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일본 6 / 3,766m 후지산 등반

24.9.9

by eune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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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땐 몰랐는데 날이 밝으니 숙소에서 후지산이 얼핏 보인다. 오늘은 드디어 후지산에 오르는 날이다. 내가 등반할 요시다루트는 획득고도 1.3km에 길이는 9km가량으로 중간에 퍼지기 싫으면 보급을 넉넉하게 챙겨가야 한다. 숙소에서 나가기 전 어제 편의점에서 사둔 컵라면으로 먼저 칼로리를 비축해주고 모닝빵 맻봉지도 가방에 챙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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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한라산 등반을 같이했던 아디다스 테렉스 프리하이커가 이번에도 수고해줄 예정이다. 아디다스에서 무슨 등산화를 사냐고 겉멋만 들었다고 놀리던 지인들을 결국 입꾹닫시킨 성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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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좋아 멀리서도 후지산이 잘 보인다. 몇 시간 후 나는 저기 보이는 일본 최고봉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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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가와구치코역에서 5합목이라고 2,700m 지점까진 버스를 타고 올라간다. 바닥부터 올라가려면 하루만 가지고는 쉽지 않다. 후지산도 Sea to Summit 이라고 해발 0m에서 올라가는 챌린지가 주기적으로 열리는 것으로 아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 번 도전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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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티켓은 역사 내 인포데스크에서 살 수 있다. 편도로 사면 1,500엔, 왕복 세트로 사면 2,800엔인데 아침엔 배차가 20분 간격이라 버스 놓칠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다. 개꿀팁 하나가 있는데 줄이 길다 싶으면 하나 흘리고 다음거 타는게 낫다. 만원 버스에서 서서 가지 말고 빈 버스 타고 편하게 앉아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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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구치코에서 1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뒤로는 구름뷰, 앞으로는 후지산뷰가 펼쳐지는 5합목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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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할 일은 매표소에서 입산 티켓을 끊는 것이다. 등산객이 몰리면 입구컷을 시킨다는 말이 있어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 뒀는데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때가 후지산 트레일 닫히기 이틀 전이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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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전 기부금 명목으로 1,000엔을 더 내면 기념품으로 나무 명패를 준다. 가방에 매달고 다니면 '후지산 다녀오셨어요?'라는 질문과 함께 무수한 악수세례를 받게 되는데 기념품 삼아 하나 받아 오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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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6합목까지 올라가는 서비스가 있다. 얘들이 등산로에 똥으로 부비트랩을 심어놓기 땜에 밟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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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이다. 처음 1키로 정도는 숲숲한 길이 이어지는데 활화산의 특성 상 표고가 높아질수록 식생이 사라져서 이런 숲 느낌 나는 길은 뒤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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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다 보면 곧 6합목이라는 1차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는데 여기부터 '진짜'가 시작된다. 이제 프로도가 반지 버리러 가는 길같이 생긴 등산로를 수 킬로미터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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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에서 만난 첫번째 산장. 후지산은 곳곳에 산장이 배치되어 있는데 여기서 음료나 간식을 살 수 있다. 산장답게 가격은 시장가 3배부터 시작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물 한병에 5천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산장은 후지산 국룰 기념품인 나무 지팡이에 스탬프를 찍어주는 인증센터의 역할도 겸한다. 지팡이는 5합목에서 사 오든 산장에서 직접 사든 알아서 챙겨와야 하는데 어떤 백인 아재는 같은 지팡이를 계속 들고 오는지 하도 스탬프를 찍어대서 원래 검은색으로도 나오나 착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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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합목에서 시작된 지그재그 오르막을 다 오르면 첫번째 뉴비절단기인 급경사 짱돌길이 나온다. 여기서 만만하게 보고 등산화 안 신고온 사람, 고도비만 외국인, 멋모르고 엄빠따라 온 잼민이 등 3할이 리타이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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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저차 7합목 도착. 해치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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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리가 하나도 안 줄은게, 놀란 마음에 지도 체크를 해보니 반도 못 왔다. 7합목이 7/10이라는 뜻 아닌가? 뭔가 단단히 잘못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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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거리면서 계속 올라간다. 죽을만 하면 산장이 구원처럼 등장하므로 적절히 쉬어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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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시피 8합목 도착!! 한줄 알았는데 여긴 가짜 8합목이고 조금 더 올라가야 '본'8합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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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경사가 완만해져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왼편 먼 곳 미친 경사로에서 하산의 달인마냥 잽싸게 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디서 들은 말인데 정상에서 500엔을 지불하면 하산 시 사용 가능한 썰매를 빌려준다고 한다. (구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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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을 방불케하는 풍경. 저기서 넘어지면 요코하마 앞바다까지 굴러간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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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위치 파악이 수월하다. 거리가 너무 안 줄어서 정확도에 의심이 들긴 하지만 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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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이라 그런지 흙이 벌건 색인데 처음 보는 토질이라 신기해서 찍어봤다. 이쯤 오면 풀만 드문드문 자라고 나무는 한 그루도 없다. 그말인즉슨 그늘이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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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8합목 도착. 벌써 3,250미터나 올라왔다. 슬슬 구름이 발 아래 깔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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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를 잘 봐야한다. 중간중간 하산로랑 길이 겹치는데 무심결에 원점회귀하지 않게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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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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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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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코앞에 동전이 잔뜩 꽂힌 도리이가 하나 있다. 등산하면서 이런 구조물 볼 때마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고왔을까 싶어 감탄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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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3,600미터에 위치한 9합목에 도착했다. 번역은 후지산 정상이라고 되어있는데 진짜 정상은 조금 더 가야한다. 개열받게 찐이랑 짭을 자꾸 나눠 놓는지 모르겠네. 쨋든 거의 다 와서 기분 좋은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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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가까워지니 남은 미터수가 확확 주는 대신 그만큼 등산로의 경사가 가팔라졌다. 뒤를 돌아보면 다들 땅에 붙어있다시피 올라오는 중이다.


