 꽤 큰 공항일 줄 알았는데 지방 버스 터미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소탈한 느낌이다. 이런데 왜 공항이 들어왔나 싶어 나무위키를 찾아보니 공항 세울 때 이런저런 논란이 많아 시장이 자리를 내걸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주변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끼니는 공항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푸드코트에서 우동세트를 시켰는데 튀김도 덜 데워서 차갑고 우동 맛도 흔한 인스턴트 플레이버여서 매우 실망스러웠다. 시즈오카 공항 보시오. 담에도 음식이 이런식이면 공항은 죽소.
커여운 후지산 모양 거품비누 디스펜서가 있다. 일본의 한국어 번역투는 뭔가 몽글몽글하니 귀여운 느낌이다. 시키는대로 해봤는데 난 손이 이상한지 저 모양대로 잘 안나온다;
시즈오카 공항의 매력이라면 주변 풍경을 배경으로 활주로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는 것이다. 날씨는 좋고 할 일은 없다면 여기서 시간을 떼워보는 것도 좋은 옵션이다. 국제공항답지 않은 소박함이 매력인 이 공항은 탑승구도 2개 뿐이고 활주로도 단선이다. 소박한 모습이 닮은 예천의 모 비행단에서 스타렉스로 활주로를 누비던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도카이에서 만든 특산물을 취급하는 기념품점도 있다. 돌아봤는데 딱히 살 게 없어서 구경만 하다 나왔다.
면세구역도 소박하다. 그래도 도쿄 바나나랑 그 뭐냐 쿠크다스 상위호환 과자같은 거 포함 있을 건 다있다. 직원분은 한국말도 할 줄 아시니 듀오링고라고 생각하고 대화를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비행기가 조금 연착돼서 하릴없이 기다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뷰가 시원시원한데 시즈오카 공항의 장점으로 단연코 공항을 둘러싼 자연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진짜 출국한다. 이륙 직전에 듣는 노래를 캡처해놓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엔 'Somewhere only we know'가 당첨이다. Keane의 오리지널 곡도 좋아하는데 좀 더 잔잔하고 아련하게 듣고 싶으면 Creamy라는 분의 어쿠스틱 버전도 나쁘지 않다.
잘 있어요 일본.
이제 한국에 다 와간다. 항공뷰 야경은 첨이라 신기해서 찍어봤는데 수원쯤 되지 않을까 싶다(매우 부정확함).
드디어 도착. 이젠 뭔가 한국어가 어색하다. 얼마나 나가기 싫던지ㅜㅜ
이렇게 5박 6일간의 첫 일본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음이 있다면 교토의 유적지들을 좀 더 둘러보고 정말 잠깐만 머물렀던 시즈오카의 한적함도 더 즐겨보고 싶다. 후지산 동료에게 말로만 듣고 못 가본 신주쿠도 한 번 돌아보고 싶고.
어쨌든 진짜 끝이다. 아쉬운 마음은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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