아 날씨에 대해 첨언을 하자면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다들 아우터를 입고 있다. 9월 기준, 산 밑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인데 비해 산 정상은 10도 이하까지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다. 그렇기 때문에 체온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맞으나 예비용으로 소프트쉘 하나 챙겨오면 딱 적당하다. 나는 사람들이 하도 겁을 주길래 하드쉘에 후리스까지 다 챙겨갔는데 결국 반팔 입고 정상까지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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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숨 넘어가기 직전에 시기적절하게 등장하는 천국의 문을 지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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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정상 신사 표지석인데 한자 모르는 사람들이 여기 or 조금 더 가면 나오는 하산로 표지석에서 인증샷을 많이 찍는다. 사실 나도 낚여서 찐정상석이 있는 겐가미네봉을 스킵하는 대형찐빠를 냈다. 진지하게 다시 가야되나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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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니 진짜 최종 정상이 보인다. 이제 일본의 꼭대기에 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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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반 완료! 여기선 후지산의 분화구는 물론 일본 본토 + 해안가도 볼 수 있다. 날씨가 엄청 맑아서 가시거리가 죽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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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너무 좋아서 저기 보이는 정상마을에서 한 30분 동안 멍을 때렸다. 더 있고 싶었으나 직사광선에 목 뒤가 시어링되는 느낌이라 못참고 내려왔는데 가는 길에 나같이 혼자 오신 한국분 만나서 같이 얘기도 나누고 저녁도 같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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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가려는데 돌아버린 내리막길이 나온다. 아까봤던 그 썰매길이 알고보니 내 하산길이었던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밟으면 쭉쭉 미끄러지는 토질이라 10명중 9명은 내려가면서 호랑나비 스텝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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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가생이는 살벌한 낭떠러지다. 일단 인증샷 하나 남겨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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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뷰는 죽여준다. 이렇게 날씨 좋은게 흔치 않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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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산 5대 호수 중 하나인 가와구치코의 전경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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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완료. 연골이 1cm는 줄었을 지옥의 다운힐을 마친 후 뒤를 돌아본다. 하산하고 항상 드는 생각은 '저걸 어떻게 올라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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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바 기록은 이렇다. 하산 기록을 재는 건 의미가 없어보여서 등산만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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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복귀할 시간. 오사는 밤밥은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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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은 출근의 역순. 아시안은 나뿐인 하산 버스를 타고 가와구치코역으로 되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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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졌다. 산장들이 밤에 불을 켜 놓아 후지산에 별자리처럼 줄이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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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만난 한국 동지와 저녁 겸 맥주 한잔을 조지기 위해 동네에 있는 덴뿌라 전문점을 찾았다. 특이한게 2개가 있는데 첫번째는 후지산이라는 맥주를 판다는 거고 두번째는 8시 즈음 사장님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이다. 다같이 따라부르는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고 세시봉 7080 같은 잔잔한 라이브카페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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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뿌라 사이드 디쉬로 로컬 스타일 우동이 있었다. 로컬도 못 참는데 'Very Hard'라고 하니 안 시킬 수가? 근데 맛은 그냥 된장국에 우동사리 넣은게 다라 실망스러웠다. 이 동네 우동은 원래 이런건가 싶었는데 우동 면이 퍽퍽한 거 보면 스타일을 떠나서 맛이 없는게 맞는 것 같다. 덴뿌라는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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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는 정상동지를 배웅한 후 숙소로 돌아간다. 이틀이 됐는데도 어두운 시골길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됨.



쨋든 오늘 하루도 이렇게 끝. 고생 많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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